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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pr 02. 2018

한국농수산대학 입학 풍경

철학하는 농부가 보는 세상

김 예 린 | 청년농부

[개벽신문 72호, 2018년 3월호] 청년 농부의 창



하나

국립 한국농수산대학교(줄여서 ‘한농대’)에서 청년 농부의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정문을 지나니 강의동을 비롯해 높지 않은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모든 건물들이 사각형의 네 귀퉁이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완만한 두둑으로 둘러싼 우리네 논밭들 같아 정겹다.


더 인상적인 것은 농수산대 앞을 가로지르는 도로 이름인데 ‘콩쥐팥쥐로’이다. 어느 도시와 도로의 이름에서도 찾기 힘든 재미있는 도로명인데, 우리 전래동화「 콩쥐팥쥐전」에서 따온 이름이다. 아마도 전국의 지자체마다 지역 이름에 스토리를 입혀 지자체의 위상 제고와 관광객 유치에 힘쓰려고 노력한 시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콩쥐팥쥐전」에는 콩쥐네 집이 ‘전주 서문밖 30리’라고 하였으니, 이 길이 전주시에서 완주시 이서면을 거쳐 김제시로 이어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소설의 무대로 유력시되는 ‘이서면 앵곡마을’은 이 길에서 가까이 없는데, 지자체마다 ‘콩쥐’와 ‘팥쥐’를 데려오려 안간힘을 쓰고 논쟁도 있었다는 후문도 있다. 마치 동화 속에서 진짜 콩쥐 팥쥐를 가려내듯 어느 마을이 진짜 콩쥐팥쥐네 마을인지를 다퉜다는 것이다.


「콩쥐팥쥐전」 이야기를 떠올리며 얼마 전 우리가 잘 치뤄낸 평창 동계올림픽의 여러 순간들 중에서 ‘스케이트 팀 추월’ 종목이 생각났다. 팥쥐의 콩쥐에 대한 미움은 왜 시작된 것일까? 그것이 팥쥐가 타고난 것이 아닐진대, 팥쥐의 그 미움과 악행은 무엇이 동기였을까?


아마 이렇게 비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빙상연맹은 팥쥐의 어미, 노선영은 콩쥐, 김보름은 팥쥐. 팥쥐가 배다른 자매인데다 자신보다 예쁜 콩쥐에게 시기심을 느끼고 못되게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팥쥐의 어미가 그런 점은 꾸짖고 우애 좋은 자매가 될 수 있도록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팥쥐의 어미는 콩쥐를 구박하며 팥쥐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빙상연맹의 파벌 싸움은 어른들이 만들어내고 공고화한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유능한 선수였던 안현수가 러시아로 귀화한 이전부터 이런 문제가 생겼을 것이고 그 이후로도 고쳐지지 않고 계속 곪았을 것이다. 뛰어난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올림픽과 같은 큰 무대에 서는 꿈을 꿀 것이다. 파벌이 있으면 그 파벌 안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들이 있을 텐데 빙상연맹은 문제를 바로 잡지 않고 팥쥐의 어미처럼 부추기고 있었던 것이다.


팀 추월 경기를 본 후 수 많은 국민들이 청와대에 국민 청원을 했다. 오랫동안 굳어진 빙상연맹의 관습이 하루 아침에 해결되기는 힘들겠지만 어느 정도는 해결될 것이다. 그러면 콩쥐가 환생했던 것처럼 노선영 선수도 재기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동화가 아니기 때문에 힘들 것이다. 운동선수에게 공백은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노선영 선수의 아픔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 모두가 현실을 환기해야 한다.

경기를 보면서 화를 냈던 것처럼 부조리한 혈연, 학연, 지연 의식과 관행을 비판해야 한다. 고쳐지지 않으면 노선영 선수가 고개를 숙였던 것처럼 수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할 것이다. 어른들은 바로 잡고 젊은이도 잘못된 관행에 편승하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조만간 더 좋은 경기와 사회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숙사에 짐을 풀고 룸메이트들과 함께 교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거의 8년 만에 네모난 식판을 들어올리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친구들과 함께 새내기가 된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밥이 진짜 맛있다. 오리엔테이션 때 영양사 선생님이 나와 식사를 소개해 주시는 시간이 있었는데 원산지도 모두 국내산이고 우리 학교 졸업생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용하신다고 한다. 후배들이 먹을 음식 재료이니 선배님들이 특별히 신경 써서 보낸 것이 틀림없다.


작년에는 전주 혁신도시 맛집으로 선정되어 국가기관이니 외부 사람들에게도 개방하라는 문의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전주에서 입맛 까다로운 시민들에게 맛집으로 인정받았을 정도이니 어떻겠는가? 요즘은 급식을 먹는 학생들을 장난스레 ‘급식충’이라고 부르던데 이렇게 맛있는 급식이라면 평생 ‘급식충’으로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밥을 먹으면서 오가는 대화도 재미있다. 서울에서는 “너희 부모님은 뭐하시니?”라는 질문을 하는 것이 실례이다.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이 되물림되어 계층이동이 힘들어지면서 부모님의 직업은 민감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학교에서는 대부분 영농 기반이 있는 친구들이라서 부모님이 뭐하시는지 묻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무슨 작물을 키우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이 안에도 나름의 계급이 있는 것 같다. 농고를 나온 같은 방을 쓰는 동생이 우스갯소리로 한우학과나 버섯학과 아이들은 금수저니 친하게 지내란다. “그러마” 하면

서 한참을 깔깔거렸지만 농촌에서도 빈부격차가 심하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했다.


첫째 날 밤, 40명의 동기들이 모여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돌아가며 이름과 출신 그리고 왜 이 학교에 오게 되었는지를 간략히 말했다. 파주부터 해남까지, 경기도,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모였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이제 막 성인이 된 친구들인데도 목적이 분명하고 포부가 크다는 것이다. 명확한 관심사가 있고 배우고자 하는 바와 하고자 하는 바가 구체적이다. 그럼 점에서 내가 대학 다닐 때 가르쳤던 고등학생들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학비와 용돈을 벌려고 과외와 학원 강사를 하면서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들을 많이 만나봤지만, 그들의 꿈은 단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는 것이다. 타인이 세운 기준이므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


한농대 친구들은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들을 거들며 성장했기 때문에 삶에 기반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남이 정해 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진정성이 있다.


진정성이 있는 꿈은 구체적이다. 수많은 상상을 거쳐 입 밖으로 나왔을 테니 말이다. 이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내가 그리는 꿈에도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올해 신설학과가 생기며 인원이 늘어 2인실로 쓰이던 방이 3인실이 되었으니 비좁긴 하지만 포부는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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