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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걸음 Jul 16. 2021

개인-사회, 살과 뼈를 갈아넣어?

[잠깐독서-061] - 이찬수, 사회는 왜 아픈가

1.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는 평생에 하지 못할 경험을 여럿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적으로는 '비대면 화상수업'이나 '화상회의'가 어느 틈엔가 일상적인 풍경으로 자리매김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지금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전환의 거대한 터널은 어쩌면 앞으로 5년 또는 10년쯤이 지나야 비로소 그 모습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주밖'이란 상상할 수 없듯이,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시공간의 전체상은 당대의 우리 자신은 결코 온전히 규명하지 못할 테니까.


2. 코로나19라는 전국가적(전세계적이라는 건, 현재로서는 '전국가적' 규모가 세계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듯) 차원의 재앙에 즈음하여 '국가'의 위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른바 K-방역을 고리로 하여 선진국의 대열에 좀더 깊숙이 자리매김하게 되었고, 국가(지도자)의 스탠스에 따라 국가별 희비 곡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만 보아도 이를 알 수 있다. 이때 국가란 한편으로는 '정부(정권)'이라는 한정적인 시기의 특정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체계를 지칭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각 국가별 정치경제 체제나 문화적 풍토(ex.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의 정도 등)를 포함하는 종합적인 차원의 '국가체제(영토,국민,주권)'를 지칭할 수도 있다.


3. 코로나19는 전국가적 규모의 대재앙이지만, 국가권력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위상과 권력이 그 어느 경우보다 강화되는 계기라고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방역과 동선 추적 등의 시스템화 등을 두고 '전체주의'의 귀환이라든지, '빅브러더'의 현실화를 우려하는 일각의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그 어느 때보다  요구하는 현재의 분위기에서, 책임과 역할에 대한 요구는 반사적으로 국가의 권력과 위상을 그만큼 높이게 된다는 역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 사회(지구)의 권력은 압도적으로 FAA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 


4.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사회는 부동산의 경이적인 폭등에 따른 좌절과 환호(?), 자영업자의 통곡과 '배달의 환호(!)' 등이 무질서한 가운데 새로운 질서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 한때 우리 사회는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어 '직장'(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사회 분위기의 대종을 이루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7, 80년대의 '고도성장기'가 그 시기와 맞물리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대부분의 '개인'들이 그러한 "회사를 가정처럼'이라는 구호를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할 만큼 충분히 '개인주의화'하여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로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정과 관련한 TV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는 것(집구하기나, 집정리하기, 쿡방과 그 온갖 변형)은 이러한 세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러면, 우리는 이 사회(직장, 직업(창업, 자영업), 기업)으로부터 해방되었는가. 물어보나 마나, 네버!!  


5. 오늘의 이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사회라는 맷돌 속에서 갈리고 갈려서 '국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중이다. "칸트에 의하면, 사회(Gesellschaft)sms 자유로운 인격적 존재자들이 외부적 자유의 원리에 기초해 인격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공동체(Gemeinschaft)다."(5쪽) "그래도 현실에서 사회는 법적 정신이나 원칙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격들의 집단이라지만 현실은 도리어 교모하게 자유를 억압하며 집단적 질서 안에 인격을 속박시키는 모슨으로 이어진다. 아픔은 계속되고, 비명이 연일 들려오는 이유도 잘 해명되지 않는다." 


6. 물질적인 풍요가 더할 수 없이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그리고 3분배달, 5분배달이 일상화되는 '황제적 복지'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사회 속의 개개인들이 여전히 '아픔'을 호소하는 까닭은 "일단 자기 생존과 확장을 위한 욕망의 문제를 거론할 수 있다"(5-6쪽)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그 '욕망'은 (개개인이 착각하듯이) '개인의 욕망'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강요된 욕망이기 십상이다. "신자유주의가 성과의 축적을 찬양하는 경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성과를 낳기 위한 욕망은 물건이든 돈이든 일종의 '자본'을 확장시키는 근본 동력이 된다. 사회가 왜 아픈지에 하려면 경제의 문제도 되물어야 한다는 뜻이다."(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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