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1)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이란 '무왕불복지리(無往不復之理)'를 번역한 말이다. 이것은 동학을 창도할 때 수운 선생이, 제자들이 '천령강림(天靈降臨)'의 의미를 묻자 수운 선생이 대답한 말씀이다. 이것은 '천도(天道)'라는 말보다 앞서는 대답이며, 그런 만큼 더 본질적인 규정이다. 그 의미는 앞으로 차츰 공부해 나가기로 한다.
사방에서 어진 선비들이 나에게 와서 묻기를 “지금 천령이 선생님께 강림하였다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대답하기를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이치를 받은 것이니라.”
묻기를 “그러면 무슨 도라고 이름합니까?”
대답하기를 “천도이니라.”
묻기를 “양도와 다른 것이 없습니까?”
대답하기를 “양학은 우리 도와 같은 듯하나 다름이 있고, 비는 것 같으나 실지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운인즉 하나요 도인즉 같으나, 이치인즉 아니니라.
(2) 나는 그 말에서 '理'의 자리에 '길'을 놓았다. 이치와 길(道)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것도 두고두고 풀어나갈 공부 주제이다.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은 내가 대학 3학년 때쯤(1987?),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동학기행을 떠나면서 창안한 용어이다. 그때 어렴풋이나마, 이것이 내 평생의 공부-글쓰기 화두/주제/소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3) 걸으면, 자동차를 타고 다닐 때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이 당연한 진리를 나는 10여년 이상 외면하고 살았다 - 주로 자가용 이용, 집앞을 갈 때도 가급적ㅠㅠ. 그러다가, 한달여 전부터 자동차를 두고 다니는 걸 원칙으로 삼기로 했다-업무상 불가결할 때를 제외하고 / 평생을 걷기+대중교통을 주로 한 분들에게 민망할 따름이다. 다만 나도 그 시간이 전생애의 1/4쯤이었으니, 지금이라도 회심한 것이 다행이다...).
(4)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그 한 달 동안 얻은, 망외의 깨달음 중 하나다. 그 덕분으로,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을 '길 위의 개벽학'과 관련하여 재개하려고 한다. 오는 23일, 그 출발이다(개벽창간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와 함께).
그러나 무엇보다, '길 위의 개벽학'과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이 만난 것은 오늘(2019.6.18) 있었던 사건 덕분이다. '도로원표' 이야기다. 이것도, 걸었던 덕분에 비로소 볼 수 있었던 / 만날 수 있었던 / 들을 수 있었던 일이다. 이 도로 원표는 광화문의 면세점 근처에 있는데, 나는 성공회대성당에서 있었던 행사에 참석하고,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이걸 발견했다. 유레카! (이런 게 있다는 얘기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5) 광화문에는 서울특별시의 도로원표가 설치되어 있다. 도로원표의 개념은 이러하다.
대한민국에서는 도로원표가 1914년에 처음 설치되었다. 1914년 4월 11일에 <총독부고시 제135호>를 근거로 경성(지금의 서울), 인천, 군산, 대구, 부산, 마산, 평양, 진남포, 원산, 청진 등 10개 도시에 시가지 원표를 위치를 결정, 고시했다. 당시 도로원표에는 10개 도시의 주요도로들을 골라 1등 또는 2등의 도로 등급도 표시했는데, 대한민국이 고려 시대 때부터 사용해오던 대로, 중로, 소로와 같은 전통적 개념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으며 그 기준도 모호하였다고 한다. 현재 볼 수 있는 도로원표는 1997년에 설치된 것이다.
(중략) 서울특별시의 도로원표(진표)는 1914년 설치 당시에는 경성부 광화문통(지금의 세종로) 중앙[4](해발 30.36m, 동경 126도 58분 44.8018초, 북위 37도 34분 2.7474초)에 가로 90cm, 세로 30cm, 높이 70cm의 화강암 원표를 설치하였다. 당시 도로원표 전면에는 ‘道路元標(도로원표)’, 측면에는 전국 18개 주요도시 간 거리를 일본식 한자로 음각되어 있었다. 이 후 1935년 칭경기념비전 옆으로 옮겨졌다가 1997년에 세종로네거리(세종대로와 종로가 나누어지는 4거리 중심점, 교보빌딩 앞)에 새로 설치하였다. 이표는 세종문화회관 앞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새로 설치된 도로원표는 처음 도로원표가 설치된 곳에서 남쪽으로 약 151m 떨어진 위치다. 그리고 서울특별시의 도로원표만은 도로법 시행령 제50조 2항을 통해 그 위치를 세종로광장의 중앙으로 못박아 두었다.
(중략)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도로원표가 설치되어 있는데 대한민국과 달리 문화어로 '나라길 시작점'이라 칭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양에 설치된 도로원표(나라길 시작점)은 김일성광장 주석단 아래 중앙에 설치했다고 알려져 있다. 본래 1990년 초까지 평양 중구역 중성동 해방산여관 앞마당에 비석 형태로 세워져 있었지만 이후 평양 중구역 평양성 중성의 출입문인 함구문으로 위치를 변경했다. 이 때 바꾼 이유는 “과거 고구려가 평양으로 도읍을 이전한 후 평양성을 쌓았는데 당시 파발들이 이 문을 통해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다 1996년에 현 위치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상, 위키백과 참조]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서울특별시 도로원표 주변에 서울시의 주요 지역 표시만이 아니라 전국 주요 도시, 나아가 세계 주요 도시도 표시하여, 명실공히 '대한민국 도로원표'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그것이야 어쨌든지 간에, 오늘 광화문로의 성공회대성당에서 있던 행사에 참여하고, 걸어서 이동하던 중에 그 도로원표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나에게, "이제, 다시 시작해 보게!"라고 하시는 한울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하였다.
해서,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길 위의 개벽학을 떠난다, 다시, 돌아오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