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말 2
‘때문에’라는 말보다 ‘덕분에’라는 말을 더 자주 하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도 ‘성공’이다. 그럴싸하다.
성공한 것이 먼저인지 덕분에를 말한 것이 먼저인지 따져볼 여지는 있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설령 성공이 먼저이고, 그다음에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덕분에’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 하여도, 이미 성공한 다음이고 보면, 여기저기서 저 사람은 성공하기 전부터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 증언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위증은 제외하고 진정만을 모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성공’이라는 걸 하고도, ‘덕분에’라는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세상의 성공 가운데 누군가의 ‘덕분’이 아닌 것이 있으랴! 그런데도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제가 잘나서, 경쟁(싸움)에서 이겨서 결실로 거둔 것이 지금의 성공이라고 믿는다(착각한다)!
그러니 일단 ‘덕분에’라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미루어 짐작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하기사 한울님도 관심을 가진 것이 ‘성공’이니, 성공에 목을 매단다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게다가 성공이라는 말의 본뜻이 신자유주의 세태에 찌들어 '치부입신'에 국한되고 치우치는 것이 문제이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저마다의 까닭을 알아채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한다면, 성공을 마다할 일은 결코 아니다.
한울님 하신 말씀 개벽 후 오만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나도 또한 개벽 이후 노이무공(勞而無功)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成功)하니 나도 성공 너도 득의(得意)
너희 집안 운수(運數)로다 (용담유사, 용담가)
‘덕분에’라는 말은 어쩌면 ‘헬-조선’이라는 응달을 따뜻하게 하고 밝게 해 주는 봄 햇살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덕분에!’를 잘, 자주 말하면 성공하는지 어떤지는 내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지만(덕분에를 자주 말해 오지도 않았고, 성공하지도 않았다!), ‘덕분에’를 잘 쓰면 글쓰기를 잘 하는 데, 혹은 좋은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 보증할 수 있다. 좋은 글을 쓰려면, 혹은 글을 잘 쓰려면 정확하게 쓰는 것이 한 방법이다. 정확한 글이 다 좋은 글도 아니며, 좋은 글이 반드시 정확한 글인 것은 아니지만.
국립국어원의 설명에 따르면 ‘덕분에’는 긍정적인 경우에, ‘때문에’는 긍정과 부정 모두에 ‘탓’은 부정적인 경우에 쓴다고 되어 있다. ‘때문에’라는 말이 중립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두서없이 쓰는 버릇이 입에 붙어서 비슷한 자리에는 온통 '때문에'를 써 버린다. 내 경험에 따르면, 대체로 좋은 글이 되는 경우는 ‘때문에’라고 중립적으로 쓴 것을 ‘덕분에’라고 고쳐 쓰는 경우다.
예를 들어 통장 잔고가 모자라 카드 결제 연체를 할 위기에 처해서, 친구에게 급전을 빌린 다음에 이렇게 말하는 식이다; “너 때문에 살았어!” 여기서는 "너 덕분에 살았어!"라고 말하면, 친구의 도움이 내게 끼친 결과와 그것에 대해 내가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잘 드러난다.
‘덕분에’를 가장 흔히, 그리고 적절히 들을 수 있는 때가, 바로 연말연시! 딱 지금이다.
"올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 덕분에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을 "올 한 해 베풀어 주신 은혜 때문에 잘 보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 아무래도 어색하다.
"가난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와 "가난했던 '덕분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는 법을 일찍부터 배웠다!"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어생활에서는 도나캐나 때문에를 남발하다 보니, ‘덕분에’라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실제 우리 삶이 ‘덕분에’라고 말할 기회가 줄어들어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덕분에라는 말을 할 기회가 없어서 그 말이 줄어든다는 건, 변명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어졌거나, 그럴 기분이 아니거나, 그러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을 키우는 경향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우리 사회의 기본 예법이 점점 서구화되어 가고 있는 데서 그런 기미를 느낄 수 있다. 어느덧 우리 사회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말고, 대신 남이 나에게 폐를 끼치는 걸 견디지 못하는, 참지 않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는 ‘개인화(파편화)’임에도, 그것이 개인의 인권과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라고 포장되고 미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사회에 실제로 개인의 인격과 인권을 존중하는 문화나 인식이 보편화되는 경향과 섞여 있어서 엄밀히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현실이 이러고 보니, ‘때문에’와 ‘덕분에’만 제대로 가려 쓰도, 글이 올발아지고, 그만큼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까지는 기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