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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an 30. 2021

다시, 우금치를 넘어서

[개벽통문-153]


조심스러운 가설 하나를 제기한다. 동학의 개벽운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마지막 고비였던 '우금치를 넘어' 한양으로 직향하며, 권귀[=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그때 그곳에서 결판난 일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계속되는 과업이라는 것이다. 

동학은 창도 이래로 주류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이단시+불온시 되다가, 마침내는 나라(왕조)에 반역[反逆]으로 비칠 것이 분명한(!) 무장봉기[=동학혁명]를 통해 돌아올 수 없는 고개를 넘어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의 고개를 넘고, 마지막 고개 - 우금치에 앞에서, 그 시도는 좌절되고 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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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참으로 극적으로, 손병희는 그 고개를 다시 넘어와 '천도교'라는 '근대종교'의 틀로 동학을 탈바꿈하며,  동학혁명으로부터 20년 만인 1915년경부터 천도교는 조선 최대의 단체[종교단체=유사종교]가 되었다. 1905년경부터 1910년 전후 사이에 손병희를 중심으로 내놓은 '천도교의 제도적 틀[=천도교대헌]'을 보면, 확실히 손병희는 천도교를 대안적인 정부[조선왕조를 대신하여, 일제의 협상-대응 상대로서 한민족을 대변하는 국가적 단체]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복안 속에서 천도교는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그 시기 기독교 세력의 최대 10배[300만]에서 최소 5배[150만]의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 힘으로 천도교는 조선사회의 전통적인 여론 독점층인 귀족이나 명망가가 거의 한 사람도 포함되지 않았음에도, 기독교 세력, 불교 세력과 학생 세력을 연대하여 3.1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당시 전체 인구(1600만명?)의 10%~20%가 천도교인이었던 셈] 그 실질에 있어서 3.1운동은 일제로부터의 자주독립의 쟁취라는 "국가적 혁명"과 동학-천도교 중심의 주도세력 교체라는 "사회적 운동"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그 한계를 뚜렷이 드러낸 근대문명을 넘어서는 '개벽문명'을 향한 주체의 형성이라는 "문명적 개벽"이라는 3중 구조를 가진 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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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좀더 긴 역사 안목으로 볼 때, 3.1운동이 좌절되면서, 천도교의 그러한 최전성기[교도의 숫자상]에는 물론이고, 실질적으로 천도교가 이 사회의 주류가 되었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 '오늘 아침 새삼스럽게' 인식된다. 사실, 한 사회의 '주류'로서 (안정적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은 '혁명'을 성공한다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최근 한겨레신문의 소장 기자들이 한겨레신문의 올바른 스탠스는 '권력'인 '현정부를 비판'하는 것이라면서, 그 점에 있어서 미온적이라고 여겨지는 '86그룹 중심'의 선배세대에 '칼날스런' 비판 성명을 내면서 집단적인 반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그 '치기(稚氣)'가 한편으로 이해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가여울 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그들은' 얼마나 비웃고 있을까? 현재의 집권세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왔으며, 촛불혁명의 시민/인민들의 힘으로 집권하였으며,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2/3에 달하는 국회의원을 확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전한 집권 세력'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현 집권세력의 무능함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 관념에서 보면 '윤석렬'이라는 인물은 그 스스로는 '충심'을 다하는 인물일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검찰권력'을 매개로 하여, 완강한 "저들 - 지난 200년간의 실질적 집권 세력"의 꼭두각시 놀음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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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이후 '동학-천도교'의 운동전통을 계승하고, 그때까지 온축된 천도교단의 운동역량을 발휘하는 책임과 권한을 짊어진 천도교청년들은 천도교청년당(->청우당)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운동의 전개, 즉 민족운동에서의 주도권 확보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은 사실, '운동판에서의 주도권 싸움'이기보다는 조선조 이래로 강고하게 자리잡은 '권력자(양반/친일/관료/권문세가)' '지식(서양-선교사/학벌)'인' '부자' 중심의 사회구조를 근저에서부터 뒤집어서, '동학-개벽파'가 주도하는 사회-운동(민족독립->근대민족국가수립)의 틀을 짜서 국가혁명, 사회운동, 문명개벽을 완수하겠다/그것을 향해 가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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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코로나19정국에서 1년 내내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K-방역의 역사를 써 나가고 있는] 와중에서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기독교계 구석구석'의 강고한 조직(다양한)들의 뿌리-깊고 긴 선교활동의 행태들은 사실 일제강점기 - 분단기 - 전쟁기 (이북의 기독교 세력 월남) - 미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수입기 - 산업화기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핵심 주류와 때로 결합하고, 때로 그중 일부를 물갈이하며 그 어떤 세력보다 강고하게 자리 잡아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들로서는 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자기들이 해 오던 행태(집합 예배나 사기적 선교 활동 등)를 고수하는 것은, 지금 "흔들리는 것이 확실한" 자기들의 위상과 기반을 수호하는 '절체절명'의 과업이기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그야말로 (하나님보다 소중한 기득권 수호를 위해) 목숨 걸고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독립된 인격주체로서보다, 최소 200간 고수해 온 권력집단의 한 세포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하나하나는 거대한 '군대'의 일개 '병졸'과 같은 기능으로, "권력핵심부--이것이 뚜렷한 실체를 가진 조직이 아니라 하더라도 본능적으로 작동하는 집단적 기능기구로서--가 두는 장기판의 졸"로서, 기득권, 기존의 행태를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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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철인왕후'라는 '가상역사극'의 무대[시간적 공간적]가 되고 있는 철종연간의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는 '철종'이라는 형식적인 권력과 안동김씨[김좌근]라는 실질적인 권력으로 이원화되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가운데 유지되었었다는 분석을 보았다. 그런 점에서 일제강점기 및 이후, 혹은 6.25 이후의 우리 사회는 친일파->친서구파[=친미+기독교 기반]로 이어져 온 주류세력에 박정희 이래의 군부, 그리고 그와 결탁한 자본[여기에는 친일+친미 기반으로 성장해 온 자본도 있고, 자수성가형 자본도 있으나, 결국 결과적으로는 조선 후기 이래로 동학 중심의 민중들과 대척점에 서 있었던 세력으로 귀착, 귀결, 귀순하면서 그 몸집을 불려온 세력]이 주류를 이루어서 여전히 우리 사회의 다수의 권력[=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질적인]을 장악하고 있는 구조이다. 거기에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물위의 기름처럼 떠 있으며, '촛불혁명'의 세력은 (저들만의) 권력의 핵심을 꿰뚫어 혁파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 속으로 진입하려는 그룹[부자되리라!!! - 흔들림 없는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매김되기 위해 애쓰는 민주당 내부의 적폐화 과정=여기서 '흔들림 없는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것은 국회의원 신분을 갖는 것과 절대적으로 연계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그 권력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세력[대안적인 삶, 귀농귀촌, 그들만의 시민운동 등등] 등으로, 실질적으로는 단일 대오를 형성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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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개벽파[자생적, 자주적, 생명적, 공생적 시민-인민-만물]가 이 세상의 주류가 될 수 있을까? "다시개벽"에서는 이 일을 '동학-개벽 세력의 초심을 회복'하는 일과, 현재의 최신의 세계적 담론과의 창조적 조화로써 해 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시 말해 한편으로, 동학[개벽] 고유의 정서와 담론을 발굴, 계승, 창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이 주류-서구-최신 담론과의 대화와 학습[수용]과 전파[개벽담론의 전파]를 병행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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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다시개벽]은 한편으로는 그러한 160여년 전 동학 창도 이래의  주류의 전환이라는 내적이며-근본적인 과제를 위한 "개벽파"의 재발견을 도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전망, 즉 지구인문학적인 도전으로서의 '다시 개벽'을 지향하는 사상적 플랫폼, 문명적 플랫폼을 지향한다. 여러분들의 동참[정기구독부터]을 기다린다. 이 일이야말로, 이 시대에 "우금치를 넘어" 한양성을 접수하고, 이 파렴치하고[=염치 없음], 패륜적인[천지부모를 업신여기고 직접적으로 해코지 함] 근대문명을 진압하는 '개벽군'의 행렬에 동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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