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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20. 2019

말모이 이야기 (1) - 이름

-신성한 말 11

이름은 주문(-비는 글)이다. 


영화 말모이를 보았다. 중2, 초6인 두 딸과 함께. 

'신성한 말'을 이야기하는 나로서는 꼭 보아야 할 영화였다. 

감동하며 보았고, 할 이야기가 많다. 

아무래도, 거듭해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중 하나.


1. 


영화의 뒷부분, 일제의 창씨개명 압력이 거세게 몰아치던 일제강점기 말, '경성제일중학'의 학생인 김판수의 아들 김덕진(조현도 분)은 교장 선생님의 강권에 견디지 못하고,  아버지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창씨개명을 하고 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날 저녁, 툇마루에서 판수(유해진 분)는 아들 덕진에게 묻는다.


"니 이름이 왜 덕진인 줄 아냐?"

"덕 덕(德)에 베풀 진(陳), 아닌가요?"


아들 덕진은 '덕을 베풀며 살아라'라는 도덕적인 뜻을 담은 게 내 이름 아닌가요? 하고 반문하는 게다. 

그러나 뜻밖에도(?) 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에서 제일 힘세고 부자인 양반 이름이 덕진이었다. 그래서 너도 그렇게 살라고 '덕진'이라고 지었다." (실제 대사 그대로는 아니지만, 그 뜻은 분명함)


그 시대,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민중으로서 가장 간절한 소원을 담은 이름이다. 

'덕진'뿐이랴! 우리 모두의 이름에는 그렇게 소원이 담겨 있다!!


그 말을 들은 덕진은 이렇게 화답한다.


"순이(박예나 분)는 엄마가 순하게 살라고 '순이'라고 지었어요."

[*순이는 덕진의 여동생이자 판수의 딸. 순이가 태어날 무렵에는 아버지(판수)가 감옥에 갇혀 있어서, 가족을 돌보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순이의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쩌면, 그 이름은 순이의 어머니-판수의 아내가 이미 판수와 말을 맞춰 놓은 것은 아니었을지. 아니면, 순이의 어머니-판수의 아내가 판수의 마음을 헤아려, 그리고 자신의 바람도 거기에 담아 그렇게 지은 것은 아닐지. 덕진은 자기가 아는 것만 안다. 누구도 자기가 아는 것이 알아야 할 진실의 전부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덕진과 순이. 그 이름에는 바람이 들어 있다. 그 이름은 그대로 기도와 주문이다.

판수와 덕진이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 되는 순간이었다.

[*오심즉여심은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에게 한울님이 하신 말씀이다. 한울님 마음이 수운 선생의 마음이라는 말이다.]


판수와 덕진과 순이뿐이랴! 그 장면에는 '(그 시기)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백성=사람'들이 그처럼 하늘님[천지부모]의 바람과 눈물(슬픔과 기쁨)과 해학이 조화를 이룬 존재로 살아있음을, 그리고 말 -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바로 그것임을 선언하고 선포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2. 


우리들 누구나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마다에는 이처럼 부모님, 또는 조부모님의 바람이 담겨 있다. 

[그 시절에 으레 그러했듯이, 유명짜한 작명가나 그 마을의 최고 어른을 찾아가 지어 받은 이름이라도 매한가지다. 작명가나 어르신의 지혜를 빌려 그 이름에 바람과 꿈과 기원을 담아내는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과, 그 마음에 화답하는 작명가나 '어르신'의 마음이 모두 그 이름에 담긴다.] 

그것이 '부자'가 되고 '권세가'가 되는 바람이든, 공자-맹자나 퇴계-율곡 같은 대 학자가 되는 바람이든, 

그 이름은 그 바람을 이루는 기도이자 주문이다. 

다른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그 바람을 바라는 것이고, 그 주문을 외는 것이다.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은 강령이 있다. 그 1절이 이렇다.


"모시는 사람들은 이땅 온갖 답지 못한 사물들의 본래 이름을 찾아 한울님처럼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이 강령은 본디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강령으로 지어진 것이다.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1989년 5월 1일 창단 공연을 하며 창단되었다. 그러므로, 이 강령이 나온 지도 30년이 되었다. 올해가 30주년!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김정숙 극단대표, 권호성 상임연출이 하였다. 이 강령은 그때 두 사람의 부탁을 받고 내가 기초하였다. 그리고 1997년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을 만들면서, 출판사 강령으로도 채택하였다.-일부 자구 수정]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은 '나무'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바람을 이루며 살아간다.('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 바람이라는, 겨울이라는, 동학이라는, 통일이라는, 길수, 덕수, 천도교, 부처님, 그림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모두가 자기 바람을 이루며 살아간다. 내가 내 이름을 지킨다는 것, 사람과 사물과 사건(역사)의 이름을 제대로 찾고, 알고 불러준다는 것은 한울님을 모시는 일이다. 


동학의 '시천주(侍天主)'란 그렇게 우리[나와 너와 만물]가 한울님의 바람[祈願]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을 일컫는 동명사[動名詞]이다. 


3.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 "김판수 동지께" - 그 글자에 나는 울었다. 

위기의 순간에도 진심은 '말'을 통해 전해진다.


조선어학회 회장인 류덕환(윤계상 분)은 김판수가 조선어학회의 기관지인 '한글' 잡지 발행비를 횡령하였다고 오해하여 그를 내쫓는다. 그러다가 그것이 자신의 오해였음을 알고, 그날 저녁 김판수의 집으로 찾아간다. 김판수는 자신을 믿지 못한 류덕환을 문전박대하여 "돌아가라!"고 힐난한다. 


닫힌 방문을 사이에 두고, 툇마루에 앉은 류덕한은 자신의 잘못을 절절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를 간청한다. 김판수의 용서와 대답을 받지 못한 채 류덕환이 돌아간 후, 김판수는 툇마루에 놓인 잡지 '한글' 잡지 표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김판수 동지께!"


'김판수'라는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김판수의 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엇보다, '동지'라는 한마디 말이 김판수의 닫힌 마음을 열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그 글자를 보며, 또, 울었다. 


'동지'라는 말로써,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 의구심을 지우지 못하였던 류덕환 자신의 마음을 털어버리고, 그 의심하였음을 사죄하고, 그리고 뜨거운 손을 내밀어 화해를 청하며, "동지"로 불러 줌으로써, 김판수의 마음을 움직였다. 


'말'의 힘이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영화, 꼭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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