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월문집』을 통해 본 최시형의 동학 재건 운동 (10)
(지난호에 이어서)
通文
右文爲通諭事. 伏以天運循環, 始創五萬年大道, 世魔降盡, 永孚三七字靈圖. 應運
而生, 待時而隱. 認道而修道者, 道專在於誠敬信三端, 事天而奉天者, 天必佑於侍
定知三字.
통문
이 글은 널리 깨우치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건대 천운이 순환하여 비로소 5만년의 대도가 시작되었고, 세상의 마귀가 다 항복하여 영원히 삼칠자 영도(靈圖)를 믿게 되었습니다. 운에 응해서 살고 때를 기다려 숨으십시오. 도를 알고 도를 닦는 자는 도가 오로지 성경신(誠敬信) 삼단(三端)에 있고, 하늘을 섬기고 하늘을 받드는 자는 하늘이 반드시 시정지(侍定知) 삼자(三字)를 돕습니다.
【뜻풀이】
▲孚(부) : 믿다.
▲三七者(삼칠자) : 21글자 주문. 본주문 13글자와 강령주문 8글자를 합친 것.
▲靈圖(영도) : 궁궁을(弓弓乙) 부적을 지칭.
▲三端(삼단) : ‘성경신’을 사단(四端)과 비견되는 삼단(三端)이라고 한 것으로 동학의 독창적인 용어.
▲侍定知(시정지) :본주문 “시천주(侍天主) 조화정(造化定) 영세불망(永世不忘) 만사지(萬事知)”의 준말.
박맹수 : 이 통문은 1892년(임진년) 음력 8월 29일에 작성된 것인데, 이로부터 두 달 후에 공주집회가 열립니다. 그래서 동학이 30여년간 지하에 잠복해 있다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직전의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수면 위로 부상되기 전에 지하에서 소용돌이가 치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부에서 치열한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기존의 연구자들은 이런 통문에는 거의 주목하고 있지 않습니다.
夫何世衰而運晦, 道微而訛多, 傳道者不明, 修道者不慎. 或聞流言飛呪, 或致亂亂法. 此何人斯敢不憫然! 伏願僉君子, 一念靡懈, 念不已於守其心正(其)氣, 萬事惟宜, 事無窮於合其德受其知. 取可退否. 必定再思之心, 去慾懺咎. 願隨一切之善, 須存日夕之惕念, 以俟陽春之回焉. 新約諸條, 羅列如左, 伏請.
대저 어찌하여 세상이 쇠퇴하여 운이 어두워지고 도가 미약하여 그릇됨이 많아져서, 도를 전하는 자는 밝지 못하고 도를 닦는 자는 삼가지 않아서, 혹자는 유언비주를 듣고 혹자는 도를 어지럽히고 법을 혼란시키는데 이르니, 이것은 누구이든 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모든 군자들은 한 생각도 게을리 하지 말고 끊임없이 그 마음을 지키고 그 기운을 바르게 할 것을 생각하고, 모든 일에 마땅함을 생각하여 무궁하게 그 덕에 부합되고 그 앎을 받아들일 것을 일삼으십시오.
가한 것은 받아들이고 불가한 것은 물리치십시오.
반드시 두 번 생각하는 마음을 정해서 욕심을 버리고 허물을 뉘우치십시오.
바라건대 모든 선에 따라서 반드시 아침저녁으로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간직하여 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시오. 다음과 같이 조항들을 새롭게 제정하니 삼가 부탁드립니다.
【뜻풀이】
▲惕念(척념) : 경계하여 두려워하는 생각
박맹수 : 1889년에「 신정절목」이 제정되었는데, 그로부터 3년 뒤인 1892년에 「신약」이 제정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상황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달라진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동학지도부 안의 움직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 강령 : 경천거사
一. 凡吾道者, 卽天下無極之大事也. 出於天, 昭於東, 三綱定矣, 五倫明矣. 仁義禮
智, 孝悌忠信, 莫不畢備於斯道之理, 苟或入道之民, 全昧其理, 唯事托名, 則非吾所
謂道也.
天鑑孔昭, 天何欺哉! 神目如電, 神可謾乎! 唯願僉君子, 重義立綱, 敬天尊師, 一念
慥慥, 去私歸正事.
첫째, 무릇 우리 도는 천하의 무극의 대도이다. 하늘에서 나와서 동방에서 빛나니, 삼강이 정해지고 오륜이 밝혀졌다. 인의예지와 효제충신이 이 도의 이치에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으니, 만약에 혹시라도 도에 들어오는 사람이 그 이치에 전혀 어두워서 오로지 이름에 의탁하는 것을 일삼는다면 우리가 말하는 도가 아니다.
하늘이 살피는 것은 실로 밝으니, 하늘을 어찌 숨기겠는가! 신의 눈은 번개와 같으니 신을 속일 수 있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모든 군자들은 의리를 중시하고 기강을 세워서 하늘을 공경하고 스승을 높여서 한결같은 생각으로 착실하게 사사로움을 제거하고 올바름으로 돌아갈 것이다.
【뜻풀이】
▲鑑(감) : 거울, 비추다, 살피다.
▲孔(공) : 깊다, 크다, 성대하다.
▲天鑑孔昭(천감공소) : 구양수의 글「 亳州乞致仕第二表」(호주에서 치사를 청한 두 번째 표)에 나오는 말.
▲謾(만) : 속이다.
▲慥(조) : 착실한 모양
두 번째 강령: 신뢰중시
一. 吾道之理, 以信爲主. 夫五常有信, 有五行有土也. 仁義禮智, 非信不行, 水火金
木, 非土則不成. 信之於人, 顧不重歟! 凡我同道之人, 其於修道, 先以信一字爲重.
其於臨事, 亦以信一字爲主.
둘째, 우리 도의 이치는 신(信)을 주로 한다. 대저 오상(五常)에 신(信)이 있는 것은 오행(五行)에 토(土)가 있는 것과 같다. 인의예지는 ‘신’이 아니면 행해지지 않고, 수화금목은 ‘토’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람에게 있어 ‘신’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무릇 도를 함께 하는 우리들은 도를 닦을 때에 먼저 ‘신’ 한 글자를 중히 여기고, 일에 임해서도 ‘신’ 한 글자를 위주로 해야 한다.
박맹수 : 여기에 나오는 ‘인의예지신’은 유교에서 말하는 오상(五常), 즉 다섯 가지 덕목입니다. 이처럼 강령에 유교적 덕목이나 표현이 많은 것은 동학사상이 유교와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동학사상에 변화가 생기는 측면도 있습니다. 즉 동학사상에 유교적 요소가 많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지요.
세 번째 강령 : 생업충실
一. 天生萬民, 必受其職. 人生世間, 曰有四民, 卽士農工商也. 凡同道之人, 玆以入道爲藉, 不守其業, 不顧其家. 優遊道路, 流蕩不法, 則非吾所謂道人也. 苟無恒産, 則必無恒心. 苟無恒心, 豈有心不正, 而身修家齊者乎! 惟願入道之人, 各守其業, 耕者耕, 讀者讀, 工者工, 商者商, 安分樂道, 修身齊家, 無至怠荒事.
셋째, 하늘이 만백성을 내실 때 반드시 그 직분을 주었다(授).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니 사민(四民)이 있게 되었는데 이들이 곧 사농공상이다. 무릇 도를 함께 하는 사람이 도에 들어온 것을 핑계 삼아 생업을 지키지 않고 집안을 돌보지 않으며 도로에서 놀고 방탕하며 법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가 말하는 도인이 아니다. 진실로 항산이 없으면 반드시 항심도 없다. 진실로 항심이 없으면,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서 몸이 닦여지고 집안이 가지런해 지는 일이 어찌 있겠는가!
오직 바라건대 도에 들어온 사람은 각자 자기 생업을 지켜서 밭가는 사람은 밭 갈고 독서하는 사람은 독서하고 물건 만드는 사람은 물건 만들고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해서, 분수에 만족하고 도를 즐거워하며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데 게으르거나 방탕한 일이 없을 것.
【뜻풀이】
▲天生萬民(천생만민), 必受其職(필수기직) :『 장자「』천지」편에 나오는 “天生萬民,必授其職”이 출전이다(受가 아니고 授로 되어 있음). “天生萬民”은『 시경「』대아「」증민(蒸民)」편에 나오는 “天生蒸民”(천생증민)에서 유래한다.
▲藉(자) : 구실삼다, 핑계대다.
박맹수 이 10개 강령은 1892년에 해월이 전국의 동학 도인들에게 보낸 것인데, 이렇게 강령을 새로 정해서 보냈다는 것은 동학의 교세가 날로 퍼져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도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폐단도 생겼는데, 가령 동학사상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겉으로 흉내 만 내고 다니는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강령은 이들을 경계한 내용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말하는 ‘職’(직)은 ‘직업’이라기보다는 ‘생업’(生業)을 말합니다. 동학은 민초들의 생명과 생활과 생업을 구하기 위해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런데 동학에 뛰어 들어서 오히려 생업을 소홀히 하면 그것은 본래의 동학정신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자기 생업에 충실하면서 도를 닦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부분은 원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이 생활이고 생활이 불법이다”는 말과 상통합니다.
네 번째 강령 : 지공무사(至公無私)
一. 天下之事, 有公有私. 公者天下之大公也, 私者一人之偏私也. 臨事而守公, 則人無異言, 事事牢實. 做事而循私, 則人多怨言, 事事携貳. 公私之間, 有君子小人. 唯我道人, 不鄙蕘言. 至心處道. 切禁訶諛之容, 莫近讒謟之人, 一以至公無私爲主事.
넷째, 천하의 일에는 공이 있고 사가 있다. 공이란 천하 사람들의 커다란 공이고, 사란 한 사람의 편협한 사이다. 일에 임해서 공을 지키면, 사람들이 다른 말이 없고 일마다 견실해진다. 일을 하는데 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원망하는 말이 많고 일마다 사이가 틀어진다. 공과 사 사이에 군자와 소인이 있다. 오직 우리 도인들만이 땔나무꾼의 말이라도 비하하지 않고, 지극한 마음으로 도에 머문다.
아첨하는 이들은 절대로 금하고 헐뜯는 사람은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지극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것을 중심으로 삼을 것.
【뜻풀이】
▲牢(뢰) : 굳다, 견고하다.
▲牢實(뢰실) : 견실하다, 단단하다.
▲做(주) : 짓다, 만들다.
▲携(휴) : 떨어지다, 분리하다.
▲貳(이) : 둘
▲携貳(휴이) : 사이가 나빠짐, 사이가 틀어짐.
▲蕘(요) : 땔나무, 나무꾼(蕘夫).
▲蕘言(요언) : 나무꾼과 같이 신분이 천한 사람의 말. ‘蕘’(요) 대신에 ‘芻’(추)를 써서 ‘芻言’(추언=꼴 베는 사람의 말)이라고 해도 같은 의미가 된다. 합쳐서 ‘芻蕘之言’(추요지언)이나 ‘추요지설’(芻蕘之說=풀을 베고 나무를 하는 천한 사람의 말)이라고도 한다.『 시경「』대아」·「판(板)」에 나오는 “先民有言(선민유언),詢於芻蕘(자어추요)”(선인의 말씀에 “꼴 베는 사람과 땔나무꾼에게 자세히 물으라”고 하였다)이 출전이다.
▲訶(가) : 꾸짖다, 야단하다, 책망하다. 그런데 문맥상 ‘阿’(아)가 맞는 것 같다.
▲諛(유) : 아첨하다, 기꺼이 따르다. ‘阿諛’(아유)는 ‘아첨하다’는 뜻이므로 앞의 ‘訶’(가)는 ‘阿’(아)의 잘못인 것 같다.『 사기』「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阿諛苟容”(아유구용=남에게 잘 보이려고 알랑거린다)이라는 말이 나온다.
▲讒(참) : 헐뜯다, 아첨하다, 속이다, 거짓말하다.
▲謟(도) : 의심하다, 어긋나다. ‘모함하다’의 ‘陷’(함)자를 써서 ‘讒陷’(참함)이라고 하면 “헐뜯는 말로 남을 죄에 빠트린다”는 뜻이 되므로, 앞의 ‘謟’(도)는 ‘陷’(함)의 잘못이 아닌가 생각된다.
▲至公無私(지공무사) : 유학에서 자주 쓰는 말. 가령 주자는『 대학장구』에서 어진 사람(仁人)은 ‘지공무사’하다고 말하고 있고(“此謂唯仁人, 爲能愛人, 能惡人”에 대한 주석1), 19세기의 기학자 최한기는 『인정(人政)』에서 “오직 지공무사함으로 빛나는 하늘과 화창한 태양 아래에 서라”(惟以至公無私, 立於光天和日)고2 하였다. ‘대공무사’(大公無私)라고도 한다.
박맹수 : 이 강령은 동학이 추구하는 ‘공공성’(公共性) 또는 ‘공공(公共)하다’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잘 집약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동학의 공공성을 논한 선행연구가 한 10여 편 정도 있는 걸로 압니다. 저도 두 편 썼습니다만, 아무도 이 단락에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이런 내용이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지공무사’는 원불교에서도 제일 많이 쓰는 표현인데, 다만 차이가 있다면 동학의 경우에는 ‘시천주’ 사상의 맥락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동학에서는 모든 존재가 자기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侍天主) 점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존귀합니다. 이런 관점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이 동학에서의 ‘지극히 공평하고(至公) 사사로움이 없는(無私)’ 태도입니다. 반대로 시천주라는 사실을 무시한 채 사람을 차별하고 생명을 경시하는 것이 바로 ‘사’적인 태도입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무사’(無私)는 개인의 소멸이나 희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즉 ‘멸사’(滅私)가 아닙니다.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권리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김태창 선생이 말하는 ‘활사’(活私=‘사’를 살린다)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땔나무꾼 말이라도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말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 5천년 역사에서 동학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표현입니다. 여기에서 ‘땔나무꾼’은 피지배층, 민중들을 가리킵니다. 선천시대 5만년 동안 지배 계급에 의해서 일방적인 교화, 계몽, 통치의 대상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말을 천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사람들의 말도 ‘살린다’(活)는 뜻입니다. 거꾸로 이런 사람들의 말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사’적인 태도입니다.
조성환 : 이곳의 공사(公私)에 관한 논의는 유교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나무꾼의 말도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표현은 확실히 동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은, 교수님께서 지적하셨듯이 동학의 ‘사’는 하늘님을 모시고 있는 ‘사’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이 단락은 ‘시천주’라는 사상을 염두에 두고 이해를 해야 유교와는 다른 ‘동학적’인 공사론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원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봉공’(無我奉公)은 말 그 자체만 가지고는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나를 없애라는 식으로 들리니까요. 그런데 원불교에서도 이때의 ‘무아’가 내가 없어지는 무아가 아니라 오히려 나를 살리는 무아, 그러면서 동시에 전체에 이로운(奉公) 무아라고 해석할 수 있으면 현대적인 공사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담 유교에서의 보통 ‘천하’라고 하면 군주가 다스리는 천하를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맥락상 ‘군주의 천하’가 아니라 ‘군자의 천하’를 가리키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 그러고 보니까 ‘천하의 대공’(天下之大公)이라는 말은 ‘일인의 편사’ (一人之偏私)와 대비되어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러한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천하’는 ‘일인’에 대한 ‘만인’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바로 다음에 “나무꾼의 말도 비루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한 것이고요. 그리고 국담 선생님처럼 해석한다면, 여기에서 ‘일인’이 군주라고 한다면 ‘만인’은 백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지요. 천자나 군주의 천하에 대해서 백성의 천하, 인민의 천하를 ‘공’으로 보는 것이지요.
문제는 “공과 사의 사이에 군자와 소인이 있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신분제 사회에서는 군자와 소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양반이 군자이고 상민이 소인인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백정이 제 아무리 훌륭한 인품과 덕성과 학식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을리는 만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천민은 다 소인인 셈이지요. 물론 양반 중에도 도덕적인 양반은 군자가 되고 부도덕한 양반은 소인이 됩니다. 이것이 공자식 구분이었습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유(君子儒)가 되지 소인유(小人儒)는 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군자와 소인이라는 말에는 도덕적 의미도 있지만 계급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공과 사의 사이에 군자와 소인이 있다”는 말은 공과 사라는 순전히 도덕적인 의미로만 군자와 소인을 구분하겠다는 주장이 아닐까요? 그리고 이때의 도덕은 유교적 도덕이 아닌 동학적 도덕, 즉 신분에 상관없이 하늘님을 공경하고 모시는 시천주의 마음과 행위를 말하겠지요.
김봉곤 : 저는 여기에서 주목해야 될 말이 ‘도인’(道人)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를 실현하는 자들이라는 뜻이지요. 동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대목은 비록 농민이라도 나라가 위태로우면 일어나서 ‘도’를 실현하겠다고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농민이 도를 실천하고 공을 실현시키는 주체로 등장한 것이지요. 이곳의 ‘도인’이라는 말에도 그런 함축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성환 : 사실 이 단락은 표현상으로만 보면 유교적 공사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인’이라는 말만 빼고 보면요. 그런데 이곳의 공사론의 유교의 공사론과 다른 점은 하늘님을 모시고 있는 ‘천인’(天人)의 인간관을 바탕으로 한 공사론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이 천인의 인간관을 실제로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도인’(道人)이지요. 그래서 ‘도인’이라는 말에 담긴 동학적 함축을 읽어내지 못하면 이곳의 공사론은 유교나 다른 사상의 공사론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다섯 번째 강령 : 유무상자(有無相資)
一. 同聲相應, 同氣相求, 有古今通義, 而至於吾道, 其理尤著. 患難相救, 貧窮相恤,
亦有先賢之鄕納, 而至於吾道, 其誼尤重. 凡我同道之人, 遵一約束, 相愛相資, 無或違規事.
다섯째, 같은 소리끼리 서로 반응하고 같은 기운끼리 서로 원하는 것은 고금의 공통된 도리이지만, 우리 도에 이르러서 그 이치가 더욱 뚜렷해졌다. 환난을 당하면 서로 돕고 빈궁하면 서로 구휼하는 것은 선현들의 향약에도 있었지만 우리 도에 이르러서는 그 도리가 더욱 중해졌다.
무릇 도를 함께하는 우리들은 약속을 한결같이 지켜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와서 혹시라도 규정을 어기는 일이 없을 것.
박맹수 : 앞의 강령이 공사에 관한 윤리적 내용이라고 한다면, 이 강령은 경제와 관련된 구체적인 ‘생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전체 요지를 한마디로 하면 ‘유무상자’(有無相資)입니다. 즉 가진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학에 들어가면 굶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홍종식의 『동학난실화』(『新人間』 제15집, 1929)를 보면, 이 원리가 초기동학에서부터 1894년 농민혁명 때까지 단 한순간도 끊이지 않고 줄곧 이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동학이 지향한 유무상자의 경제공동체는 한국적 생활협동조합의 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한국의 개벽종교에서 ‘조합’이라는 말은 1917년에 원불교가 전개한 ‘저축조합운동’에서 처음 쓰이기 시작했지만, 근대적인 의미의 협동조합운동의 원조는 역시 동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수십 년간의 탄압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갑오년에 수백만 명이 들고 일어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에너지원이었습니다. 굶는 사람이 없게 한 것이 혁명의 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민초들은 이념보다는 자신들의 삶과 가장 직결되는 생활문제에 먼저 눈을 뜨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면 가난한 농민들이 어떻게 유무상자를 실천했을까요? 비단 옷 입던 것을 삼베옷으로 바꾸고, 담배 피던 것 끊고, 술 마시던 것 끊고, 이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없는 자들을 도운 것입니다. 저는 이 원리는 지금 우리사회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날로 극심해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유무상자의 원리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조성환 : 여기에서 자신들이 “선현들의 향약을 잇고 있다”고 하면서 조선시대의 향약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다는 의식이 분명하게 보이고 있는데, ‘향약’에 해당하는 동학적인 용어는 따로 없었을까요? 아니면 그대로 ‘향약’이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또 하나는 조선시대의 ‘향약’과 동학의 ‘유무상자’ 그리고 오늘날의 ‘협동조합’ 사이에는 기본정신은 서로 통한다고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내용상의 차이가 있겠지요. 가령 제가 어렸을 때 경험한 두레 같은 것은 일종의 노동력의 공유였고, 동학의 유무상자는 경제력의 공유였던 것 같습니다. 이 세 가지를 단계별로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박맹수 그렇게 보면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연결고리 역할을 동학이 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일종의 한국식 모델을 만든 셈이지요. 이것이 일제시대 때에는 노동공제운동이나 천도교의 협동조합운동, 농민조합과 노동조합운동, 그리고 원불교의 저축조합운동 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을 모두 서구에서 전래된 조합운동의 영향으로 이해했는데, 앞으로는 우리 안에서 내재적으로 발전해 온 제도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홍지훈 : 혹시 중국이나 일본도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이와 같은 자생적 경제공동체가 있었을까요?
야규 마코토 : 물론 일본에도 ‘쿠미아이’(組合)라고 해서 조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동학과 같이 분명한 사상적 틀이 있어서, 그것을 축으로 전개된 것은 아닙니다. 동학은 ‘문명개벽’이라는 커다란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서 생활공동체, 학문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중앙집권적이지 않고 각 조직 단위로 하나하나가 유무상자를 실천하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이런 사례는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에도 각 지역마다 씨족공동체가 있고, 또 동업자들의 공동체도 있는데, 이것들은 대체로 사회의 인연에 의해 맺어진 조직이고, 또 동학처럼 대대적으로 전개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박맹수 : 사실 동학처럼 명확한 이념을 가지고 수십 년 동안 탄압을 견디며 지속된 혁명운동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일사학자 조경달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민중혁명 중에서 가히 최고 수준이자 최대 규모라고 평가할 만하다고 했습니다(조경달 저·박맹수 역,『이단의 민중반락』, 역사비평사, 2008). 그런데 우리는 단지 동학농민혁명의 결과적 측면만 보고, 동학을 실패한 혁명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러나 사상사적으로 보면 동학농민운동은 한국적 또는 토착적 근대문명의 모델을 우리 힘으로 제시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강령 : 남녀유별(男女有別)
一. 男女有別, 卽古聖遺來之嚴規, 而有夫女防塞, 亦有吾師之遺訓. 雖在時俗之人,
亦知有別男女之義, 況吾道之人乎! 唯願僉道人, 惕然自念, 斷然自誓, 以重內外之
別, 無或混處, 以嚴以畏, 克敬克愼事.
여섯째, 남녀유별은 옛 성인들이 남겨준 엄격한 규범이고, 남편 있는 여자는 취하지 말하는 것은 우리 스승의 유훈에도 있다. 세속에 있는 사람도 남녀를 구별하는 도리가 있음을 아는데, 하물며 우리 도인들에게 있어서랴!
오직 바라건대 모든 도인들은 두렵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연히 스스로 맹세해서 내외의 구별을 중시하여 혹시라도 자리를 섞는 일이 없게 하고 엄격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공경하고 삼갈 것.
【뜻풀이】
▲惕(척) : 두려워하다, 놀라다, 걱정하다.
▲有夫女(유부녀) : 남편이 있는 여자.
박맹수 : ‘부녀방색’(夫女防塞)은『 동경대전「』수덕문」에 “有夫女之防塞, 國大典之所禁”(유부녀를 취하는 것은『 경국대전』에서 금하는 바이다)이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맨 앞의 ‘남녀 유별’도 삼강오륜에서 말하는 ‘부부유별’이 아니라, 남녀가 접포에 출입을 할 때 남녀 간의 윤리를 지켜라는 말입니다. ‘혼처’ 즉 ‘남녀가 자리를 섞는 것’을 금하라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일곱번째 강령 : 예법준수
一, 凡爲道者, 禮法爲重. 況吾道之祭禮道法, 本有次序. 而近聞傳道者, 多有誤錯.
祭禮不同, 道法不明. 此非吾師吾道之所由設也. 或有自尊自恃, 至於各立之擧, 此非道同之誼也. 亦非歸一之理也. 惟願從玆以往, 勿有自尊之心, 傳者受者, 克明其理. 凡於禮法節, 一遵定式, 毋至相貳事.
무릇 도를 행하는 일은 예법이 중요하다. 우리 도의 예법과 도법은 본래 순서가 있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근래에 듣건대 도를 전하는 자가 착오가 많아서 제례가 같지 않고 도법이 분명하지 않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 스승과 우리도가 마련한 바가 아니다. 혹자는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믿어서 각자 일어서는 행동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도를 함께하는 도리도 아니고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도 아니다.
오직 바라건대 앞으로는 자기를 높이는 마음을 갖지 말고, 전하는 자나받는 자가 그 이치를 잘 밝혀서, 모든 예법과 예절에 있어서 한결같이 정식을 따르고 서로 차이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박맹수 : 여기에서 ‘제례’는 입도식(入道式), 치제식(致祭式), 제수식(祭需式)과 같은 동학 의례와 관련된 의식 전반을 말하고, ‘도법’은 연원(淵源), 즉 도의 계통을 제대로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수운 선생의 도법을 나타내는 말은 ‘용담연원’입니다. 항상 대접주 임명장이나 접주 임명장을 보면 ‘용담연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어서 해월 선생의 경우에는 ‘북접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대접주나 접주가 나오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데 1890년대가 되면 대접주나 접주가 연원도통을 무시하고 사사로이 자기 세력화를 하기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동경대전』 같은 경전을 사사로이 간행하기도 합니다. 조직이 커지면서 나오는 현상들인데, 이 강령은 이런 폐단을 바로잡자는 내용입니다.
여덟 번째 강령: 접주임무
一. 各邑道中, 特定接主一員, 使入道者, 必爲受道於本邑接主, 以正淵源. 務歸於正. 凡於修道等節, 一從接主之指導, 而接主則其於傳道之際, 詳察其人之賢否. 克念克愼, 無至輕忽事.
여덟째, 각 읍의 도인들 중에서 특별히 접주 한명을 선정하여, 입도한 사람들은 반드시 본 읍의 접주로부터 도를 받게 하여 연원을 바르게 하고 정도로 돌아가는데 힘쓰도록 한다. 무릇 도를 닦는 등의 절차에 있어서는 한결같이 접주의 지도에 따르고, 접주는 도를 전할 때에 그 사람이 현명한지 아닌지를 자세히 살핀다.
유념하고 신중하게 하여 경솔하고 소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최은희 : 이 강령이 나올 당시에 전봉준은 고부(古阜) 접주였습니다. 고부가 굉장히 큰 읍이었는데, 전봉준 이외에는 고부접주를 지낸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전봉준도 이 강령에서와 같이 고부읍의 책임자로 선정되어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그 이전에는 사람 중심으로 접이 조직되었는데, 이 무렵부터는 지역 중심으로 조직되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박맹수 : 동학조직의 핵심원리는 ‘연원제’(淵源制)와 ‘연비제’(淵臂制)입니다.‘연원’은 동학을 나에게 전해준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이고, ‘연비’는 그 스승으로부터 동학의 가르침을 전해 받은 제자를 말합니다. 연원제와 연비제는 지역과는무관합니다. 인맥(人脈) 중심입니다. 가령 제가 익산에 살지만 저의 연비가 경상도에 있을 수도 있고 강원도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놓치면 동학혁명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착오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동학 조직을 인맥이 아닌 지역을 중심으로 이해하여, 해월은 충청도 지역, 전봉준은 전라도 지역, 이렇게 구분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해월과 전봉준을 인맥 중심으로 생각하면, 해월로부터 도를 받은 사람이 김덕명이고, 김덕명으로부터 도를 받은 사람이 바로 전봉준입니다. 그래서 전봉준은 해월의 손자뻘 제자에 해당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동학혁명 당시 전봉준은 접주급이었습니다. 접주는 적게는 2-300명, 많게는 7-800명의 연비를 거느립니다. 천명을 넘지 않는 규모의 지도자였습니다. 이 접주 위에 수접주(首接主)가 있고, 그 위에 대접주(大接主)가 있는데, 대접주는 연비가 최소 2-3천명, 많으면 5-6천명에 이릅니다. 김개남, 김덕명, 손화중은 대접주입니다. 그런데 손화중과 전봉준이 가깝게 된 계기는 고부봉기 때에 전봉준이 고부에서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어서 손화중의 포가 있는 무장(茂長),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손화중의 연비 4천명을 그대로 물려 받습니다. 그래서 손화중과의 관계가 밀접해지게 됩니다. 정리하자면 동학조직은 연원과 연비라는 인맥 중심이고, 이들은 일종의 사제관계와 같습니다. 그리고 접주는 동학공동체 운동의 핵심 리더에 해당합니다. 접주는 자기 밑의 연비들이 탄압을 받아 감옥에 가게 되면 그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그 가족들을 피난시키고 돌보는 일을 책임집니다.
조성환 : 아까 최은희 선생님의 질문과 관련해서, 여기에 나오는 ‘각 읍’이나 ‘본 읍’은 어떤 의미로 쓰인 건가요? 가령 이 강령의 독자가 정읍 주민이라고 하면 ‘본 읍’은 당연히 정읍이 되겠지만, 동학조직이 인맥 중심이고 전국으로 퍼져있다고 한다면 이때의 ‘본 읍’은 어떤 의미일까요?
박맹수 : ‘읍’이라는 말은 대개 두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하나는 ‘군’이나 ‘현’과 같은 지역을 가리키고, 또 하나는 각각의 ‘접’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의미가 다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본 읍’을 지역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내가 소속되어 있는 군이나 현’을 의미합니다.
김봉곤 : 그렇다면 이 강령은 연원제나 연비제에 혼란이 생기니까 읍 중심으로 계통을 세우려고 하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조성환 : 동학 조직이 처음에는 인맥 중심으로 시작했다가 조직이 커지니까 지역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맹수 : 그렇습니다. 1893년에 보은취회에서 ‘포’(包) 제도가 확립되는데, ‘포’는 여러 ‘접’을 통괄하는 더 큰 조직인데, 이 때 여러 접이 특정 지역에 다수 분포되어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접’이 인맥중심의 조직이라면 ‘포’는 지역중심의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1892년은 인맥중심에서 지역중심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로, 양자가 혼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홉 번째 강령 : 편장임무
一. 道中特差便長四員, 俾爲巡行於各處, 周察於諸接, 有指目者, 幷全安接, 有疑訝者, 各別曉喩. 無常頻數, 出入以曉, 歸眞歸正事.
아홉째, 도인들 중에서 특별히 편장 네 명을 선출하여 각처를 순행하고 여러 접을 두루 살피게 한다. 지목되는 자가 있으면 모두 편안하게 대접하고, 의의하게 여기는 자가 있으면 각각 별도로 알아듣게 깨우쳐서, 수시로 드나들 때마다 깨우쳐서 진리와 정도로 돌아가게 할 것.
【뜻풀이】
▲差(차) : 가리다, 선택하다, 차출(差出)하다.
▲俾(비) : ~로 하여금 ~하게 하다(사역)
▲接(접) : 대접하다, 대우하다.
▲安接(안접) : 편안하게 살다.
▲효유9효유) : 알아듣게 이해시키고 타이르고 깨우쳐준다.
열 번째 강령 : 편장처벌
一. 諸接之不順敎喩者, 嚴來施罰. 便長之各處循行之時, 不能曉喩, 反有濁亂挾雜之弊, 則亦不免重罰, 卽令改差事.
열째, 접중에서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자는 엄하게 벌을 준다. 편장이 각처를 순행할 때에 깨우치지 못하고 오히려 문란하고 협잡하는 폐단이 있으면 중벌을 면치 못하고 즉시 다시 선출하도록 한다.
박맹수 : ‘편장’(便長)은 ‘편의장’(便宜長)이라고도 하는데, 지금까지 거의 연구가 안 된 부분입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편장은 1892년에 도입되었고 당시에 4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은 대체로 다섯 가지로, 순행(巡行), 주찰(周察), 안접(安接), 효유(曉喩), 시벌(施罰)입니다. 먼저 ‘순행’은 “전국 각지의 접과 포를 돌아다닌다”는 뜻이고, ‘주찰’은 “각 지역의 접과 포의 지도자인 접주의 행태나 도인들의 어려움 등을 세심하게 살핀다”는 뜻입니다. ‘안접’은 “탄압받았거나 감옥에 간 도인(道人) 또는 그 가족들을 잘 뒷바라지하고 보살핀다”는 뜻인데, 이 뒷바라지는 대단히 끈질기고 조직적이면서 목숨을 걸고 한 일입니다. 가령 수운 선생이 감옥에 갔을 때 해월 선생이 목숨을 걸고 옥중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결국에는 신변이 위태로워지니까 해월 선생도 도망을 가게 되지만, 이때 뒷바라지를 했던 사람들의 이름과 돈의 규모 등이 전부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이처럼 고통을 함께 할 때에 그 조직의 생명력이 더 살아납니다. 이 정도의 배려가 있으니까 동학 도인들도 운동에 목숨을 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을 책임지고 하는 지도자가 바로 편장 또는 편의장입니다. ‘효유’는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고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대화하여 깨우쳐준다”는 뜻이고, 마지막으로 ‘시벌’은 매천 황현이『 오하기문』에서 밝혔듯이, 일종의 교육적이고 인도적인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지난번에 읽은「 기축 신정절목」에 의하면, 도인이 잘못했을 때에는 접주와 도인을 보은에 있는 육임소로 올라오게 해서 교육받는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동학농민혁명 때 2-300만명이 1년 이상 싸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동학의 평등사상뿐만 아니라 편장제도와 같은 조직의 원리가 잘 작동한 데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학은 우리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할 때의 선구적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운동가의 연원도 동학에 있습니다. 동학의「 칼노래」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중운동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은희 : 여기에서 편의장을 네 명 뽑았다는 것은 지역적으로 나누었다는 의미겠지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이런 식으로.
박맹수 : 예 맞습니다. 편장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전라북도 익산이 고향인 백정 출신의 호남좌우도 편장 남계천(南啓天)입니다. 남계천 이외에 나머지 세 명이 누구인지도 연구를 해 봐야 합니다.
최은희 : 태인에 있는 사람들이 부안 출신의 어떤 분을 편의장으로 모시지 못하겠다고 해서 결국에는 남계천을 호남좌우도를 통괄하는 편의장으로 임명하는데, 아마도 위의 ‘개차’(改差) 조항에 따라서 부안 출신 편의장을 교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맹수 : 그럴 수 있겠네요. 실은 저도 10대강령을 이번에 처음으로 제대로 읽었는데 이전에 놓쳤던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동학조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석
1) 성백효 역주『, 대학·중용집주』, 전통문화연구회, 2016, 63쪽.
2) 『 인정(人政)』권15「 선인문(選人門)」二「 고험(考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