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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07. 2019

덕분(德分)과 포덕(布德)

-신성한 말 4

덕은 무한하다


덕분(德分)은 ‘베풀어준 은혜나 도움’ 또는 '은혜나 도움을 베풂'이라는 뜻의 (동)명사이다. 그런데 ‘덕분에!’는 이 명사가 ‘동명사(動名詞)’로 활용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그래서 ‘덕분에’는 ‘베풀어준 은혜나 도움 덕분에!’라고 풀어야 제격이다. 여기서 ‘덕분’은 ‘무한 순환’을 한다.


이를 수식으로 나타내면 이렇게 된다. a=b+a. 이 수식이 성립하려면 b=0이어야 한다. 즉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 = 0’이라는 말이다. 받은 사람은 분명히 받았는데, 준 사람은 준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여기에 ‘덕분’의 오묘함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이치가 확연(確然)하다. 덕은 한울로부터 온 것이고 한울은 무한(무궁)한 것이므로 “∞-100=∞”의 수식이 성립하고, 이것은 “∞-0=∞”과도 통하는바, ∞-0=∞-100 => 0=100인 셈이다. 이것이 바로 유무상자(有無上資)의 경제학의 원리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수운 선생께서 “명(命)이 있는 바를 알지 못하거든 이치가 주고받는[授受] 데 묘연(杳然)하니라.”라고 한 데서도 그 기미를 찾을 수 있다. 주고받는 것이 무환 순환하는 이치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환 순환의 이치란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無往不復之理]이며, 도로 먹임[反哺]이며, 우로보로스(Ouroboros)다. 우로보로스는 자기의 꼬리를 먹어 들어가는 뱀-그러므로 원형(圓形)인-의 이름이다. 백과사전의 설명에 따르면 이 우로보로스가 상징하는 “원, 구, 둥긂은 자기 충족의 모든 형태들로서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다. 그 자체의 이전 세계적 완전성에서 이 원은 어떤 다른 과정보다 선행하는 것, 즉 영원이다. 이전도 이후도 없는 것, 즉 시간이 없음이며, 위도 아래도 없는 것, 즉 공간이 없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아직은 현실화되지 않은 의식의 빛의 도래에서 시작되며, 원으로 상징되는 창조자의 지배하에 달려 있다.(네이버사전)”*

* [네이버 지식백과] 고대 신화 속 원(圓)과 우로보로스 (시각문화대표콘텐츠, 2014. 4. 15., 커뮤니케이션북스)


게다가, 덕분(德分)이라는 말이 이미 ‘덕을 나눈다’는 뜻을 품고 있다. 덕을 쪼개서 나누어 준다는 말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천덕은 쪼개서 나누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덕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덕은 본래 무한(무궁)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세상에서 덕분에라는 것은 주로 ‘인덕(人德)’을 지칭해서, 그것이 그 한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덕은 ‘한울의 덕, 즉 천덕(天德)’이다. 한울의 덕이, 그 한울을 모시고 있는 사람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무궁한 이 울 속에 무궁한 나’(용담유사, 흥비가)라는 노래에 담긴 뜻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天)’은 지(地, 地德) - 인(人, 人德)에 대비되는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천지인을 아우른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천(天=天地人)이다. 


덕을 나누어 베푸는 것을 다르게는 ‘포덕(布德)’이라고 말한다. “덕을 베풀다, 덕을 펴다”라는 뜻이다. 주로 동학에서 쓰는 말이다. 1860년 4월 5일 이후 수운 선생은 동학의 절차도법(節次道法)을 마련하고서도 한동안 그것을 세상에 베풀[布德] 생각은 하지 않고 치성(致誠)만을 거듭하였다. 여기서 치성은 다른 대목과 비교해서 보면, ‘수련’을 통해 동학의 체계화를 계속하고, 당신의 몸으로 체험을 하면서 검증을 거듭하였다는 뜻이다.  


가슴에 불사약을 지녔으니 그 형상은 궁을이요, 입으로 장생하는 주문을 외우니 그 글자는 스물한 자라.(胸藏不死之藥 弓乙其形 口誦長生之呪 三七其字) (동경대전, 수덕문)


그러는 동안 알음알음 소문을 들은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들이 수운 선생을 찾아와 동학에 대하여 질의응답을 하고, 그것이 천도(天道)와 천덕(天德)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가르침임을 알고 포덕하기를 요청한다. “천덕을 세상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세요!” 


포덕 할 마음은 두지 않고 지극히 치성할 일만 생각하였노라. 그렇게 미루어 다시 신유년을 만나니, 때는 유월이요 절기는 여름이었더라. 좋은 벗들이 자리에 가득함에 먼저 도 닦는 법을 정하고,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물음에 또한 포덕을 권하니라.(不意布德之心 極念致誠之端 然而彌留 更逢辛酉 時維六月 序屬三夏 良朋滿座 先定其法 賢士問我 又勸布德) (동경대전, 수덕문)


그러한 권유에 응하여 동학을 공식적/공개적으로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으므로, 수운 선생의 한문 문집인 동경대전의 첫째 편(篇)의 제목을 ‘포덕문(布德文)’이라고 하였다. 

또 수운 선생은 포덕을 시작하는 자신의 행위를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였다”(開門納客)*고 하였다. 


문을 열고 손님을 맞으니 그 수효가 그럴 듯 하며, 자리를 펴고 법을 베푸니 그 재미가 그럴 듯하도다.(開門納客 其數其然 肆筵設法 其味其如) (동경대전, 수덕문)


*‘객’은 손님으로도 읽히지만, ‘나그네’라고도 한다. 이렇게 읽으면 다른 뜻이 더해진다. 예부터 나그네는 그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에 찾아가 ‘지나가는 과객이온데 하룻밤 유숙할 수 있겠습니까?’를 묻는다. 수운 선생 당시의 용담은 동학 공동체로서 ‘부유함’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그 부유함은 ‘유무상자’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고, 콩 한쪽으로 일곱 명이 먹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펼쳐지기에 가능한 부유함이었다. 물론 그 기적의 이면에는 ‘쌀 씻어 안치기에 손목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박씨 사모님과 수양녀를 위시한 여성들의 노동이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또 이런 내력을 가진 덕분으로, 동학-천도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말이 포덕(布德)이다. 덕을 펴는 일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덕을 펴는 것을 중시’(a)하는 것과 실제로 ‘덕을 잘 펴는 것’(z)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a≠z) ‘덕을 펴는 것을 중시’하므로/하면 ‘덕을 잘 펴는 것’이 실현되거나 보편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면 a≒z로 표시할 수 있으나 여전히 a=z인 것은 아니다. 


포덕, 포교, 전교, 전도, 선교 - 말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다 


오늘날 포덕이라는 말은 사실은 포교(布敎)나 전교(傳敎)라는 말과 비슷한(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어떤 천도교인들은 굳이 ‘포덕’과 ‘포교’는 다르다고 극구 주장한다. 더욱이 전교(傳敎), 전도(傳道)와 선교(宣敎)와도 다른 것이라는 생각과 말이 동학-천도교인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된다. 동학-천도교는 무위이화(無爲而化)하는 것이므로, 인위적으로 전교하거나 선교하는 것은 동학의 이법에 맞지 않다는 심정이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 역사상에서 ‘전교, 전도, 선교’라는 말이 현실화되기는, 특정 종교(서교, 서학)의 폭력적인 동점(東漸)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그러한 천도교인들의 설레발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현재의 시점으로 보면, ‘선교’나 ‘전교’를 강조하는 교단의 성직자(목사, 신부, 선교사)나 그 신도들의 의중이나 의도는 순수하지 못하다는 선입견이 바탕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접하는 ‘무리한 선교’의 사례들로부터 그런 선입견이 형성되고 강화되었으며, 실제로 거리에서 접하는 ‘예수 (믿어야)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폭력적/공갈협박적 선교 행위를 통해서도 그러한 확신은 더더욱 강화된다. 


*정작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불신지옥 예수천국’의 선전판(또는 십자가)을 매개로 한 행위를 정상적인 ‘선교’ 행위로 보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그런 자기 보호 본능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천도교가 지금의 어려움(개인-단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봄직하다. 포덕이나 포교, 전교, 전도, 선교는 한울님, 하나님, 하느님, 부처님, 하늘(天)의 사랑과 자비, 어짊을 베풀고 나누는 것이 본질이다. ‘교인을 늘리는 일’이나 ‘이교도를 선도(善導)하는 일’은 손가락이요, 그 것이 가리키는 것은 달(德分)이다. 그 말을 잘못 쓰는 사례로, 그 말의 본래 뜻 자체를 오해하고, 오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대범하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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