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48] [다시개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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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과연 35년이라는 일제의 강점을 경험한 한국 사회와 문학에서 탈식민의 시기는 언제 어떤 방식으로 종막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한편으로 필자는 수사학적인 과장법을 사용하여, 그것은 한국 사회가 일본보다 확실히 나아 보이는 여러 국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바로 지금, 그러한 ‘진보’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면서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내재적 능력을 공통의 시험대 위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한국은 다시 한 번 예의 그 ‘예외성’을 나타내면서 제국과 식민지의 ‘구조주의적’ ‘양극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양상을 나타냈다.
때마침 한국은 일본과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부터 촉발된 일종의 경제전쟁을 치르는 와중이었고, 이 때문에 두 나라의 경제적 경쟁력 또는 잠재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2020년 11월-편집자주] 지금은 위안부(일본군 성노예) 운동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들에 대한 논란, 논의도 한창 진행중이기도 하다. 필자는 강제징용 문제와 위안부 문제의 처리 방향을 둘러싼 진통이 향후의 한국 사회의 포스트콜로니얼한 과제 해결뿐 아니라 그 포스트콜로니얼로부터의 탈각의 방향까지도 새롭게 점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제국-식민지 관계를 구조주의적으로 단단히 ‘묶여 있는’ 양극항이라고 보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면 한국이 일본에 비해 아주 우수한 방역 체제를 갖추고 있음이 드러나고,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 언론 통제와 부자유, 일본 국민들의 낡은 수동성과 애국주의 같은 문제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해도 한국은 여전히 포스트콜로니얼한 단계 내에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끝내야 하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단계로서 한국인들의 전도를 가로막는 아포리아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변하지 않는’ 제국-식민지의 위상학을 이제는 새롭게 심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방민호, <한국현대문학의 언어, 그리고 ‘포스트 포스트콜로니얼’>, [다시개벽] 창간호, 134쪽
1.
[책을 열고 닫으며]
한 유튜브가 일제시대 독립군의 후손과 친일파 후손의 현재의 삶의 모습[집]을 대비하며, "독립군이나 독립군의 후손은 그때나 지금이나 게을러서 못 사는 거고, 친일파나 친일파의 후손은은 그때나 지금이나 부지런해서 잘 사는 것이, 사는 집만 보아도 훤히 보인다"는 취지로 발언을 한 일로 공분이 일고 있다.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은 즉각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중이라고 하고, 그에 대해 당사자는 '문제될 것 없다'며 오히려 기고만장하는 듯한 장면들[당사자의 SNS 화면 캡쳐]도 엿보인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면, 우리가 우리 안의 '식민지성'을 털어내는 데는 앞으로도 장구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재확인하게 된다. 그 글[독립군-게으름, 친일파-부지런함]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당사자는 그 전에도 유사한 구설수에 올라 재판(?)에 넘겨져서, 손해배상을 하였으나, 오히려 '후원금'이 더 많이 들어왔다고 자랑질, 염장질을 하기도 했나 보다.
그러나, 그러한 노골적이고 저렴한 행위를 하는 자들은 오히려 "거대한 식민지성의 노예의 몸통"의 극히 일부 말단, 털끝에 지나지 않는다는 막연한 생각,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하루하루다.
2.
위 글을 읽으며, "코로나19 팬데믹은 어쩌면 인류를 역사상 처음으로 명실상부한 '인류'로 거듭나게/발견하게 한 사건"이라고 했던 전날의 내 말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가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라고 하여, '의식주'라고 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필요를 함께 해결해 본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인류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즈음하여 사상 처음으로 '공동의 문제'에 대해, 대응하는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자 나라의 경우와 가난한 나라의 경우, 또 같은 나라 안에서도 부자의 경우와 가난한 사람의 경우[거주지나 의료 지원],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타격에서도 '거리두기'의 피해를 그다지 입지 않는 업종 종사자 / 기업 [그리고 오히려 그 혜택을 보는 업종 종사자 / 기업]과 그 피해와 타격을 직접적으로 입게 되는 업종[ex. 자영업]과 그 종사자 사이의 간극이 엄연히 존재하며, 과연 우리가 '같은 사건'을 '같이 겪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최소한 각 국가별로는 '(거의) 같은 조건'에서 '같은 문제에 대응'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위 글이 지적하는 바 중에 눈에 띄는 대목은 바로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면서 세계 각국은 자신들의 내재적 능력을 공통의 시험대 위에 올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한국은 다시 한 번 예의 그 ‘예외성’을 나타내면서 제국과 식민지의 ‘구조주의적’ ‘양극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양상을 나타냈다."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근대 이후 처음으로, 선진국과 (거의) 나란한 '새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 나온 지 꽤 시간이 경과하고 2권[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까지 나온 마당이지만, 다음 책을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당면한 문제인 코로나19 팬데믹 종식을 위해 노력하면서 [국내적으로나 범 인류적인 협력 체제상으로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우리 나라[사회]가 한 걸음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의 위기나 머뭇거림을 기회로, "앞으로 치고 나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 세계의 미래를, 우리 민족의 "홍익인간 재세이화" "보국안민 포덕광제"의 이상에 걸맞은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기회로 삼자는 말이다.
다시개벽의 꿈은 바로 그것이다.
나와 우리, 그리고 세계의 다시개벽, 대 전환 말이다.
[다시개벽]을 읽으면 좋은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