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걸음 Mar 26. 2020

코로나를 넘어서

-개벽의 징후5

1. 오래된 미래, 코로나 19 - 해피엔딩은 없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2013)는 순식간에 전 세계를 뒤덮은 좀비 역병(사람을 좀비로 만들어 버리는) 속에서 살아남는 인류의 투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0년이 되기도 전에 "영화적 상상력"은 생생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수많은 좀비 영화들이 있었지만, 큰 틀은 <월드워 Z>와 다르지 않다. 창궐하는 역병(좀비화)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화는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과 그 가족은 살아남아, "이후 세계"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해피엔딩'이 아니다. 수억 명의 인류가 '비극적인 최후 - 아닌 최후'를 맞이한 다음의 일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코로나 19'는 그런 점에서 이미 오래전에 예견된 미래이다. 


이번 코로나 19에 즈음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은 단군 이래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 이념-이상의 실천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국민과 그 국민의 뜻을 받든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 메르스 사태 등에서 겪었던 뼈저린 실패의 교훈을 저버리지 않고, 묵묵히 준비해 온 사회적 시스템이 위기 국면에서 적절하게 발휘된 결과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은 누가 뭐라고 해도 '촛불혁명'으로 우리가 거둔 승리 덕분에 가동될 수 있는 정치적-사회적 기반을 획득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조국정국' 국면에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촛불혁명정부'가 아니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바로 현재의 사회적 시스템이야말로 '촛불혁명정부'이고 그 '촛불혁명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다름아닌 '문재인정부'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코로나19"는 지금 인류 사회가 맞이한 새로운 시대의 징조이며 전조일 뿐이다.

코로나 19에서 눈을 들어 지금 우리 곁에 와 있는 "대전환 = 개벽"의 징후를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이번 코로나19를 대한민국의 '촛불혁명정부'가 "최선에 가까운 차선(사망자-경제활동 등의 중지)의 결과"로 방어할 수 있었던 까닭은 신속한 진단 시스템 가동, 투명한 정보 공개와 공유,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등이 꼽힌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이번 한번은 이러한 방식으로 넘어설 수 있지만, 다음 파도는 결코 이러한 방식으로 지탱하지 못한다. 일본의 3.11재앙 당시, 쓰나미가 '충분히' 높이 쌓았던 재방을 가볍게 넘어 버리던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우리는 코로나19보다 열 배, 백 배 더 큰 쓰나미를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19로 새로 열리는 "새로운 시대 - 개벽의 시대"는 이 이상의 방식, "인류의 삶의 방식의 전환"을 요구한다. 인간이 이러한 새로운 삶의 방식 - 새로운 체제를 도입하고 가동하기 전까지 코로나19의 다음 버전은 '거의 해마다' 전 세계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 넣을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가 '자가격리'나 '드라이브 스루' '천문학적인 액수의 경기부양책'을 동원하는 것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을 터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코로나19가 엄습하기 바로 한두 해 전에 우리를 파멸적인 공포로 몰아 넣은 것은 "폭염"의 "날씨"였다. 그 "살인적 폭염"은 코로나19 못지않은 살상력을 가동중이다. 


2018년에 폭염으로 인한 공식 사망자는 48명으로 집계되었지만, 실제로는 그 20배에 달한다는 의견도 있고(폭염의 영향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전세계적으로도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 바로 2년 전의 일이다. "살인적 폭염"을 불러오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은 '살인적 폭염'뿐만이 아니라, 생물종 감소로 말미암은 생태계의 교란과 그에 뒤따를 '식량난', 그리고 코로나19 같은 치명적 전염병의 상시적 유행 등 일파만파의 파급효과를 일으키며 인간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그다음의 질병과 재난을 최소화하고, 궁극적으로는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국, 이러한 문제를 낳은 "인류의 삶의 방식 자체"의 전환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을 "개벽의 징후"로 읽는다. "개벽의 징후"은 종말적, 파멸적, 재난적인 징후가 아니라, 그 종말적이며 파멸적이며 재난적인 상황의 이면에 "새로운 시대를 지시하고 지향하고 지도하는" 긍적적인 징후가 있다는 것에 착안한다. 대한민국이 코로나19를 슬기롭게, 용감하게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처럼, 인류는 지금 직면한 대재앙의 현실을 극복함으로써, 생명과 평화의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이다. 


(다음 호에 계속)

이 책은 다음주(4월 1일 전후, 구입할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