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공부 34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리더십-팔로우십은
한마디로 '지도자'요 '인재'이다.
이때 지도자와 인재는 길러지는 것인가,
아니면 하늘이 낸 사람을 발굴/추대/영입하는 것인가.
예컨대, 동학 지도자로서의 해월은
그 본래의 인재성이 동학에서 발현된 것인가
아니면 동학을 수도함으로써 길러진 것인가?
원론적인 해답은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동학 2세교조'로서의 해월은 존립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원론이다.
현실은 원론으로보다, 무수한 예외들로 '실존'한다.
구체적으로, 한 조직이나 단체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인재는
조직 내부에서 길러지는가, 아니면 외부로부터 수혈되는가?
바람직하기로는 당연히(?) 내부로부터 길러지는 것이지만,
실제로 '교육'을 통해서 인재를 길러내는 일은 지난한 일이다.
[내가 주워들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인재 양성(선발) 과정은
지역 말단조직으로부터 끊임없는 평가와 시험(text)을 거치면서
다음단계(상위 보직)으로 상향되어 가는 구조를 거치기 때문에,
중앙당의 어느 정도 고위직에 이른 공산당 간부라면
이미 기본 소양은 갖춘 것으로 보아도 좋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렇다면, 중국 공산당의 조직이야말로, 지상에서 볼 수 있는
최선의 이상적인 인재 양성 체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 종단은 지도자(성직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명칭이 뭐든)를
갖추고 있으며, 교단(교회) 내에서도 수많은 학습조직을 갖추어
끊임없이 교인들을 교육/교화/감화시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사실, 설교와 수행/수도을 통한, 종교의 핵심 과업/미션은 바로
인재(훌륭한, 신자= 인간) 양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때 그러한 제도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인재들은
그 제도교육의 성취인가, 그 인재의 가능성이 발현된 것인가.
이 역시, 어느 일방이 절대적인 것이라기보다,
양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성취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 인재의 인재성(선천적)이 드러나거나
그 제도의 효과란 필연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우연의 산물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혹은,
제도와 인재를 매개하는 지도자(교사)의 품성이나 언행이
교육 커리큘럼 내용보다 더 결정적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리더십 - 팔로워십과 관련하여 동경대전-논학문에 나오는
"요순 시대에는 백성들이 (요순의 덕화에 의하여) 다 요순이
됨으로써, 요순지치가 이루어졌다."는 말씀은
리더십의 위력/공력이 팔로워십을 전제로 한다는 식으로
도식화될 수 없다는 사례로 거론할 수 있다.
그러나 요순 시대의 이야기는 '신화적인 것'이며,
후대에 미화되었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수운 선생은 동학을 창도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요순의 정치로도 부족하고, 공맹의 덕으로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득도/각도/창도한 것이 동학이다.
동학의 창도로부터 다시 159년.
그때와는 시대가 또 한 번 달라진 것인가?
수운이 해답 체계로서 제시한 동학은 여전히 유효한가.
동학 자체의 지도력(리더십),
동학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역량(팔로워십),
그리고 동학의 이치를 구현하는 사회적인 환경(펠로 우십)을
통틀어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라
마을마다 혹은 골짜기마다 상수들이 존재하고
그를 따르는 팔로워들(팬, 마니아, 제자들)이 적지 않고
유기성을 갖춘 학습/실천 공동체가 또한 적지 않다.
새로운 종교적 – 동학적
리더십-팔로워십-펠로 우십은 어떻게, 어디서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