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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Feb 23. 2019

금 밟지 마라 (2)

- 신성한 말 20-2

금 안과 금 밖을 가려서 서기 


수운 선생이 경신(庚申 ·1860)년에 득도한 후 1 년여 동안 수도 연성을 계속하는 가운데 이듬해인 신유년(辛酉·1861)에 이르자 사방에서 어진 선비들이 모여들어 수운 선생에게 천도에 대해서 물었다. 수운 선생이 가르쳐 말씀하시는 가운데 "내 가 또한 동(東)에서 나서 동에서 받았으니 도(道)는 비록 천도(天道)나 학(學)인즉 동학(東學)이니라. 하물며 땅이 동서(東西)로 나뉘었으니 서를 어찌 동이라 이르며 동을 어찌 서라고 이르겠는가"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동학-서학, 민족종교-세계종교 

수운 선생의 동서 구분의 유효성은 1876 년 개항 이후 상실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사람이 많다. 또 동학을 천도교로 ‘대고천하(大告天下, 1905)’한 그 순간, ‘서학'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인 ‘동학’은 역사 속으로 운명(殞命)했다는 사람도 있다. 오직 ‘천도교'만이 천도교의 본래 이름이며 동학이란 이름은 한때의 방편일 따름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논리 는 ‘민족종교’라는 한정사를 쓰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와 어울려 오랫동안 우리의 뇌리 깊숙히 각인되어 왔다. [필자주 : 요즘은 '민족종교 천도교'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민족' 개념을 강조하는 세태가 잦아들기도 했지만, '천도교'가 '한민족'에 한정된 교리와 철학을 설파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관념이 더 크게 작용했다. '민족종교'를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유신 정권' 시대, 박정희가 강조한 '민족적 민주주의'론의 영향에 기대고자 한 심리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동학(천도교)은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궁극의 근본된 이치, 좌우상하, 고금왕래를 망라하는 한울님을 신앙하므로, 동양과 서양을 가리는 것은 동학(천도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말씀은 새겨들을 만하다. 천도교(동학)가 하루 빨리 우리나라라는 울타리 를 벗어나 세계 도처에 포덕사를 보내고 세계종교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염원도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천도교(동학)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그것은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어려움과 그 성질이 거의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동서남북, 상하좌우의 구분을 지나치게 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구분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겪는 것이 대부분이다. 개벽을 선언하고 후천이 도래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 수운 선생은 서학을 했다는 죄목으로 목잘려 순도하고, 그 이후로도 수십만의 ‘동학무리 (東徒)’ 가 죽어갔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 나라에는 지난 2천년 동안 서양 문명의 정신적 지주였던 서학(기독교)이 성공적으로 상륙하고, 뿌리 내리고,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만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필자주 : 그 반면에 '서학'이라는 오해와 누명을 쓰고 핍박을 받았던 동학은 천도교로 개신한 이후에도 핍박의 대상이 되었고(일제강점기) 오늘날 한없이 쇠락해 버렸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동학-천도교를 기준으로 역사를 쓰자면, 지금은 여전한 '신식민지' 미진한 독립국가시대에 다름아니다.]


그에 따라 서구화는 곧 근대화로 여겨졌고, 근대 100여 년 동안 우리 나라 최대 과제로 자리매김하여 오늘날 ‘세계화, 국제화, 국가경쟁력 제고’라고 구호로 포장된 채 어느새 국교(國敎)의 자리를 차지한 느낌마저 없지 않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삶의 방식은 그야말로 동서의 구분을 무색하게 할 만큼 서구 일색으로 변해 왔다.

도시문명은 '금'의 문명이다!


궁을회문명(弓乙回文明)이라고 하였다. '궁을이 문명을 바꾼다'는 뜻이다. 문명이란 ‘오랜 기간 동안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삶의 방식의 총체'이다. 궁을이란 천도를 상징하는 표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궁을회문명이란 천도교(동학)가 지금까지의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꾼다는 말씀이다. 그것을 일러 후천개벽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천도교의 문제는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표명한 천도교를 신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그와 상반되는 교의(敎儀)를 근간으로 하는 삶, 다시말해 서구적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 큰 고민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지난 세기와 확연히 구분되게 한 지금의 이 세계적 문명(자본주의의 세계화)의 흐름이 분명히 ‘궁을'의 기운을 타고 새롭게 도래하는 후천의 문명이 아니라는 심증은 가는데 그것을 증명할 물증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 많이 서구적 생활방식, 삶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신앙, 신념과 실천의 괴리가 이보다 더 크게 두드러질 수는 없다. 신념과 실천의 괴리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분별력을 상실한다.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은 다른 말로 미친 사람이다. 다시말해 사물과 사물 사이의 구분 즉 금긋기를 제멋대로 하는 사람이 분별력을 상실한 사람이다. 그것의 소극적인 표현은 주관에 치우치는 사람이고 그것의 적극적 표현은 미친 사람이 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것이다. 우리 가 일방적으로 ‘미쳤다’라고 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 즉 사물 사이의 금을 제멋대로 그을 뿐 아니라 자기 그 기준을 다른 사람에게 까지 강요하는 사람을 말한다.


[필자주 : 그런데,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 온 사람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새 로운 금긋기가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것을 한때 유행하던 표현으로 하면 천도교 문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道可道非常道  도라고 부르는 그 도는 본래의 도가 아니 고

名可名非常名  이름 부르는 그 이 름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네

老子 <道德經> 중에서


금 안에 갇히지 않기 


앞에서 금긋기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먼저 금 밟으면 죽는다고 얘기했고, 다음으로 금 안팎을 잘 가리자고 얘기했는데, 다음으로 ‘금 안에 갇히지 마라’는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남이 따라 걸을 수 없을 만큼 홀로 뛰어난 사람’을 일컬어 ‘독보적(獨步的)’ 이라고 한다. 독보적인 사람이 라 고 해서 모두 높고 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세상 일에 대해서 모르쇠를 잡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이 웃에는 연륜(年輪)으로 혹은 한울님이 주신 재능으로 갖가지 일에서 ‘독보적'인 분들이 적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 재능은 가지고 태어난다'[各受職分]’ 등의 말들을 돌이켜보면 사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쯤의 '독보적(獨步的)'인 재능이 있다. 자아실현이나 자아완성(自我完成)이란, 사람마다 자기의 그 재능을 온전히 드러내어 제 뜻을 펼치고 세상에 이바지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의 재능을 찾는 일도 중요하고, 또 남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고 일깨워주는 일, 그것을 알아주고, 기뻐하고, 고마워해 주는 일 모두가 중요하다. 그것은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역사를 더욱 값지게 하는 첫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재능을 타고나 기는 하지만 누구나 스스로 그것을 찾아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곰곰히 생각하면 ‘독보(獨步)’라는 말에는 ‘고집스러움'과 ‘외로움'이라는 ‘말맛’이 배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일에서건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홀로 자기 일에 매달리 는 ‘고통스런 혼자’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또한 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편한 길 이 아니라 새롭고 험한 길을 열고 닦는 데에도 고통과 두려움이 뒤따른다. 그때의 외로움과 고통과 두려움을 기꺼워하고 달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이 독보적 존재의 ‘고집스러움'이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수덕문>에서 "세월이 홀러감을 막을 길이 없어 하루 아침에 신선(아버님이 돌아가심-필자 주)되는 슬픔을 당하니 외로운 나의 한 목숨이 나이 겨우 열여섯에 무엇을 알았으리오."라고 하신 외로의 토로는 수운 선생이 주유천하를 시작하는 출발점이고, "구미용담 찾아오니 흐르나니 물소리요 높으나니 산이로세. 좌우산천 둘러보니 산수는 의구하고 초목은 함정하니… 오작은 날아들어 조롱을 하는 듯고"라고 하신 마음은 외로움과 십여 년 주유천 하 동안의 고통에 대한 토로이다.


이 두 구절만 숙독상미 하더라도 수운 선생이 ‘성공'하시기까지 홀로 걸어야 했던 그 길들의 험고(險苦)에 대해서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 독보(獨步=주유천하)의 세월을 빼고 무극대도의 창명을 얘기할 수는 없다.


또한 불출산외를 맹세하신 굳은 뜻은 도를 깨닫지 못하면 내게 는 죽음뿐이라는 두려움을 떨치려는 뜻도 있으리 라 짐작해 본다. 그만큼이 또한 수운 선생의 고집스러움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한울님이 수운 선생을 만나서 건넨첫 말씀에 ‘두려워 말고 두려워 말라'하신 뜻도 단지 그날 그때의 정황일 뿐만 아니라 도를 깨닫지 못하면 무엇이 되나 하는 수운 선생의 긴 날들의 두려운 마음 그 전부를 아울러 말씀하신 뜻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필자 주 : 그러니 그 말은 "외로워하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라!" 하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는 '군중속의 외로움'을 이야기하다가, 어느덧 '홀로' '1인' '나'를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편해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군중 속의 외로움과 홀로의 편안함은 그러나 상통하는 것이다.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괴로운 사람들을 위한" 책(우린 다르게 살기로 했다, 조현)라는 책이 선풍적인 판매고를 기록하고, 저자를 찾아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전국 각처에 늘려 있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금 밟지 않기!!


한편으로, 한울님 이 또 말씀하시기를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라고 하셨으니 아마도 한울님 또한 노이 무공하 던 동안에는 외로움을 느끼 고 계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그렇다.


그러나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길에 외로움과 고집스러움이 꼭 긍정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외로움과 고집스러움은 독보적인 존재가 되는 길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함정의 이름이기도 하다.


신독(愼獨)이란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삼가는 것'으로 옛부터 군자(君子)가 갖추어야할 덕목(德目)의 으뜸이다. '군자'라 하니 웬 '고렷적' 얘기냐고 되물을 분이 있겠지만, 군자란 낡은 사람 이 아니라 지혜와 용기와 사랑을 갖추고 늘 새로워지며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새 사람이다. '마이스터 (Maister)'나 '프로페셔널(Proffessional)'의 혹은 '전문가(專門家)’의 우리다운 이름이라고 보면 된다.



독보적인 사람은 대체로 이 '신독'의 자세를 잘 닦아낸 사람이다. 홀로 있을 때조차 도리에 어긋남이 없다는 것은 여럿 이 있을 때에는 두말할 필요없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을 바탕으로 한다[필자주 :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가 공자와 같은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인이 일흔 살에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면, 이 신독은그와 같은 경지이면서도, 누구나 (정성과 공경과 믿음을 다하면) 일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점에서, 군자의 의미가 드러난다]. 여기서 도리란 단지 윤리, 도덕의 문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서양 논리학에서 당위(當爲)라고 말하는 것, 즉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이치, 일이 ‘도리(道理)’이다.


신독을 강조하는 것은 그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홀로 있을 때[이는 장소적인 의미뿐만이 아니라, 지위나 명예, 권력과 부, 능력과 재등 등에 두루 적용될 수 있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홀로 가졌거나, 가졌다고 생각할 때이다.] 사람은 자칫 도리를 어기게 된다. 얼핏 '독보적인 존제로 많은 사람의 안정을 받는 사람들 이 신독하지 못하고 도리를 어겨 '아류독보적 존재'로 전락한다.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는 독보적 존재보다 그 아류가 넘쳐난다. 그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채, 혹은 스스로는 알면서 남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독보적인 존재로 행세한다. 그에게나 세상 사람에게나 모두 바람직하 지 않은 일이다. 그런 분들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태도가 되기 쉽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우졸하여 그리 된다. 그런 분들은 대개 자신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둔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주 : 최근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는 몇몇 '독보적이었던 사람들'을 보라!!] [필자주 : 이런 '아류 독보'와 '독보'는 사람에 따라 갈리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독보'적인 존재에서 '독보 아류'로 전락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순전히 '신독'에 성실했는가, '신독'을 잊어버리고 잃어버렸는가에 따라 독보와 독보아류가 판가름 난다.]


신독은 남이 보지 않는 데서 도리를 어기지 않는다는 뜻도 되지만 외로울 때에도 그 외로움 때문에 감상(感傷)에 빠지거나 사리 분별력을 잃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뜻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감상에 빠지거나 사리분별력을 잃는다는 것은 이 경우에 주관(主觀)에 흐른다는 뜻이다. 


다른 말로는 ‘독단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외롭기 때문에 독단(獨斷)에 빠진다. 독단으로 흐르는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보면 대개는 크나큰 외로움에 상처 받는 사람이다. 전형적으로 '지도자의 독단'은 ‘지도자의 외로움'과 통한다는 점을 헤아려 보면 된다. 그는 지금 짊어진 짐이 너무도 무거우나, 그것을 내색하 기보다 그 힘겨움을 스스로 떠안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상처와 아픔이 깊어간다. 그 상처를 숨기기 위해, 혹은 그 아픔을 이기는 나름 대로의 방법이 독단으로 나타난다. 독단적인 사람을 역지사지하자면 그렇다. 그러나 그 독단을 나무라고 타일러 바로 잡아 주며, 그를 위해 그가 독단으로 흐르게 된 근본원인인 외로움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 었는가를 다시 따져 보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야만 문제가 해결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지도자된 외로움에 빠져 평상심을 잃은 때문에 그리 된 것이다.

[필자주 : 그 외로움은 '불신'으로부터 온다. "불신지옥!" '불신'이란 각자위심이다. 내가 한울님과 함께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은 형제라는 것을 믿지 못한 것이다.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자매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독재자(獨裁者) 또한 독보적 존재와 그 거리가 멀지 않다. 자신의독보성을 주체적 으로 통제하지 못하고 과용하며 다른 사람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아 그렇게 된다. 더 나아가 독재에 취하면 우민화(愚民化) 정책이 등장한다. [필자주 : 우민화정책은 시민/민중/국민을 우민으로 만드는 정책이기도 하고, 시민/민중/대중을 우민이라고 간주/치부/편견하고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독보성이 침체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고, 그독보성을 위협(?) ―사실은 역사의 발전이 며 ,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뻐 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상 많은 대통령들이 그러한 독재자의 몇가지 전형들을 교훈으로 남기고 지금 혹은 무덤 속에, 혹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필자주 여기서 '감옥' 속에 있는 전직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다. '이명박' '박근혜'가 아니다 / 그렇다!]


자시지벽( 自是之辭)은 그런 분들이 빠지는 또다른 잘못이다. 다시 말해 자기만 옳다고 우기는 버릇이다. 그런 사람은 참된 독보적 자리에 이르지 못하고 ‘독선(獨善)’에 빠지는 사람이다. 그들은 남들의 의견 , 특히 자기와 다른 의견을 펴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일에 서툴다. 홀로 걷는 데만 익숙해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일에 서투른 것은 그 럴 수 있다지만, 자기만이 옳다고 여기며 그것을 강요하는 데까지 이르면 문제가 생긴다.

너와 나 


자시지벽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표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점잖은 충고나 경험의 토로라는 형식을 띠기도 하지만, 그 이면은 자기가 가진 온갖 수단을 이용해서 제2의 의견을 말살하려 들거나 매장하려는 시도이기 쉽다. 만약에 다른 소수의견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나면 그들에 대해 마치 세상 최고의 죄악을 저지른 사람을 대하듯 몰아부치기 십상이다. 반대로 자기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리 조그만 것이라 할지라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독점(獨占)을 최대의 무기로 삼는다. 자기의 권위를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기가 가진 것을 독점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상 사람이 필요로 하는 만큼씩만 내어놓는다. 경제적 부의 독점, 권력의 독점, 지식의 독점 등이 다 이 범주에 든다. 앞으로 또 문제가 되는 것이 정보의 독점일 것이다. 아니, 우리 주변에는 벌써 그러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어렸을 적 , 삘기꽃[삐비꽃]으로 배고픔을 달래던 그 무렵 , 쉽게 구할 수 없던 사탕 하나를 가진 아이가 골목대장이 되던 때의 독점은 그나마 추억으로 간직할 꺼리가 되지만, 정보와 부와 권력의 독점을 통해 남의 위에 서려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독존(獨尊) 또한 흔히 횡행하는 잘못이다. 독존에 빠진 사람은 자기가 해 온 일, 자기가 하고 있는 일, 할 일이 이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이 힘들여 하고 있는 일은 쓸 데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밴 경우가 많다. 다른 사람의 독보적 업적을 평가하는 일에 인색한 경우도 그래서 생긴다. 이런 사람들은 그래서, 쉽게 남이 해 놓은 것을 '거저 달라'고 한다. 남이 이루어 놓은 것은 별 것 아니라는 심사가 그 ㅣ밑바닥에 깔려 있고, 심지어 '네 것'은 '우리(사회) 것'이니 나눠 쓰자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럴 수 없다고 하면, 쪼잔한 놈이거나 역사적/사회적으로 계승되어 온 지적 재산의 결과로 만들어진 성과를 독점하려고 한다고 비난한다. [필자주 : 모든 지적 저작권을 공평하게 '공유'하자는 주장, 운동이 있다. 그것은 '네 것'은 '우리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라는 심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아울러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안고수비( 眼高手卑)', 즉 '눈(비평/비판)은 높으나 재주는 따르지 못하는' 경우이다. 자신은 그러지 못하면서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이치만 되풀이 주장하는 것이다. 독존에 빠진 사람과 다른 점이라면 자기는 그렇게 못하지만 '~라면' 반드시 ' ~ 해야 한다'는 형식주의에 빠져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 "나는 ‘바담풍' 해도 너 는 ‘바람풍' 해라"는 속담이 그것이 도리에 어긋남을 역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필자주 :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귀명창'의 역할은 그것대로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재주(지식/지혜)가 아무리 높은들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것을 듣는 사람이 '나 죽었소'하고 듣기만 하지 않고, 그 말에 대해 질문하고, 반론하고, 비평하는 것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안고수비'의 태도는 다르다. 둘 사이를 확연히 가를 수는 없지만.]


금 밟지 마라! 죽는다!! 금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마라!! 죽는다!! 

그 모두는 금 안에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며 그때부터 죽음이 시작된다. 고인 물이 썩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이 장의 주제어가 '금 안에 갇히 지 마라'이다. 홀로 떨어지고, 홀로 높고, 홀로 걷는 길이 자기를 금 안에 가두는 일이 되어서는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만다. [필자주 : 그러나 홀로 떨어지고, 홀로 높고, 홀로 걷는 길 자체가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성공, 성취'의 중요한 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러면서, 독단, 독존, 독점에 갇히지 않아야 한다. "열 사람의 한 걸음"도 좋지만 "한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하고, 피치 못할 때도 있는 법이다. 오늘날의 천도교 형편이 그렇다. 다만 경우에 따라 "한 사람의 열 걸음"은 득보다 실이 많은 경우도 있는데, 요즘의 천도교 형편은 그렇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걸 감당할 체력이 되지 않을 듯하다.]


동학과 서학, 안과 밖, 선천과 후천· ··. 그 둘 사이에 분명한 금을 긋자는 것은 '이쪽'에서 서서 '저쪽'을 편벽되게 바라보거나 도외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며, 금 바깥의 세상, 사람에 대하여 배타적,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다. 수운 선생이 외로움에 서서 두려움을 떨치고 한울님의 ‘외로움'과 만나 이룬 것이 무극대도 이며 천도이다. 따라서 ‘다운 동학-천도교인’은 어쩌면 '금 안에 갇히지 않는 일에 독보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 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렇게 그러자면 신독하여, 주관에 빠지지 않고, 독단에 흐르지 않으며, 독재를 멀리 하고, 자시지벽을 버리며, 독선에서 벗어나고, 독점을 해소하며 , 독존에세 헤어나고, 안고수비하지 않아야 하겠다. 너나 없이 모두 그렇다. 


글의 원 출전 

금 안과 금 밖을 가려서 서기 - <천도교청년회회보>, 제22호, 138(1997).10.2. 23-25쪽.

금 안에 갇히지 마라!-  <천도교청년회회보> 23호, 포덕138(1997)11.3. 1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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