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028] 충청도 옥천 동학농민혁명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의 교주인 최시형이 동학도소(본부)를 설치하고
전국의 동학도들이 ‘총기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충청도 옥천을 중심으로 한
동학농민혁명의 전개과정을 고찰한 연구서이다.
여전히 전라도를 중심으로 기억되고 인식되는 동학농민혁명의
실질적이고 실체적인 진실과 역사적 의의를 구명하기 위해서
당시 동학교단의 중심지였으며, 전라도와 경기-강원 지역의 중앙에 위치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전국화(全國化)를 주동하였던 옥천 지역 동학과
동학농민혁명 역사를 밝힌 논문과
그 속에서 성장하여 동학 정신을 계승한 어린이 운동을 전개하였던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 정순철에 관한 연구 논문 등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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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혁명의 역사 연구가 그동안 남접 중심 또는 전라도 전봉준 중심으로 평가되어 오면서, 북접의 입장에 대해서는 온건주의 노선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런 조건에서 충청북도 동학은 동학혁명사에서 변두리 역사로 이해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충청북도는 창도기부터 동학이 유입되었으며, 동학 포교의 중심으로 장내리에 대도소를 두었고, 1993년 보은취회를 통해 척왜양창의, 보국안민을 내세워 시민운동의 효시로써, 나아가 동학혁명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1894년 3월 전라도 무장에서 동학군이 기포하자 괴산, 연풍, 충주 신당리, 문의, 청산 작은뱀골 등지에서도 호응하여 기포했고, 9월 18일 재기포령이 내려지자 수만의 동학군이 모여 항쟁을 결의하였다. 이렇게 충청북도는 동학혁명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북접 동학군의 주력이 최후의 큰 희생을 치른 비극의 땅이다. 즉, 동학혁명의 시작과 끝이 있었던 중심지였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