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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10. 2018

해석과잉, 정좌존심(靜坐存心)

-동학공부 7

해석과잉의 시대, 정좌존심(靜坐存心)이라는 상수(常數)


1.
일이 있으면, 이치에 따라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고요히 하세요.
말을 많이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마음공부에 가장 해로운 것입니다. 
[以理應事 靜坐存心 多言多慮 心術最害-海月: 對人接物]


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회장을 만난 것을 두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은 해석 과잉의 전형이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 의미 없는 행동은 없다. 특히 대통령(정치인)에게."
그 신조에 따라 모든 것의 의미를 분석하려고 애쓰는 언론들. 
그래야만 '언론인의 사명'을 다하고, 또 밥값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면,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꽃처럼
의미를 부여하면, 의미가 되고, 그 의미는 또 의미를 낳는다.
그렇게 해서, 현대사회에는 의미가 넘쳐난다.


또, '삼성' 입장에서는, 기어코 '의미'를 만들어내려고 할 것이므로

내가, "두 사람은 무미건조하게 그냥 스치듯 만나는 것"이라고 하면, 
'순진한 생각'이다. 이미 시대는 '현대사회'이므로.


2.

혜화역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용기"도
해석의 과잉과 희생적 도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듯...

그런데, 

그렇게, 해석에 의해서, 세계는 만들어져 간다. 

물론, 현실에 안주해서는 진보를 이룰 수가 없다.

용기있는 자만이, '미래'를 쟁취한다. 

('미인'은 버려야 할 말!)


그러나, 

진보하는 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불편과 불안과 불만들은
한편으로 우리 세계가 일구어 온 진보의 성과들인 것을...

해석의 과잉, 의욕(인위)의 과잉, 욕구의 과잉으로 만들어져 가는 세계...


3.

뭐니뭐니 해도, 오늘날 해석과잉의 주된 진원지는 SNS다.
지금 여기의 우리는 역사상 그 어느 때,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글을 읽고 쓰며, 더 많은 사진을 올리며 살아간다.
마치,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해석'(글쓰기, 사진 찍기)의 여지가 있는 어떤 것에든 
의미를 부여(쓰기)하고, 공감(좋아요)하고, 확산(공유)한다.


아무튼,

해석의 과잉은 정보의 과잉을, 정보(전파)의 과잉은
꿀벌의 죽음을, 꿀벌의 죽음은 생태계 죽음을 낳는다.


4. 

지금 여기...
정좌존심이라는 상수(常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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