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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24. 2019

금 밟지 마라(3.끝)

-신성한 말(20-3) : 잣대 

잣대 

- 금을 긋다


자는 길이를 재거나 금을 긋는 데 쓰이는 도구이다. 자를 다르게 일컫는 말이 ‘잣대’다. 그러나 자를 잣대라고 하면 그냥 자라고 할 때와는 또다른 의미가 생겨난다. 자는 자 고유의 기능을 가리킬 때에만 주로 사용된다면 ‘잣대’는 자의 본래 의미가 확대되어 '사물의 시비(是非)와 곡직(曲直)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뜻을 표현한다. 이런 경우에는 '혈구지도'라는 말이 가장 잘 말해준다. 


자이거나 잣대이거나 이건 초등학교 산수(요즘은 이것도 수학이라고 부른다) 시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동아시아 역사(중국 중심의 '天下'를 말한다 - 필자주)는 이 '자'와 관련되면서 이러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진시황은 중국 대륙에 어지러이 흩어져 있던 군소국가를 통합하여 최초의 통일국가를 수립한 황제로 실질적으로 ‘중국’을 건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학-천도교경전에도 "'망진자(亡秦者)는 호야(胡也)'라고 허축방호(虛築防胡)하였다가 이세망국(二世亡國) 하온 후에 세상사람 알았으니"라는 문맥에도 등장한다. 


중국의 영문 이름인 'China'가 진시황이 세운 ‘진( 秦)’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그의 업적의 의미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한편으로 진시황은 이른바 ‘분서갱유(梵書抗儒)’라고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둘러 결론을 말하자면 진시황이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까닭은 자신의 잣대로 그은 금 바깥의 존재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직(硬直)됨 때문이었다. [필자주 : 이 단락은 이 글을 처음 쓸 때의 '순진한' 생각이었고, 그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진시황이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잣대'로 옹립하려는 고도의 정치적인 행위라고 보아야 한다. 로마를 불태운 네로 황제에게도 그런 면이 있고,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고서들을 모아들여 불태운 일제 역시, 자기들이 새롭게 쓰는 '조선사'를 정사(正史)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에서 선제적으로 '신-분서갱유'를 단행한 것이다. 최근 댓글조작사건이 발각되자 국정원 등에서 수많은 문서를 파쇄한 것, 법관의 '사법농단' 당시에 문서 파쇄, 세무 조사에 대한 귀띔을 들은 대기업에서의 서류/각종 디지털정보 파쇄 등등이 모두 분서갱유다. 진시황을 욕한다면, 그가 전무후무한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그러한 잘못의 '효시'라는 점에서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래도 될까?]


그런 진시황이 중국을 정치적으로 통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도로의 정비’와 ‘도량형(度量衡)의 통일이라고 얘기한다. 도로를 정비하고 나서 중앙의 군사력이 쉽게 지방으로까지 미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은 중앙의 통치력이 그만큼 빠르게 도달함으로써 지방세력의 발호(跋扈)를 방지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 가지 도량형의 도구

그러나 우리 관심을 크게 그는 것이 바로 도량형의 통일이다. 도(度)는 척도(尺度)라는 쓰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로 길이를 재는 기구류를 통칭하는 말이며, 량(量)은 곡식이나 액체류의 양을 재는 되나 말과 같은 기구류이고, 형(衡)은 형평 (衡平)이라는 쓰임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두 부분의 무게 차이를 재는 저울 같은 기구류를 통칭하는 말이다. 진시황이 이 도량형을 통일하기 전까지 중국 각 지역은 이 기본적인 도구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 이 고장에서의 쌀 한 되와 이웃 고장에서의 쌀 한 되의 양이 같지 않다면 그것은 두 고장 사이의 교역이 원할하게 되는 데 크나큰 장애가 된다. 반대로 이것이 통일되면, 이 마을과 저 마을은 '우리'라는 관념을 가질 여지가 생겨난다.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함으로써 지역과 지역 간의 교역과 교류가 활발해지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되자, 중국 전체의 통일성은 급속도로 강화되었다.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 삶을 측정하는 기준이 하나가 됨으로써 너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중국민족'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점은 마찬가지였다. 도량형을 통일하고, 그 도량형을 잘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최고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암행어사 하면 '마패'를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실 암행어사가 유척(鍮尺일종의 동척)이라는 잣대를 휴대하고, 그것을 가는 곳마다 들이댔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어떤 지방의 수령이 수령은 세금을 거두어 들일 때, 통상적인 '한 되짜리보다 더 큰 됫박을 만들어서 그것을 채우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빈발했다. 시장 상인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백성들을 속이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도 조사대상이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 표준의 도량형을 표시한 유척을 들고 다니며 조사하고, 적발하여 시정토록 한 것이다. 또 하나의 유척 각 지방에서 쓰인 곤장의 크기나 무게를 측정하는 것으로, 형벌이 남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였다. 이처럼 암행어사는 2개의 유척을 휴대하여, 형벌의 남발과세금의 과잉 징수를 예방, 위반사항 조사-처벌을 했다이 유척은 임무가 끝나면 마패와 함께 반납했다.[이 외에 임무를 적시한 '사목'과 국왕의 특별지시 사항을 담은 '봉서'가 주어졌다]

사진 : EBS 역사채널에서..


우리의 우선적인 관심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다.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민족을 가르는 주요한 기준이 되는 까닭과 마찬가지로 도량형이 통일되어 있다는 것은 같은 도량형을 사용하는 지역 범위의 사람들이 일체감을 갖도록 하는 주요한 기준이 된다. 진시황의 업적의 위대성은 바로 이 점이다.[필자주 : 이것은 한편에서는 '폭력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 세계에 대한 지배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향력' '존재감'을 확장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세계를 좌우하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두고 미국-중국-한국이 다투는 중이다. 미국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도 그리고 최근에는 중국도 제 영역을 마련하고자 애쓰고 있다. 이것은 21세기의 '도량형'이라고 할 만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쓰이는 도량형은 '미터법'이다. 미터법은 길이의 기본단위로 m를 쓰며, 질량은 kg을 기준으로, 부피는 l를 기준으로 하는 한다. 물론 서구에서 비롯된 도형이자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도량형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작 서구에서는 이 미터법보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터법 이전에 국제 공인 도량형법이었던 '야드파운드법'이 아직도 널리 쓰인다[미터법은 프랑스혁명의 결실로 얻어지고 보급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야드파운드 법과 미터법 사이의 우위 경쟁은 사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자존심 싸움과도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서구에서조차 미터법보다 야드파운드법이 더 널리 쓰인다는 사실은 도량형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사실 우리 나라만 해도 미터법이 공식적인 도량형이지만, 우리의 일상생활 저변에는 우리 고유의 도량형이 널 리 쓰이고 있다. 집의 넓이를 일컫는 단위로는 제곱미터 (㎡) 대 신 평(坪) 이 일반적 으로 사용되는 것도 그렇거 니와 쌀 한 가마니(=60kg, 100근)도 그렇고, 거리를 재는 단위로 리(里)가 여전히 널리 쓰인다. 특히나 삶의 모든 영역이 서구화되고 있음을 혹은 서구화되었음을 개탄하는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서 각각의 물건마다 한 묶음 세는 단위가 발달해 있다거 나 서너 개, 네댓 개 등으로 두루뭉실하게 말해도 대개 그 의미가 통한다는 우리 고유의 전통이 아직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한편으로 기이하기까지도 하다.[필자주 : 필자가 생각하는 가설로 말하자면, 이러한 도량형적인 사고방식은 우리의 일상적인 생활보다 더 깊은 수준의, 거의 DNA 수준에서 우리 몸과 의식에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숫자로 보는 동학, 동학으로 보는 숫자'를 이야기할 때 상세히 논구해 볼 계획이다.]

이것은 도량형이 단순히 물건의 거래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수단일 뿐 아니라 세상을 가늠하고 그것과 관계를 맺는, 쉽게 말하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얘기하는 잣대는 바로 그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으로서의 잣대를 말한다.


잣대가 경우에 따라 늘었다가 줄어들었다 한다거나, 똑바른 금을 긋지 못하고 제멋대로 휘어진다면 그것은 단지 못쓸 뿐 아니라 ‘심각한 해악’이 된다. 법을 윤리의 최소화라고 한다. 윤리란 사실 사람과 동물을 가르는 잣대라고 할 수 있으며, 법이란 그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것을 모아놓은 잣대라고 할 수 있다.(물론 법에 대해 이와 다른 해석을 하는 이론도 있지만, 지금 이 글에서는 그 둘 사이의 이론적 차이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우선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법의 의미를 기준으로 말하고자 한다.) 



"잣대를 들이댄다"라고 하는 것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평가한다는 뜻이다. 이때 경계해야 하는 것이 '선입관'이다. 선입관은 '색안경'이라는 말과 같다.'필자주 : 잣대 들이대기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종북'이라는 식의 '낙인찍기'이다. 점잖게 '프레임 전쟁'이라고 표현하듯이, 이렇게 '잣대'를 갖는 것,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전쟁급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사물을 판단하는 잣대가 휘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요즈음 신문지상에서 이 '잣대'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것도 바로 '잣대'가 경우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고 하는 것과 때와 장소에 따라 이리 휘고 저리 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정치판 때문에 그렇다. 내가 하면 구국의 결단인 행위가 남이 하면 야합이 되는 우리 정치판의 잣대는 언제 곧아질지 슬프기 한량없다. 그러나 잣대가 가진 참된 의미를 생각하면 그런 정치판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치부해도 그만인 사건이다. 그보다 심각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이 오늘날 중국이라고 하는 거대한 문명의 실체를 구성 했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관심이다. 다시 말해 '새로운 잣대'란 하나의 '새로운 문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을 긋는다'는 것은 '저것' 과는 '이것'을 만드는 일이다. '서학'과 다른 ‘동학’이란 하나의 새로운 문명 체계를 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일러 '다시 개벽'[필자주 : 원문을 쓸 때 '후천개벽'이라고 썼던 것을 '다시 개벽'으로 바꾼다. 그 둘은 조금은 다르다.]이라고 한다. '다시 개벽'의 다른 측면, 예를 들어 천지가 번복한다거나, 대기가 뒤집히는 부문에 대해서도 도무지 말씀드릴 수 있는 상식조차 없지만, 다시 개벽의 이러한 측면-즉 문명사적인 대전환으로서의 다시 개벽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잣대가 우리 삶을 이끄는 세상이 열린다는 의미이다.


‘금'에 관한 그동안 말이 많았지 한마디로 "다시 개벽에 의한 '후천개벽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을 해보자"는 말로 간략히 갈음할 수 있다. "이같이 큰 도를 적은 일에 정성 드리지 말라"한 수운 선생의 말씀이 더욱 새롭다. 그것은 허축(虛築) 위에 고고(孤高)히 앉아 분주한 세상 사람을 내려다 보는 오만함이 아니다. 금 안에 갇히지 않되 이도저도 아니게 금 밟지 아니하고, 우리의 잣대를 분명히 세우는 일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연재를 마치며 [필자주 : 이 글은 현 시점에서 추가하는 글이다]


이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시점(2019년 2월)에 이 글을 볼 때, 이 글의 결론부의 '다시 개벽'의 잣대 만들기란 다름아닌 '개벽학'에 대한 꿈, '개벽학'에 대한 전망, '개벽적 근대'의 담론과 시대구분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이야기를 지난 20년간 계속했더라면, 오늘의 동학 - 천도교는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 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나의 이 글('금 밟지 마라')이 터무니없이 웃자라기만 한 글이었을까?


글의 출전 : 천도교청년회회보, 제24호, 138(1997).12.3. 18-21쪽. 




보론2 : 참고자료 = 혈구지도(絜矩之道)

- 絜矩之道 : 헤아릴 혈 · 곱자 구 · 갈 지 · 길 도


곱자를 가지고 재는 방법. 자기의 처지로 미루어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


이른바 천하를 화평하게 만드는 일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달려 있다.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접하면 백성들 사이에 효가 일어날 것이고,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접하면 백성들이 이를 따라 할 것이며, 윗사람이 고아를 긍휼히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을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는 혈구지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다. 위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 것이며, 아래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도록 하지 말 것이다. 앞에서 싫어하는 것을 뒷사람의 앞에 놓지 말고, 뒤에서 싫어하는 것인데도 앞사람을 따르도록 하지 말 것이다. 오른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왼쪽과 사귀지 말 것이며, 왼쪽에서 싫어하는 것으로 오른쪽과 사귀지 말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일러 혈구지도라 한다.(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毋以使下. 所惡於下毋以事上. 所惡於前毋以先後. 所惡於後毋以從前. 所惡於右毋以交於左. 所惡於左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대학(大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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