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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28. 2020

개벽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다

-개벽의 징후 7

(위의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4. 개벽의 상상력, 개벽의 징후를 듣다


‘개벽의 징후’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와 지구촌의 징후들에 귀기울이고, 그 트렌드를 조망하고, 이것을 좀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자는 프로젝트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핵심 컨셉은 “개벽(전환)의 눈으로 개벽의 징후를 발견하고, 새로운 트렌드로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 일은 세상 사람들은 ‘집단지성’이라고 말하고, 동학-천도교의 용어로는 ‘영성’을 계발하고 발휘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영성이란 개별적인 인간 존재감을 개벽적인 인간 존재론으로 승화시키는 데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내 안에 무궁한 한울이 생존(生尊)하고, 내가 무궁한 한울 안에서 ‘존재(尊在)’한다*는 섬세한 양태를 각성한 결실이며, 또 근거이다.  * ‘생존(生存)’이 아닌 ‘생존(生尊)’은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신 존재이므로 ‘살아 계신다’(生尊)고 표현해야 한다는 윤노빈(동학의 세계사상사적 의미)의 표현이다.


열매 안에 씨앗이 포태(胞胎)되고 씨앗 안에 열매가 잠재(潛在)하는 것과 같은 원리와 물리와 생리가 바로 영성의 ‘자취’**이다. 영성을 동원하여 ‘개벽의 징후’를 발견하고 발표하고 발신하는 것은 오늘날 그 영성마저 자본에 의해 작동하는 시스템으로부터의 이탈을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그것이 포월(包越)이다. ** 수운 최제우 선생은 이 우주 자연 현상이 ‘ 한울님 조화의 자취[天主造化之迹]’라고 하였다.


다시, 개벽의 징후에 귀 기울여 듣고, 읽고, 발견하는 일은 일찍이 수운 최제우 선생이 ‘다시 개벽’을 예감하고 예견하고 예고한 이래로 해월(최시형), 의암(손병희)은 물론이고 소태산(박중빈) 이래의 원불교, 증산(강일순) 이래의 증산교, 나철 이래의 대종교 개벽전통 등을 계승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근본이 되는 ‘개벽’이 과거 한때의 선언적 언명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지금도, 생생히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과 믿음을 전제로 한다. 이 일은 우리가 잃어버리고 소홀히 해 온 ‘개벽감수성’을 되살려서,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개벽을 감지하여 무관심하고 무감각하고 때로 무지한 세상 사람들의 개벽감각점을 자극하고 민감하게 하는 작업이다.


개벽의 징후를 읽고 또 듣는다는 것은 개벽의 감수성을 틀로 하여 세계(사회)의 트렌드를 분석하고 세상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져야 할) 의제를 제안하는 일(어젠다 세팅)이다. 이것은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실증주의보다는 트렌드를 기록하고 어젠다를 발신하는 일이 현실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구성주의를 택한다. 이 일은 대전환의 징후를 개벽으로 현실화하기 위해 철학과 사상에서부터 구체적인 일상의 삶에 이르기까지, 개벽의 징후를 해석하고 널리 소개하여 공유하는 일이다. 성찰과 탐색을 통해 구체적인 징후들을 포착하고 이를 종합하여 현 시점(2019년 말)에서의 결론에 도달하겠지만, 이를 위한 가설(假說)이 필요하다.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조와 원리로 개벽의 징후는 가시화될 것으로 본다.

첫째, 개벽의 징후는 생명조화 친화적이다. 이는 각자위심(各自爲心)의 세태에서 천지인 조화(=同歸一體)의 본성을 깨닫는 마음을 회복하는 수행(修行)과 수양(修養), 정화(淨化)와 정화(精華), 영성(靈性)과 성령(性靈)이다. 이는 정신개벽 즉 가치관과 태도, 마음과 도덕 개벽 같은 영역이다. 전 세계적 명상, 치유, 힐링 열풍은 결국 인간 안의 빛(神性)을 믿고 찾고 빛내는 일이다. 이것이, 지금 현실화되고 있는 ‘6번째 대멸종’을 방지하고, 치유하고, 돌이키는 신문명/신개벽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다.


둘째, 개벽의 징후는 전환(轉換)과 전복(顚覆)이다. 이것은 우선 원시반본(原始返本)으로 오래된 미래를 실현하는 일이다. 인내천(人乃賤)에서 인내천(人乃天)으로의 사회적 관계 회복이다. 다음으로 인외무천 천외무인(人外無天 天外無人)을 깨닫고 보편화하여 만물이 모두 시천주(莫非侍天主)임, 만물은 존재(存在)하지 않고

존재(尊在)함, 그러므로 경천(敬天) 경인(敬人)에서 경물(敬物)에까지 이르는 삼경적 관계의 회복이다. 끝으로 천지는 곧 부모요 부모는 곧 천지, 즉 천지부모(天地父母)이므로, 향벽설위(向壁設位)에서 향아설위(向我設位)로 나아가는 근거가 되기도 하는 천지인삼재의 개벽이다.


셋째, 존재의 개벽이다. 조직과 제도를 경유하던 관계가 블록체인을 매개로 한 P2P로 전환하거나, 사물인터넷의 실현으로, 인간만이 아니라 만물과 소통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이 범주에서 다룰 수 있다. 오늘날 경계 유동(流動)이 일어나고 생생(生生)하는 생물지심(生物之心)의 창조성이 인간에 고유한, 유일의 도구가 되며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며 새 가치를 창조하는 조화(造化), 즉 무위이화(無爲而化)하는 과정을 통해 각 분야에서 창조를 거듭하는 일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개벽은 이 위기의 시대에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는 것(再天地創造), 문제의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넷째, 개벽의 징후란 ‘단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개벽적 의의를 가진 것’이다. 생명화, 조화, 전환, 유동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인간, 사회, 세계로의 도약을 말하고, 그 도약이 디스토피아로의 전락이 아니라 지상천국으로의 상승으로 예견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개벽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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