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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03. 2020

가고 다시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을 떠나며

- <개벽신문> 제95호, 개벽의 창 : <개벽신문> 종간사 

* 이글은 <개벽신문> 제95호(종간호) '개벽의 창'입니다.


박 길 수 (개벽신문 편집주간) 


<개벽신문> 제1호 ~ 제94호 전체 표지 

오랫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예고하였던 대로, <개벽신문>은 이번 95호를 ‘종간호’로 하여 역사 속으로 떠나보내게 된다. 월간 <개벽신문>이 단순히 폐간되는 것이 아니라 계간 <다시개벽>으로 발전적인 진전을 이루게 되는 까닭과 과정에 대해서는 지난 호(94호) 이 지면(개벽의 창)을 비롯하여 수차례 밝혔으므로, 재론할 필요는 없겠으나, 이번호는 조금은 주관적인 감상으로 <개벽신문>의 종간에 이르는 긴 여정을 회고하고 전망해 보고자 한다.


<개벽신문>의 발행을 맡아 온 발행인(김인환, 김산)과 편집인(최명림), 그리고 편집주간인 필자(박길수)는 지난주에 회합을 갖고, 장장 10년여에 걸친 <개벽신문>의 대장정을 회고하고, 새롭게 출범하는 <다시개벽>에 대한 기대를 피력하였다. 


필자는 대학에 입학한 이래 오늘에 이르는 36년의 시간 동안 여러 개의 간행물 편집장(주간)을 맡았다. 그중에서 오늘처럼 ‘종간 사설’을 쓰는 매체는 <개벽신문>이 유일하다. 타의에 의해서 어느 날 갑자기 물러난 한 월간지는 여전히 간행되고 있으나 ‘고별사’를 쓸 여지가 없었고, 나머지 것들은 거의 아무도 그 ‘종말’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쓸쓸히, 다시 만날 기약 없는 무기 휴간 내지 폐간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개벽’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도 두 개나 된다. 지난주에 <개벽신문>을 종간하는 간담회에 참석한 분 중 한 분은 35년 전에도 함께하였던 분이니, 모질다면 모진 인연(?)을 한 세대(30년) 이상을 이어온 셈이다. 그러니 ‘폐간사’가 아닌 종간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장족의 발전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파천황(破天荒)적인 의의가 있다.


명시적이든 아니든 간에 지난 35년의 세월 동안 ‘개벽’은 ‘나와 우리’를 따라 다니던 화두였다. 돌이켜보면, 지난 35년 동안 우리의 꿈은 간절하였지만, 언제나 우리의 실천은 그 꿈에 미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해(年)를 거듭하고 회(回)를 되풀이할수록 손을 뻗어 뛰어오르는 높이는 낮아졌고, 함성소리는 나날이 잦아들어 갔다. 꿈에 비하여 공력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이고, 언제나 전업으로 투신하지 못한 채 ‘금을 밟고 한손으로만 일에 임한’ 것도 한몫을 했다.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보면, 이 낮아지고 잦아지는 마음과 기운은 35년 전이 아니라,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개벽>의 선배들을 이민족 치하라는 엄중한 시대 환경 속에서, 어쩌면 유리 상자 안에 갇힌 채 몸부림치며 ‘개벽의 꿈’을 부르짖고 ‘자유로운 개벽 세상’을 향한 날갯짓을 거듭하였다.


나는 여기까지를 쓰면서, 일찍이 청오 차상찬이 1926년에 폐간된 개벽을 되살리고자 1934년에 <신간개벽>을 발간하면서 쓴 복간사(復刊辭)의 한 대목을 떠올린다; “추풍비우(秋風悲雨) 8개 성상(星霜: 1926-1934-인용자 주)에 세사(世事)는 격변하여 창상(滄桑=桑田碧海-인용자 주)의 감이 있고 인사(人事) 또한 무상하여 전날<개벽>지를 위하여 고심혈투하던 민영순, 이두성, 박달성, 방정환 제 용사가 소지(素志)를 미성(未成)하고 벌써 이 세상을 떠나고 김기전 동지가 또 병마(결핵)에 걸려 4, 5 성상을 해서(海西) 일우(一隅)에 누워 있고, 개벽 당시의 인으로 다만 나와 이정호 군이 남아 있어서 본지를 다시 편집하게 되니 독수고성(獨守孤城)과 같이 쓸쓸하고 외로운 감을 스스로 금할 수 없습니다.” 


8년 만에 <개벽>을 새로 내려고 하니, <개벽>이 사라졌던 지난 8년 동안의 고난보다도 그 사이에 여러 동지(同志)들이 이미 저세상의 객이 되고만 정황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와, 쓸쓸하게 홀로 외로운 성(=개벽사)을 지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나 개벽사 문지방이 닳을 만큼 많은 사람이 들락거리던 1920-1926년간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개벽사 한구석에서는 이번 달 잡지가 무사히 나올 수 있을지를 애면글면하는 마음과, 이번 호 원고료는 얼마나 지불할 수 있을지 노심초사하는 눈빛이 형형하였다. 1934년에 이르는 15년 동안, 대부분의 기간을 개벽사의 운영진은 집에 보리쌀 봉지나 들고 갈 수 있는 달[月] 그나마 집사람과 아이들에게 면(面)을 세울 수 있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처지가 계속되었고, 그런 속에서나마 <개벽>을 위하여 그리고 ‘(다시)개벽’을 위하여 한 달, 또 한 달을 이겨 나가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95호에 이르는 동안 <개벽신문>의 처지도 한편으로는 그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개벽신문>을 간행하는 동안의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비로소 <개벽>의 주역들의 그 고초가 눈에 들어왔고, 피부로,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실감할 수 있었다는 게 옳겠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은 <개벽신문>을 처음 간행할 때부터 충분히(?) 예견되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개벽신문>의 행보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 않았다. 그 예견 속에서 <개벽신문>이 세운 1차 목표는 ‘72호’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72호는 1926년 8월호의 호수, <개벽>의 폐간호다. 그 목표는 2018년 4월호로 73호를 발행하면서 달성되었다. 2차 목표는 ‘85호’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개벽> 72개호에 <신간개벽> 4개호, <복간개벽> 9개호를 더한 호수다. 그 목표는 2019년 8월호로 86호를 발행하면서 달성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으로나마 <개벽>과 ‘개벽사’를 통해 개벽의 꿈을 향해 매진하다가 순절(殉節)하신 선배 ‘개벽꾼’들, 나아가 동학 창도 이래로 순도(殉道)하신 ‘동학꾼’들의 해원(解冤)을 이루고, 그 꿈을 향아설위(向我設位)의 적공(積功)으로 되살려 나가고자 한 것이다.


그 마음이 조금이나마 쌓이는 바가 있어서인가. <개벽신문>에 정성을 기울이는 동지(同志), 동사(同事) 들이 끊이질 않아서, 95호에 이르는 사이 ‘개벽의 꿈’은 시나브로 영글어 갔다. “개벽파”가 가시화되었고 마침내 <다시개벽>으로 한층 더 도약을 감행할 수 있게 되었다. <개벽신문>에 글을 싣는 동사들만이 아니고, <개벽신문>을 통하여 ‘개벽의 꿈’을 공감(共感)하고 공유(共有)하고 공명(共鳴)하는 이들이 전국 도처에서 출몰하여, ‘다시 개벽’의 대장정이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이 길을 허투루 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이 길을 헛되이 가고 있지 않음을 확신하는 것만으로도, 고난은 고달프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한 밖으로부터의 헌신과 동심합력(同心合力)과 더불어 안으로부터의 희생과 동고동락(同苦同樂)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우선은 <개벽신문>의 편집-간행에 시간과 공력을 들여야 했던 모시는사람들 식구들의 노고가 그것이다. <개벽신문>이 지향하는 ‘개벽의 꿈’의 그 길과 모시는사람들이 지향하는 ‘동학출판, 개벽출판’의 꿈의 길이 다르지 않기에 문자 그대로 “동지(同志)”를 구하는 마음으로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음은 <개벽신문> 발행에 힘을 보태주신 후원자들의 마음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으나, 그분들은 언제나 지치지 않고 후원을 계속하셨다. 그 기대(企待)에 기대어 여기까지 온 셈이니, 그들 또한 도움을 건네는 후원자가 아니라 한식구로서 함께 걸어가는 동지임에 틀림이 없다.


당초 <개벽신문>이 출발할 때 내세웠던 것은 “아름다운 세상·행복한 사람·정의로운 연대”의 정신이었다. <개벽신문>이 실제로 이룬 것에 비하면 턱없이 높은 이상이기는 하지만, 그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95호에 이르는 동안 쌓아온 시행착오의 경험이 적지 않은데도, 여전히 우리는 청신간결(淸新簡潔)의 마음으로 진선미(眞善美)의 개벽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갈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이 보존되어 있는 것은, 결실이라면 결실이라 할 것이다. 


<개벽>에서 <개벽신문>으로 이어온 개벽의 꿈은 <다시개벽>이라는 종이매체로뿐만 아니라 ‘개벽의 징후’와 같은 단행본이나 개벽학, 지구학이라고 하는 더 큰 범주의 학문적 지향, 나아가 코로나 이후 시대를 위한 생태적 세계관과 생활 규범의 영역으로 무수한 확장과 분화, 심화와 도약이 활활발발한 중이다. 전국 방방곳곳에 ‘연대’할 수 있는 수많은 동지/동사와 공동체들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코로나19가 불러일으킨, 새로운 세상, 새로운 인간, 새로운 생활에 대한 전 지구적 공감대도, 개벽의 길의 든든한 배경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는 160년 전 동학 창도, 126년 전 동학혁명, 100년 전 <개벽> 창간이 꾸었던 꿈으로부터 억수로 멀리 떠나왔지만, 그 꿈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다. 


우리는 늘 가고 돌아오지 아니함이 없는 길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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