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062] 김재형 역해, 동학의 천지마음(해월신사법설)
1. 이 시대만큼 '천지인의 조화'가 소중히 다가오는 때는 없었습니다. 이는 인간이 자기 존재를 인식하는 경우와도 같습니다. 인간의 자기인식은 평상시보다는 '병들었을 때' 비로소 실존적으로 다가옵니다. 일시적인 '병-고통'의 경우도 마찬가지고, 노환-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캐나다의 폭염으로 인한 사망, 유럽의 폭우로 인한 사망, 코로나19팬데믹으로 인한 사망(육체적 사망은 물론이고, 심리적이고 경제적인 사망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이 천지인 조화의 상실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2. 지금 세상 사람들이 '천지인'의 조화를 소중히 느끼는 것, 장마 때에 장맛비만큼의 비가 오고, 더울 때 더울 만큼 덮고, 시원할 때 시원할 만큼 시원하고, 가끔은 소낙비.... 이러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잃어버린 지금에서야, 우리는 그 '당연'과 '자연'이 '그저 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절감하게 됩니다.
3. 수운에서 해월로, 그리고 의암으로 이어지는 동학-천도교에서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은 바로, '당연'과 '자연'이 바로 '천연(天然)' 즉 한울님 조화[天主造化]의 자취라는 것을 밝힌 것이고, 그러므로 그 천연, 즉 한울님조화라는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울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이란, 길을 걸을 때조차 땅을 울리지 아니하는 '조신(調身)'과 '조심(調心)'과 '조용(調用)'의 행보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 특히 "동학의 천지마음"이 그려내고 있는 해월 선생의 법설 가운데서 해월은 "땅 아끼기를 어머님 살같이 하라"고 하신 뜻이 바로 여기쯤에 있습니다. '동학의 천지마음'이라는 제목은 이 책(해월신사법설 역해)의 역해자 김재형 선생님의 작명입니다. 동학의 마음이자, 해월의 마음이자, 한울님, 즉 천지부모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제목이기도 합니다.
5. 이 책은 "해월신사법설"을 쉬운 우리 말로 풀이한 글이면서, 사실은 해월 선생과 김재형 님의 대화록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그만큼, 잘된 번역이라는 뜻도 되고,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역자의 마음이 묻어나는 글 모음이기도 하다는 뜻도 됩니다. 무엇보다, 오늘, 하늘도 땅도 사람도 만물도 다 편치 못한 이 위기의 시대에, "내 마음이 편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지의 마음이 편안해지기를 도모하는, 즉 기도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어요?
해월 선생님은 자신의 공식 직함을 ‘북접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수운 선생님 살아 계실 때 당신(수운)께서는 남쪽인 경주 주변을 맡아 포덕(진리를 널리 알리는 일)하고, 제자인 해월 선생님께는 경주 북쪽 지역을 맡아서 포덕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내려주신 지위입니다. (중략)
북(北)이라는 말은 정말 무슨 말일까요? 흔히 이해하는 북쪽이라는 방향의 의미만 있을까요? 중국 사람들은 북이라는 말에서 패배를 떠올린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패배(敗北)라는 말에 북(北) 글자가 들어가는 이유가 중국 북쪽의 티벳, 몽골, 만주 지역과 늘 대립하며 살아야 했던 오랜 역사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인이 ‘북(北)’이라는 말을 들으면 북측 조선 사회의 부정적인 모습이 떠오르기 쉽습니다. 그나마 문재인·김정은 두 지도자의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는 북측 조선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해월 선생님 당시의 조선 사회는 남북으로 분열되지 않았던 사회여서 지금 한국인이 느끼는 북의 개념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북(北)은 어떤 의미로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주제였을지를 생각해 보면 됩니다.
첫 번째 떠오르는 것은 북극성과 북두칠성입니다. 변함없는 방향의 지표 북극성, 그리고 북극성 주위를 돌며 우리에게 깊은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북두칠성. 늘 먼 길을 갈 때 밤을 이용해서 움직여야 했던 해월 선생님에게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내가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하는 기본적인 지표가 되었을 겁니다. 북극성과 북두칠성은 인간의 내면에 깊이 잠재된 마음의 고향 같은 별입니다. 불교가 한반도에서 토착화되는 과정에 북극성과 북두칠성을 모시는 칠성(七星)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은 아무것도 의지할 데가 없어지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북두칠성을 향해 손을 모았습니다. 부처와 예수가 이 땅에 오기 전부터, 인류의 기원 당시부터 시작된 신앙입니다. 절마다 있는 칠성각은 한반도의 오래된 동아시아 하늘 신앙을 받아들인 흔적입니다. 어쩌면 해월 선생님께서 자신의 지위에서 포기하지 않았던 북접주인이라는 개념은 외형적으로는 수운 선생님과 이어진 고리이지만 내면의 무의식으로는 인류의 오래된 마음과 이어진 고리인지도 모릅니다. (본문 - 들어가며 중에서, 17~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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