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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Aug 30. 2019

3.1운동 100주년과 한국종교개혁

오늘 모시는 책 - 017

"한국종교개벽".. 개벽파의 확장... 올해, 3.1운동 100주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고 있다.(물론, 개인적으로는 20년 동안 벼르고 별렀던 3.1운동 백주년 준비 과정에서 妄身하고 亡信하고 茫愼하는 일을 겪었다. 내 삶에 한 획이 그어졌다.) 그러니, 올해 처음으로 '국가기념일' 된 동학농민혁명기념일이, 광화문 광장에서 기념식을 조촐하게 치르는 것 말고는 별 탈(?) 없이 지나는 것은 정말 별 일 아닌 일인지도 모른다. 내가 개인적으로 망신은 했지만, 정부는 그러면 안 되었다. (겨우, 지금 태화관 주변에 '3.1광장'이 조성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100년 대계에 값하는 일이, 촛불혁명으로 성립된 정부 차원에서 이룩되지 못하는 바는 입안이 쓰린 것은 물론, 속이 헤져서 피가 흐른다.) 그러나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꽝꽝한 겨울인 듯해도, 시나브로, 투터운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봄물이 봇물 못잖게 흐르는 법이다. 올해 3.1운동100주년에도 100주년에 값하는 혁명적 사건은 여기저기서 씨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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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운데, 오늘 모시는 책 [3.1운동 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은 사실, '한국종교개벽'이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이 더 타당한 책이다. 오늘의 한국종교는 저 유구한 유교나 불교든, 서양으로부터 전래한 기독교(개신교)든, 1800년대 중엽의 동학창도 이래의 신종교(중에서 특히 개벽종교)든 간에 사실상 3.1운동 100주년을 기점으로 그 현대적 정체성을 획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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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동학-천도교는 창도 당시부터 '좌도(左道)'로 낙인 찍히고, 더욱이 조선왕조로서는 반란임에 분명한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으며, 갑진년(1904)에는 개화혁신을 통해 왕정개혁을 주도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던 무리들이다. 그들이 기미년에 국내 최대의 종단으로 자리매김하여, 우로는 불교를 좌로는 기독교를 망라하여 삼위일체를 이루어 추진한 것이 바로 3.1운동이다. 기독교는 또 어떤가. 천주교의 경우 이땅에 전래된 이래로 '수난과 순교'를 거쳐 신앙의 자유를 쟁취한 여파로 3.1운동에서 복지부동했으나, 개신교는 순탄히 정착한 이래 선교와 교육과 의료에 집중하다가 3.1운동에 즈음하여 종교적 결단을 내려, '정치방면'으로 진출함으로써, '한국의 기독교'로서의 이름표를 획득하였다. 불교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비루한 생존을 영위하다가, 일제 강점을 전후로 외래/왜래의 힘에 이끌려 왜색으로 견인되어 가던 중, 3.1운동을 계기로 화들짝 졸음에서 깨어나, 스스로 죽비가 되어 3.1운동 전선으로 내달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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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에서 천도교, 기독교, 불교가 하나된 사건은 홍익인간 재세이화 이래 한국사상의 전통 기반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기에, 기력을 다한 선천시대의 사상관념에 새 기름을 부어 후천의 서막을 알린 '개벽적 사건'이 바로 3.1운동에서 천도교-기독교-불교가 하나된 일이다. 3.1운동 100주년에서 정부의 행사가 이 점을 주목하지 못한 것은 패착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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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탓만 할 일은 아니다. 아는바와 같이 3.1운동을 정점으로 해서, 이러한 삼위일체 정신, 종교개벽의 기운과 기상, 기백과 기천(祈天)은 시나브로 상실되고 소실되고 망실되어 왔다. 그 결과가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종교지옥'이다. 기독교(총량으로서)의 부패와 타락, 천도교의 쇠락과 전락, 불교의 마고일장이 점입가경이다. 오늘날 종교계 일각(?)에서 보여주는 반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이며 반종교적이기까지 한 패악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아직은 종교가 현재와 같은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종교의 부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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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는 2018년 1년 내내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개벽적 사건'이었던, (전체로서의) 한국근대종교사의 출발점인 "3.1운동과 종교"라는 주제에 천착하였다. 세미나와 토론을 거듭하여 결실한 것이 이 [3.1운동 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 여기서 '개혁'이란, 앞에서도 말했듯이 '개벽'의 다른 이름이다. 이 책은 기독교, 불교, 천도교 외에 천주교와 유교까지 3.1운동 당시의 삼위일체 정신을 되살려, 각자가 처했던 위치, 각자의 상황을 기반으로 3.1운동을 재고하고, 재생하고, 재활하는 빛나는 10편의 글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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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점정은 역시 [한반도독립선언서]. 3.1운동 당시의 그 빛나는 성취와 기미독립선언서에 깃들인 기도, 그리고 종교적 유토피아를 전망하는 그 거룩한 종교적 상상력을 오롯이 계승하여, 21세기, 3.1운동 백주년에 지구적 지평(우주속의 지구로서) 위에서 한반도의 평화, 인류-생명-생태 공동체의 안녕을 기도하고 기원하고 기약하는 <한반도독립선언서>는 [3.1운동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과 양편의 수레바퀴가 되어, 3.1운동백주년의 의의를 지탱하는 성과로 제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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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의 속성, 그리고 오늘날 대다수(주류) 종교인(계)의 속성으로 말미암아, 무엇보다 '들을 줄 아는 귀' '볼 줄 아는 눈' 가진 사람들의 태부족으로 말미암아, 이런 류의 책(여러 종교인, 종교계가 뜻을 모아 엮은 책)은 잘 팔리지 않는다. 출판에 즈음하여 가진 <한반도독립선언서>의 발표 행사는 도하 신문 곳곳에 소개되긴 했지만, 오늘 우리가 처한 종교계의 현실,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그 너머의 세계의 문제들이 한두 편의 기사로서 충분히 논파될 수는 없는 법. 이 책 [3.1운동 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이 널리 읽히는 것은 필요충분조건 중 팔할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었다. 널리 읽히기에는 부적합한 분량과 형식(논문)이라는 점은, 주체(필자)자들의 태만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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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러므로, 이 책 [3.1운동 백주년과 한국종교개혁]은 지나간 일로 묻어 둘 수 없는 일이다. 3.1운동의 그 '종교개벽적 사건'의 의의를 계승하는 일이 '백주년'만의 일은 아닐 터. 오늘 이땅에서 개벽을 갈망하고, '지상천국'을염원하는 종교인이라면, 이 책을 순화하고 확장하여, 종교개혁(개벽)을 마침내 성취하고, 통일한국과 평화아시아, 기어코 생명의 지구촌 '한울님(하느님, 부처님) 세상'을 건설하는 길에 순도/순교/해탈의 정신으로 매진할 일이다. (그 전에 이 책을 사서 꼭 집안에, 사무실에 비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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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 이 책의 출간된 그 기운에 힘입어, 올해 <개벽파선언>이 나온 것은 근신히, 3.1운동 백주년에 값하는 일을 해 낸 셈이 된다. 다행이고, 고맙고, 눈물겨운 성취다. 모두가 한울님과 스승님, 그리고 순도순국 선열, 그리고 부모님의 음덕이다. <개벽파선언>에서도 <한반도 독립선언서>는 3.1운동백주년의 획기적 의의에 값하는 중요한 문건으로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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