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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17. 2018

한국에 대한 집요한 유교적 분석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고

박맹수 | 원광대학교 교수, 월불교사상연구원 원장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는 조성환 박사(한국철학 전공)가 일본의 ‘한류’ 관련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번역한 한글판이 지난 해(2017) 12월 출간되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중앙일간지, 그리고《 동양일보》,《 부산일보》, 《전북일보》 등 지방의 주요 신문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출간으로부터 몇 달이 지난 올 봄까지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로써 절찬리에 판매 중에 있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초판 1쇄 2천부, 2쇄 1천부가 모두 팔리고 지금은 3쇄째를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학계에서도 박규태(한양대), 이정배(감리교신학대) 교수 등이 서평을 통해 이 책에 주목했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교토대학 대학원(京都大學大學院) 인간환경학연구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철학을 강의하고 있는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수가 1998년에 낸 데뷔작인데, 제반 사정으로 인해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한글판이 나오게 되었다. 오구라 교수는 일본의 이웃나라로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에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철학·사상·문화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회나 연구회가 일본 안에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이상(異常)’한 상태라고 지적(『장래세대가 창조하는 동아시아와 한국학』, 2013년 3월 20일 원광대학교에서 개최된 원광대와 교토대학 차세대 포럼, 8쪽 참조)하고, 일본에서 한국철학과 한국사상, 한국문화 등을 비롯한 한국학 전반에 관한 연구를 견인하고 있는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학자다.


그는 현존하는 일본인 학자 가운데 한국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현대한국에 가장 정통한 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오구라 교수의 『한국, 사랑과 사상의 여행』(2004), 『마음으로 아는 한국』(2005), 『한류 핸드북』(2007),『 하이브리드화하는 한일』(2010), 『조선사상전사』(2017) 등 수준 높은 한국학 저서를 지속적으로 출간하고 있는 사실에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면, 오구라 교수의 한국에 관한 관심과 열정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대한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시대였던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오구라 교수는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던 시기인 1988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한다. 그리하여 장장 8년이란 기간 동안 대학생들과 함께 최루탄 연기를 마시며 한국철학 연구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학원생 오구라는 유학 기간 중에 상아탑 바깥에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지성들을 두루 역방하면서 한국에 대한 ‘산 공부’를 거듭했다고 전한다. 그가 만난 대표적 지성들 중에는 이어령(전 문화부장관), 김용옥(전 고려대 교수), 김지하 시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오구라 교수의 한국학에 대한 학문적 연찬이 깊고 다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유학 생활을 마친 오구라 교수는 1996년에 본국으로 귀국하게 되고, 귀국 이후에는 동해대학 교수, 일본의 공영방송 NHK 한글강좌 강사를 담당하면서 199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일본의 ‘한류’ 봄 조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오구라 교수의 학문활동 중에서 한국인들이라면 누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1998년에 고단샤(講談社)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그의 학자로서 처녀작이자 데뷔작이 일본 사회를 ‘강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유학(儒學, 주자학이라고 해도 좋다)의 핵심 개념인 (理)와 기(氣) 두 축으로 현대 한국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한국인들이 미처 주목하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이와 기라는 유학의 개념을 분석틀로 삼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문장으로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한다.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인들의 한국인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종래의 드라마나 영화, 가요 등 대중문화 중심의 한류 붐을 일거에 한국의 철학이나 역사, 또는 전통문화 쪽으로 전환시킬 만큼 일본인들에게 ‘지적 충격’을 던져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출간 당시부터 한국에서도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저자를 둘러싼 제반 사정 등 여러 여건이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다행히 이번에 오구라 교수와 ‘깊은’ 인연이 있는 조성환 박사가 오랜 기간에 걸쳐 힘쓴 덕분에 한국어판이 나오게 되었다(역자 후기 참조).


원저가 나온 지 20년이 지났지만 이 책이 시사하는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며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만큼 현대 한국을 아직도 강고하게 지탱하고 있는 이와 기의 강인한 ‘생명력’을 일관성 있게, 총체적으로, 그리고 통렬하게 해부하는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구라 교수만큼 집요하게 현대 한국의 ‘유교적’ 성격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학자는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여기저기서 불편한 심정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현대 한국을 위해서, 또는 현대한국에서 학문하는 이들을 위해서 저자가 주는 ‘학문적’ 문제제기로 읽어 가면 어떨까 한다. 다행히 이 책은 한국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의 손에 의해, 그리고 일본유학을 경험한 지일파 학자의 손에 의해 번역된 덕분에 번역이 정확하면서도 한글 표현도 매우 유려하다. 이 책을 통해 현대 한국인들이 ‘우리 철학, 우리 학문, 우리 문화, 우리 종교’ 등 한국학 전반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깊어지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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