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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r 27. 2020

개벽세(開闢世)를 상상하라!

- 개벽의 징후 6

(위의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2. 코로나, '예고편'보다 먼저 개봉된 '본편' 영화 

북극이 녹아내린다. 하루에 10만5천㎢, 남한 크기만 한 거대한 얼음이 매일 녹아서 바닷물이 되어 버린다. 이것은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바 살인적인 폭염을 낳는 기후붕괴 때문이기도 하고, 다시, 앞으로 더 큰 규모, 더 비극적이고 비관적이고 비통스럽게 다가올 살인적인 기상대이변(폭염, 폭우 등)과 괴질악질역병의 전조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것은 모두 인간이 산업화 시대 이래로 오염물질을 무차별적으로 배출한, 인위적인 결과이다. 한마디로 지구상의 일개 종(種)인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중이다.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고, 본디 1만년 전부터 홀로세(Holocene, 現世, 沖積世)로 불러오던 지구 시대구분에서 현재 시대를 구분하여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고 일컫는다.


‘기상대이변’은 단지 기상이변이 아니다. 그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보내는 메시지이다. 전통적인 용어로 하면 ‘천명(天命)’이다. 하늘의 명령이다. 본래 하늘의 명령은 ‘강제적인 지시어’가 아니라, 인간이 애써서 알아차려야 하는 징조로서 주어진다. 그런데, 지금 천명은 ‘애써서 알아차’리지 않아도 될 만큼 직접적(直接的)이고 직각적(直覺的)으로 직감적(直感的)이고 육감적(肉感的)으로 다가온다. 코로나19는 그런 점에서 예고편보다 먼저 개봉되어 버린 '본편' 영화다. 급박하고, 급격하게, 급진적으로 제기된다. 그만큼 하늘도 마음이 급하다는 뜻이고, 속이 타들어간다는 말이고, 애가 끓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인간의 눈앞에서 경고등을 마구 휘젓는 형국이고, 귀에 대고 고함을 질러대는 격이다.


지금의 기후붕괴를 ‘천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까닭은 그 또한 한울님 조화의 자취이기 때문이다. 수운 선생이 동학을 창도하고 본격적으로 집필한 최초의 글(布德文)은 바로 이 ‘자연 현상 = 한울님 조화’라는 말로 시작한다; “먼 옛적부터 봄과 가을이 갈아들고 사계절이 차례로 오가는 그 질서가 옮기지도 아니하고 바뀌지도 아니하는바 이것은 곧 한울님 조화의 자취이니라.”(동경대전, 포덕문) 


이것을 천명이라고 알 수 있는 까닭은 한울님이 뜻을 두면 아무리 금수 같은 세상 사람들이라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무극대도(無極大道) 전지무궁(傳之無窮) 아닐런가 천의인심(天意人心) 네가 알까. 한울님이 뜻을 두면 금수(禽獸) 같은 세상사람 얼풋이 알아내네( 용담유사, 몽중노소문답가).”


오늘 인류는 스스로가 앞장서서 초래한 이 지구생태계의 위기가 자기 자신을 비롯한 지구상의 생물종의 ‘대멸종’이라는 ‘최후의 위기-최종의 파국’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비관론-생물학적/파국적 종말론과, 아니면 지구상의 생물종이 그동안 숱한 위기를 겪으며 결국은 이를 이겨내고 번식과 번성과 번영을 구가하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해 왔듯이 새로운 출구와 활로를 찾아 창조적 진화를 이룩해 나갈 것이라는 낙관론-종교학적/개벽적 종말론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인류세는 곧 개벽세(開闢世)*이다. 

* 개벽세 : 동학 개벽사상의 지평에서 제기되는 개벽세는 낡은 세계가 새로운 세계로 재편된다는 것을 지시하는바, 기독신학에서 말하는 ‘종말론적 세계관’과 상통한다. 그런 점에서 파국적 종말론보다는 선취된 파국 이후 새 세계를 지지하는 개벽적 종말론을 지향한다. 이병한이 <개벽파선언>에서 처음 쓴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류가 직면한 ‘종말적 대파국’의 징조가 하도 급박하고 급격하고 급진적인지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발걸음도 분주하긴 하다. 한마디로 대전환, 새길, 개벽을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그 목소리도 커지는 중이다. 그러나 그 또한 선무당이 활갯짓만 요란스레 내지르다가 제상의 제물들을 풍비박산으로 헤쳐 놓은 꼴이기 십상이다. 여전히 대다수의 인간 군상들은 오불관언 여전히 눈앞의 이익(利益), 이해(利害), 이론(理論)에 매달려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이 대파국 위기를 앞장서서 공론화하고 공공화하고 공진화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나 세계의 선진제국(先進諸國), 그리고 지식과 지혜와 지략을 갖춘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까지 인류가 내달려온 길을 따라 좀더 빨리 혹은 조금 다르게 달려가는 데 더 많은 관심과 정력과 상상을 동원하는 듯하다.


3. 상상력의 개벽, 개벽의 상상력으로 징후를 읽다


오늘의 인류가 이룩한 문명적(물질/정신) 성취는 모두 인간의 창조적 상상력의 결실이고 결과이고 결산이다. 추위에 얼어 죽지 않는 삶을 상상한 결과가 의(衣)와 주(住) 계열의 인간 문명을 발달시켜 왔고, 좀더 안전하게, 좀더 많은, 좀더 맛 있는 먹거리를 상상해 온 결과가 오늘날 수많은 식(食)의 문명을 이룩해 놓았다.


비약적으로 성장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 역시 이동의 편리와 안전, 소통의 장애 제거를 향한 인간의 상상력의 결실이며, 인간사회의 법과 제도, 도덕과 학문 또한 좀더 낳은 인간의 삶을 상상한 결과이자 또는 그 상상력을 극대화하는 도구, 그 상상을 실현하고 현실화하는 수단으로 성장 발전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은 판도라 상자와 같아서, 그 안에는 인간에게 유익하 고 유용하고 유리한 것만이 아니라, 폭력과 전쟁, 갈등과 분열, 파괴와 살육에 관한 유해한 상상력도 무진장 쌓여 있고, 또 수시로 발휘된다. 지금 세계를 피로 물들이고 고통과 절망으로 인도하는 온갖 요소들 또한 인간 상상력의 결정체다.


테러와 증오범죄, 빈익빈부익부의 경제구조, 홀로코스트나 인간 생체실험을 감행한 731부대, 7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한국은 자신들의 옛 식민지이거나 제2등 국민이라는 인식을 버리지 못하는 ‘아베류’의 일본 군국주의자, 원전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여 위험을 세계화하려는 발상, 온갖 증오 범죄와 님비 현상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따위도 모두가 인간이 상상력을 현실화해서 얻은 결실이다.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의 출발점이 되는 인터넷 또한 ‘군사기술’이 민간화하면서 이루어진 결실이고 보면, 오늘의 인류 문명은 전쟁에 관한 인간의 상상력(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적을 살육할 수 있을 것인가?)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지옥으로도 천국으로도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이라면, 그 기운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하려 마음먹는 것이 바람직한 인지상정이다. 더욱이 지금 인류와 생명계 전체가 직면한 상황이 대파국의 위기이고 보면, 지금이야말로 대파국으로 내달리는 열정을 극적으로 돌이켜 대전환의 에너지로 반전시키는 기획이 필요하다. 이것은 인간의 욕망추수를 미화하고, 물질문명의 위력에 굴종하고, 과학주의를 맹신하는 인간 상상력을 개벽하는 일이며, 우리 안에 도래한 개벽의 미래를 현현하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이것은 ‘상상하는 권력’을 개벽민중의 주권으로 획득해 내는 상상력의 혁명이며, 기연(其然 = 물질, 몸, 욕망)의 세계만을 긍정하는 인간 왜소화를 저지 억제하고 전복하는 불연(不然 = 정신, 마음, 도덕)의 혁명이다.


(다음 호에 계속)


*개벽의 징후 2021에 참여하실 필자를 모집합니다. (-> sichun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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