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더치라떼를 한두 잔씩 마신다. 퇴근하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차가운 커피와 우유를 섞어서 한 모금 마시고 잠깐 소파에 파묻혀 있는게 습관이다. 가끔 학교에서도 마시고 싶다는 욕망이 격렬하게 치솟지만 꾹 참는다. 퇴근 후에 느끼는 나만의 작은 감흥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한식을 좋아하는데 외국 여행을 가면 절대 한식을 먹지 않는다. 3주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반드시 고비가 오지만 역시 참는다. 엄마가 만든 김치, 집에서 먹는 청국장, 자주 가는 칼국수집을 떠올리면 고통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즐겁다. 누군가 널린 게 한식집인데 왜 그리 참냐고 물어봤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는 음식의 이데아가 있어. 모조품들 따위로 훼손하지 않을거야.'...내게는 '일요일컵'이란 것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크고 빨간 머그잔인데 나만의 컵이고, 일요일에만 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토요일이지만 '토요일컵'은 필요없다. 아쉬운 일요일에 그 컵을 써야 주말이 온전히 완성되는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면 나는 이런 식으로 소소하지만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것들, 내 감정과 상태를 유지해왔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익숙하다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애정과 습관을 남용하지 않고, 욕심부리고 싶을 때 절제한다. 물론 늘 그래왔던 건 아니다. 만약 내게 ‘시간에 비례해 늘어나고 있는 지혜’란게 있다면 그건 이런 작은 태도와 습관들이다.
그럼에도 모든 사랑을 지키는 건 내 능력 밖이다. 요즘 나는 순댓국에 대한 내 사랑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느끼고 있다. 내가 순댓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어린 시절 할머니네 집에서의 즐거웠던 추억이 크게 작용한다. 추억은 옅어져 가는데, 주위에 순대국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 늘 혼자고, 최근 순댓국집에 들를 때마다 맛에서 번번이 실패해 좋은 기억을 만들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순댓국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채로 사랑이 끝난 것 같다.
얼마 전 리뷰한 소설 ‘스토너’에 이런 문장이 있다.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p.274)”He began to know that it was neither a state of grace nor an illusion; he saw it as a human act of becoming, a condition that was invented and modified moment by moment and day by day, by the will and the intelligence and the heart."
어떤 사랑은 시간의 흐름 속에 강건해지고 어떤 사랑은 옅어지다 결국 스러지고 만다. 정말로 사랑은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이다. 나는 살면서 모든 사랑을 지키지는 못했고, 앞으로도 많은 것을 잃게 될거다. 하지만 사랑이 은총이나 환상이 아닌, 창조와 수정의 과정이란 걸 이해하는 내 삶은 그 자체로 행운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