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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16. 2018

<천도교편년사> 발간을 준비하며

"천도교편년사" 교정ㅈ (일부)

* 이 글의 필자는 "이동초(심암, 천도교교서편찬위원, 서울교구, "동학천도교인명사전" 편저자)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승자에 의한 기록이라고 한다. 또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 역사를 알면 현재의 상황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역사는 현재를 바라보는 거울’ 또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고, 지금까지 몰랐던 사실이 밝혀지면 역사적 사실이 수정되기도 하고, 해석이 뒤바뀌기도 하여 새롭게 구성된다. 따라서 역사는 현재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동학이 창명된 1860년 이후 150년 동안의 동학 및 천도교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동학이 창명된 19세기 중엽 순조시대는 외척의 발호가 창궐하고 관서지방에서는 홍경래의 난(1811-1812)이 일어나고, 그 이후로도 악질과 홍수, 기근이 끊이지 않아 민심이 극도로 소란한 때였다. 

순조에 이어 8세에 왕위에 오른 헌종(1835-1849)과 철종(1849-1864)은 짧은 재위 기간에 외척의 전횡과 족벌의 파쟁이 극열하여 선정의 시책이 없었고, 양반 토호와 관아의 벼슬아치들의 가렴주구가 심하여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리상의 발견과 산업혁명 등의 여파로 식민지 개척에 나섰던 서구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이 동아시아를 석권하고, 일본을 개항시키면서 한반도에도 그 세력을 뻗치기 시작하면서 민심의 동요와 국가적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러한  내우외환과 악질만세(惡疾滿世)의 상황에서 민란이 도처에서 봉기하거나 혹은 외래 세력에 의뢰하고자 천주교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전래의 예언적 비결을 믿어 십승지를 찾는 등 좌충우돌 혼란 상태가 가중되어 갔다. 결국 19세기 우리나라 근대사의 특징은 외세의 침략, 특히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마침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어 민족적 재난을 겪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동학 천도교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서 변운(變運)에 응(應)하는 새로운 진리와 보국안민의 목적을 가지고 창명되어 동학농민혁명과 갑진개혁운동에 이어서 일제강점기 3.1독립운동, 육십만세운동, 신간회운동 등으로 민족운동의 전환기마다 그 중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수난과 좌절과 오욕으로 이어지는 발자취를 남겼다. 


[사진출처 - 네이버지식백과]

그러나 동학 천도교는 일제로부터 광복이 된 지 75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완전한 교회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를 열거할 수가 있겠으나, 교리에 입각한 신앙체계를 확립하지 못하고 특히 3.1운동 이후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으로 인한 민족운동 노선의 갈등으로 나타난 신구파 분열에 대한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이라고 하겠다. 


특히 우리나라 근대사는 물론 천도교 역사를 기술하기 위해서는 일제의 정치적 선전목적을 가진 일제관헌 자료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천도교의 바른 역사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교단이 보존하고 있는 자료의 정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중앙총부에는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중에 없어진 자료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적잖은 자료들을 보존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1차 자료라고 할 수 있는 중앙총부의 종령과 공함, 그리고 각 기관에서 기록한 각종 일지 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게 생각되어 필자는 2005년에 종령과 공함 등을 정리하여 『천도교회종령존안』를 출간한 바 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천도교인명사전과 짝을 이루어 천도교연표에 대한 작업을 함께 시작하였다. 



그런데 10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작업을 하면서 인물자료 수집을 위해 신인간과 월보에 수차에 걸쳐 광고를 해보았지만 관심을 갖거나 자료를 제공해 주는 교인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자료 수집을 마감하고 미흡한 상태이지만 『천도교인명사전』(제1판, 2015)을 출간하였다. 그런데 『천도교인명사전』이 나오자 격려도 많이 받았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무관심하던 교인들로부터 누락과 오류가 많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교회기관지로 발행하는 <천도교월보>(1979년 창간, 월간, 0000년 ‘천도교신문(격주간)’으로 변경)과 『신인간』(1926년 창간, 2018년 1월 현재 000호 발행, 월간)을 읽는 교인들이 없는 탓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천도교인명사전』을 거울삼아 연표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게 되어 교회사를 연대순으로 배열한 연표에 사건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간략한 설명을 첨가한 편년사로 바꾸어 정리하였다. 


이 <천도교편년사>에는 교회일지를 비롯해서 교회기관지 『천도교회월보』(0000년 00월 창간, 1937년 7월 폐간, 통권 000호 발행), 『신인간』, 《천도교월보》, 《천도교신문》 등에 있는 교회사뿐 아니라 시중의 일간지에서 찾을 수 있는 천도교 관련 기사와 각 지방의 농민사과 신간회지회 관한 단편적인 활동도 포함하였다. 

그리고 동학혁명에 관한 객관적인 자료는 물론 손병희가 일본에 체류하였던 1901년부터 1905년까지의 교회자료는 거의 없기 때문에 많은 부분은 관변자료와 각종 일제 당국의 자료, 그리고 시중의 일간지를 주로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부터 연월일 표기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것은 교단자료는 음력을 사용하는 반면에 관변자료는 음력 혹은 양력을 병기하고 있지만 일본자료는 양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894년부터 일제자료를 참고함에는 일일이 음력에 양력을 병기하였다. 그리고 중앙총부를 설립한 이후의 교회사는 대부분 중앙기관을 중심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 각 지방교구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일간지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1937년 중일전쟁부터 1940년 4월 신구양파 합동까지 신파교회에서는 기관지 『신인간』을 발행하고 <경도관일지> <성도관일지> <도령실일지> 등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반면에 구파교회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으로 기관지 『천도교회월보』가 폐간된 이후에는 기념식과 같은 단편적인 신문기사를 찾을 수 있을 뿐 교회자료는 전무하여 신파교회와 시간차를 두고 봉행한 중앙대교당 시일식에 관한 기록조차도 찾을 수가 없다. 


또한 해방공간 및 한국전쟁 기간에는 교회자료가 부족하지만 해방 후 우후죽순처럼 발행된 일간지에서 찾을 수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특히 1975년 12월경부터 1976년까지 최덕신 교령 재임시간에 발단된 교단분규에 대한 중요한 사건 내용을 교회기관지 『신인간』에서 조차 전혀 게재하지 않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다행히 분규 수습을 위해 중심에 있던 정운열(鄭雲烈) 선도사가 보관하고 있던 경찰보고서자료를 참고할 수 있어 객관적인 자료로 활용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쉬운 점은 교단의 지도자들이 남긴 회고록과 같은 자료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직 정리되지 못한 교단의 자료를 혼자서 찾아가면서 작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 아니 무모한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다만 사관이나 문제의식을 가지고 인과를 밝히는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지만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계획을 세우고 몇 사람이 팀을 이루어 체계적으로 하였다면 더 좋은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특히 1960년대 이전까지 대부분 자료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 이를 그대로 정리하였다. 그런데 한문을 한글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들이 있어 한문을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다시 하게 되어 10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간은 필자가 우리나라와 일본의 근대사를 일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은 보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편년사의 내용은 200자 원고지 1만여 매의 분량으로 정리되어 교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더욱 보완될 여지가 차고 넘친다. 앞으로 교단에서 또는 누군가에 의해 천도교 인명사전과 함께 연표(편년사)가 지속적으로 기록되고 보완되어 천도교 역사를 서술하는데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끝으로 10여 년간 집필 공간을 마련해 주신 역대 서울교구장님들과 어려운 여건 가운데에서도 [천도교인명사전]에 이어, 천도교 역사사전(편년사) 편찬을 기획하여 그 진행을 격려하고, 최종적으로 <동학천도교대사전>의 발간까지를 염두에 두고 동학아카이브(archive) 내에 ‘동학천도교사전연구’회를 만들어 이 작업이 지속될 수 있도록 기획을 해 주신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의 박길수 대표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2017년 2월, 천도교중앙대교당 뒤편 서울교구실에서  李 東 初


*천도교편년사 편집 및 원고 보강 작업에 참여하실 분을 기다립니다. (sichunju@hanmail.net로 문의)


모시는책방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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