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통문-189] 함께 이 길을 가시겠어요?
천도교를 40년쯤 한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 수 있는, 현대 천도교의 현상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1. 천도교(동학)는 이른바 한국의 자생종교이고, 동학 이래 수많은 신종교들이 생겨난, 그 원조격의 종교이다. 한때는 '민족종교'로도 불릴 만큼, 한민족 고유의 심성 내지 '전통적 사상'과도 친밀하다. 또 동학으로부터 파생하거나, 혹은 동학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생한 종교들도 많다 보니, 동학(천도교)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듯하다.'
2.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천도교'라고 말하면 "아직도 천도교가 있어요?"라거나 "아! 동학! ... 그 전봉준...."이라거나 "천주교?"라는 반응을 보이지만, 또 천도교 안에 있어 보면, '천도교에 대해서 알고, 천도교를 하겠다고 찾아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가 하면 '동학'(농민혁명)이나 '동학'(사상, 생명사상) 또는 수운 최제우와 해월, 그리고 인내천, 사인여천 등에 대한 학계의 연구도 적지 않은 편이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동학박사'만 해도 수십 명이 족히 넘는다['동학을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분]. 그리고 그들 중 '천도교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천도교인이면서 '동학-천도교'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열 손가락을 꼽지 못한다] 이 야기기는 그 '의외로 많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3. '학위 소지' 여부에 상관 없이 '동학'을 말하고 나아가 때로는 '천도교'를 말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대개가 '동학사상'에 대하여 '박사'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여러 신종교를 떠돌다가, 혹은 동학에 관한 책 몇 권을 읽고, 혹은 천도교에 관한 강좌를 듣고 천도교 주변을 오가다가 (입교를 하기도 하지만) 곧 '동학-천도교' 박사로서의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들은 대체로 천도교인의 무지와 무능을 비판하면서, 천도교인들을 가르치(려 들)기 시작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의 할아버지쯤이 의암 성사 등과 교분이나 인연이 있었음을 내세우는 사람도 간 혹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충심(?)을 다해 천도교(인)를 가르쳐서, 침체한 교세를 살려 내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는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천도교인들을 비난하거나, 안타까워(?)하면서, 발길을 끊곤 한다.
4. 한국의 종교 중에서 이마만큼, 교인이 아닌 학자가 그 교단의 역사나 철학(사상)에 대해서 '박사(석사)논문' 또는 '학술논문'이 양산되고, 또는 교단, 교인들 근처에 접근하자마자 두세, 서너달쯤의 탐색기를 거쳐서 곧 기존의 교인들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많은 종교가 있을까?(몰라서 물어보는 것).. 물론 '종교학'의 관점에서 불교도가 아닌 '불교학자', 기독교인이 아닌 기독교학자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동학-천도교에 관한 경우와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이건 순전히 추측이다).
5. 이러한 경향이 생기는 까닭은 동학과 천도교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 완전한 별종은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다고 보는 일반적인 경향이 크게 영향을 끼쳤을 터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동학'은 좋아하지만 '천도교'는 좋아하지 않는다거나, '동학'은 옳지만 '천도교'는 틀렸다는 식의 말을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동학'의 이름을 빌려 '천도교'의 잘못을 바로잡고, 바로잡기 위해서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천도교인으로서의 입문에 별다른 제약이 없고, 입문절차(교리학습과정)이 없으며, 권위있는 성직자가 따로 있지 않고 누구나 교리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자유로운(?) 교단 풍토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다른 종교 집단에서 보면, 콩가루 집안 같은 종교 체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6.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김지하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동학의 사상을 현대적인 사상 조유와 접목하여,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사상적 경향(생명사상, 삼경사상 등)과 관련 지어 이야기한 흐름이, 오늘날 지구적 전환기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꼽을 수 있다. 사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그것의 전모를 그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잘 알기가 어렵다. '나는 내가 잘 알아!'라고 생각하고 강조하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더 잘 꿰뚫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다른 사람'이 당사자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려 하거나 '그 당사자'의 정체성을 '바로잡으려(?)' 드는 것 만큼 무모하고, 폭력적이고, 웃기는 일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7.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이것 또한 가설적인 수준이지만) 천도교는 한때 300만 교도를 자랑할 만큼 한국 사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점한 단체(종교, 사회, 정치 면에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1/100도 되지 않을 만큼 세력과 영향력이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학-천도교가 전개해 온 한국사의 흐름, 즉 동학혁명, 3.1운동, 신문화운동, 통일운동은 여전히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국가적, 시민사회적 운동 과제이며, 뿐만 아니라, 지구적 전환, 기후위기 시대에 즈음하여 동학의 생명평화사상이 현재적, 미래적 대안으로까지 주목받고 있다는 점 때문에, '동학-천도교 박사'들의 종횡무진(?) 활약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8.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천도교는 이론만이 아니라 신념이기도 하며' '천도교(천도교)는 사상적(철학적, 교리적) 공동체만이 아니라 생활 공동체 이기도 하며' '동학(천도교)는 수운-해월-의암의 일방적인 교설을 추앙하는 religion적 종교가 아니라, 天師문답과 師弟문답의 전통, 피와 눈물, 헌신과 헌성의 역사의 총체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160년 동안의 동학-천도교인들의 피와 눈물을 언급하지 않고, 오로지 시천주, 사인여천, 인내천, 이천식천, 삼경만을 추앙한다는 것은, 사이코패스적 접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9. 주체적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이러한 동학-천도교의 풍토(안팎에 걸쳐)를 조성한 것은 천도교인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지난 100여년의 천도교단사를 보면, 천도교가 쇠락하게 된 핵심 내적 원인은 '박사 부족'을 들 수 있다. 그 박사를 '성직자'라는 인간적 차원에서 말할 수도 있고, (천도교)대학이라는 제도적 차원에서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오히려 '천도교(동학) 박사'보다 필요한 것은, '넘쳐나는 천도교(동학) 대신, 천도교를 감싸안고, 묵묵히 '천도'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이다. ... 총총 無往不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