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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May 29. 2020

개벽 시대의 지구인문학을 다시, 개벽한다

- 월간 ≪개벽≫에서 계간≪다시개벽≫으로 나아가며

*이 글은 ≪개벽신문≫ 제94호(2020년 5월호) <개벽의 창>에 게재한 원고를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올해는 월간잡지 ≪개벽≫이 창간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오는 6월 25일이 바로 100주년의 달입니다. ≪개벽≫은 1920년 6월 25일 창간호를 발행했지만, 그것은 1920년 7월호이니, 6월과 7월 모두 나름의 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개벽≫ 창간 100주년”에 주목하는 움직임은 거의 없습니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까닭은 ≪개벽≫ 100주년은 그렇게 사회적으로 무관심해도 좋을 잡지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벽≫에서 ≪개벽신문≫까지 


월간 ≪개벽≫은 천도교청년회에서 설립한 <개벽사>의 첫 잡지로 창간되었습니다. ‘개벽’이라는 제호(題號)는 당시 동학-천도교가 전망한 시대적 과제--자아(개인)의 각성과 계발, 민족의 독립과 창달, 인류의 평화와 안녕, 세계의 개조와 개벽--을 모두 담아낸 말입니다. ≪개벽≫은 아시다시피 창간호부터 압수되어 결국은 ‘임시호(臨示號)’로 간행되었습니다. 그것은 ≪개벽≫이 그 후 6년 동안 겪게 될 고난의 서막에 불과했습니다. ≪개벽≫은 그 후 통권 72호를 내는 동안, 절반 이상을 압수, 발행정지, 삭제 등의 제재를 당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1926년 8월 1일자로 일제 당국의 강압에 의해 폐간 되었습니다. 


≪개벽≫에 대한 평가는 이러합니다; “잡지 ≪개벽≫은 그 시기 사회 조건 속에서 여론을 선도하고 지성사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리나라 매체의 역사에서 ≪개벽≫의 역할을 되풀이한 게 또 있을까 의문이다. 뒷날 ≪사상계≫나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이 그와 비슷한 지위를 점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개벽≫은 (그 이후의) 잡지들이 시사, 문학, 학술 등의 방면으로 전문화하기 이전에 그런 역할을 (종합적으로) 감당했다. 지성사, 정치사, 문학사적 방면에서 전방위적 여론을 형성한 최초의 잡지였다. 그런 점에서 뒷 시가 잡지들이 흉내내지 못하는 바가 있다.”(임경석, 차혜영 외 지음, [[≪개벽≫에 비친 식민지 조선의 얼굴]], 모시는사람들, 2007, 7쪽)


그 이후 1934-1935년간에 ≪신간개벽≫이 4호까지, 그리고 1946-1949년간에 ≪속간(복간)개벽≫이 9호까지 간헐적으로 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6.25 이후, 남한 사회 내에서 천도교로 대표되는 자주적, 자생적 사상, 종교, 사회 세력의 입지가 좁아지는 사회 흐름 속에서 ≪개벽≫은 다시 예전의 위상으로 복간되지 못하였습니다. 1960년대 이후 2000년 무렵까지 천도교청년회의 본부 및 각 지부 청년회에서는 ‘개벽’을 제호로 포함한 소식지(회지)를 지속적으로 발행하였으나, ≪개벽≫의 위상이나 그 성격과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천도교단 차원에서 1960-70년대 <개벽사 복원> 및 <개벽복간준비위원회> 등이 구성되어 복간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전초 작업으로 ≪개벽≫ 영인본을 발간(1969년)하는 데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개벽’을 중시하는 한국 신종교 계열의 모 종단에서 '개벽'을 제호로 하는 본격 월간지를 창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개벽'의 본래의 의의나, ≪개벽≫ 잡지의 지향과는 다른, 해당 종단의 '기관지' 성격이 농후하였습니다. 


≪개벽≫이 역사 속으로 묻혀 가는 지난 100년의 세월은 한국사회가 분단 체제의 고착화, (서구적) 근대화, 세계적 자본주의 체제의 내면화의 길로 내달려온 시간과 정확하게 겹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개벽≫의 주역들, 나아가 그 이면에 동학-천도교 등의 ‘개벽파’들이 그리던 세계와는 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른 길’을 걸어온 세계가 직면한 현실이 바로 ‘기후위기’로 인한 (인류를 포함한) 대멸종의 위기, 그리고 그 전초적 징조로서의 ‘코로나19’ 사태입니다. 


그러나 ≪개벽≫(‘개벽’)의 꿈과 ‘개벽파’의 여정이 멈춰진 것은 아닙니다. ≪개벽≫ 창간 이래 지난 100년, 길게는 125년(since1894), 나아가 지난 160년(since1860-동학 창도) 이래로 ‘개벽의 꿈’은 단 한 시도 멈추지 않고, 또한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지도 않고 이 세계를 ‘개벽의 방향’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주류(主流)를 거스르는 역류(逆流)로서, 새로운 세계를 기대(企待)하고 기도(企圖)하며, 기약(期約)하고 기도(祈禱)하며 숱한 고난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동학혁명’ ‘3.1운동’을 위시하여 최근의 ‘촛불혁명’까지의 흐름이 그것입니다. 그러한 흐름의 한 귀퉁이에서 ‘개벽’ 본래의 꿈을 되살리기 위하여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는  [[개벽의 꿈 동아시아를 깨우다]]를 위시하여 ‘개벽’을 담론화하는 출판을 꾸준히 계속해 왔습니다.


≪개벽신문≫에서 ≪다시개벽≫으로 


이런 가운데, ≪개벽≫ 발행의 후예인, 천도교단의 청장년들을 중심으로, 천도교인-비교인(일반인)을 망라하여, ≪개벽≫ 복간을 염원하며, 새롭게 결성된 것이 <개벽하는사람들>(‘개벽사’)이라는 모임입니다. 이 모임은 애초에 교단 내 개혁운동 모임인 ‘천도교교구장협의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2008년 ≪개벽신문≫ 창간준비호[발행처:천도교교구장협의회→준비3호부터 ‘개벽신문창간준비위원회’]를 발행하면서 발전적 변화를 거듭하여 결성되었습니다. 개벽하는사람들은 2010년 8월 준비13호까지를 발행하고, 2011년 4월 5일자로 ≪개벽신문≫ 창간호를 발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로부터 만 9년째인 2020년 4월호로 93호를 발행한 ≪개벽신문≫은 그동안 ‘개벽’을 우리 시대의 화두로 재정립하는 한 길로 적공(積功)을 계속해 왔습니다. 


이러한 ‘적공’의 덕분으로 2, 3년 전부터 ≪개벽신문≫의 핵심 기획진을 중심으로 ‘개벽’ 담론의 한 단계 성숙을 도모하자는 움직임이 계속되어 [[한국 근대의 탄생-개화에서 개벽으로]](2018), [[개벽파 선언]](2018), [[개벽의 징후 2020]](2020) 등이 잇따라 간행되었습니다. 그러한 흐름에 힘입어, 또는 그러한 흐름에 힘을 보태며, (본래의) ‘개벽’을 포함하는 수많은 합성어들이 속속 등장하였습니다. ‘개벽대학’ ‘개벽학당’ ‘개벽마을’ ‘개벽라키비움’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 속에서 “개벽(학)파”에 대한 논의도 성숙되어 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벽파’ 담론의 본격적인 전개를 위한 토대로서 ≪개벽신문≫의 재편을 논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지난 6개월여에 걸쳐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위한 기획을 계속하였습니다. 


이제 ≪개벽신문≫의 원형(元型)인 ≪개벽≫ 창간 100주년(2020년 7월)을 앞두고, 지금까지의 “월간 - 타블로이드판 - 무가지”인 ≪개벽신문≫을 “계간(연 4회 발행 - 잡지판형 - 유가지”인 ≪다시개벽≫으로 새롭게 발행하게 됩니다. 잡지 발행의 핵심인 편집주간과 편집장, 편집(기획)위원 등을 새롭게 구성하여 명실상부한 ‘개벽시대’의 길라잡이이자 ‘다시개벽’의 사상적 교두보로서, 또 ‘개벽파’의 연구 중심이자 미디어로서, 그리하여 마침내 ‘후천개벽’의 마중물이자 놀이판으로서 “다시, 다시개벽하기”를 기약합니다.


지구인문학, 개벽인문학으로 다시 개벽의 시대를 연다 


≪다시개벽≫은 당분간 첫째,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서구 중심의 학문-문화-사상’ 풍토에 대한 비판적 독해를 통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를 확인하는 일, 둘째, 그런 가운데서도 꾸준히 이어져 온 ‘자생적 인문학’ 전통의 재발견과 재조명하고 재생산하여 내면화와 세계화를 추구하는 일, 셋째, 미래지향적 대안으로서 ‘지구인문학’ 차원의 비전의 제시와 제안을 함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만들어 내는 일, 넷째, 실천적 담론으로서, 현재적 ‘개벽담론’과 비전의 공공성 확보라는 네 개의 마디를 거치며 굴러갈 것입니다. 


이것은 ‘순환’하되 ‘상승’하는 ‘창조적 순환’이라는 다시개벽 특유의 역사관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춘 자생적 인문학”으로의 인문학의 ‘다시개벽’을 지향할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전 지구의 생명을 위기로 몰아넣은 서구의 인간중심주의, 이성중심주의, 민족-국가중심주의로부터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문학, 지구화 시대의 인문학, 트랜스내셔널 인문학으로의 전환”이 논의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시개벽≫ 첫 1년에 지속되는 구조적인 패턴은 이것이 ≪다시개벽≫에 체질화되는 것을 넘어 우리 사회에 울림을 줄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한 울림이 공감과 공조와 공명을 일으켜 더 큰 울림으로 세상으로 울려 퍼질 때, 그 구조는 다시 창조적인 탈각(脫殼)과 줄탁동시(啐啄同時)의 파각(破殼)을 이룰 것입니다. 그때쯤이면 자생 인문학, 지구인문학, 개벽 인문학이 창조적 주체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류사적 위기 극복의 새로운 발상이라는 세계적 보편성까지 담고 있다는 생각은 사회-인문계의 상식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 ≪다시개벽≫(계간) 정기구독자를 모집합니다. 연4회 발행. 6월 30일까지 구독 신청하시는 분은 4만원(1호-4호)에 구독할 수 있습니다. [7월 1일 이후는 5만5천 원/1년 예정] - 구독신청 sichunj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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