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Coco, 영어 수업 후기

2018. 6. 23

by 김현희

1. 선정



영화 Coco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실제 멕시코 전통인 죽은 자의 날(The Day of the Dead)을 소재로 한다. 평소 한국 학생들은 대중문화를 통해 특정 서구 문화에만 익숙해지는 경향이 있어 다양성 측면에서 귀한 자료가 되리라 생각했다. 영화의 메시지도 따뜻하다. 주제곡 ‘Remember me’은 곡 자체도 훌륭하고, 따라 부르며 익히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등장인물들이 쓰는 언어는 '소위' 표준 영어(Standard English)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라틴 억양이 살아있다. 공립 초등학교에서 텍스트로 사용하기에 적절하고 국제 언어로서의 영어의 정체성을 환기하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2. 실행



주당 3시간 수업 중 2시간을 영화로 수업했다. (나머지 한 시간은 원어민과 교과서 주제로 협력 수업을 함) 영화 수업 첫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늘 수업 도입부에 주제곡 ‘Remember me’를 불렀다. 단어 뜻을 정리하고, 읽고, 써보는 활동도 병행했다. 학생들은 이 노래를 굉장히 좋아해 영어실 뿐만 아니라 교실, 복도에서도 자주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특정 장면들을 선정해 집중적으로 영어 표현을 공부했다. 학생들이 좋아하거나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장면을 주로 골랐고, 내가 좋아하는 장면을 선택하기도 했다. 많은 학생들이 주인공 미겔(Miguel)의 할머니가 기타를 부수는 장면을 좋아했다. 그 장면에 ‘No guitar, No music!’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교과서 한 단원의 주제가 허락을 구하는 표현 ‘May I~’이었는데, 격식 없이 많이 쓰는 ‘Can I~’ 표현을 영화 장면들과 연결지어 집중적으로 익히기도 했다. 또 평소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거 시제 표현을 영화 장면과 연결해 공부했다.



막바지에는 멕시코 문화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에 대한 수업을 했다. 짧은 동영상을 시청하고 새로 배우는 단어들을 정리했다.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간단히 알아보고, 프리다 칼로처럼 자화상을 그려보는 활동도 했다. 프리다 칼로가 본인을 표현한 방식에 영감을 받았는지 많은 학생들도 다소 초현실주의적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실제 프리다 칼로는 자신을 초현실주의 화가라 명명하는 걸 싫어했다) 특히 한 여학생이 그린 자신의 뒷모습 자화상은 놀라웠고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수행평가는 ‘Remember me’ 노래하기, 노래 들으며 가사 쓰기, 멕시코 문화 조사 학습으로 했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의 빈칸을 채우는 평가는 초등학생들은 처음 해보는 형태라 며칠 간격을 두고 두 번 시행했다. 거의 두 달간 늘 불렀기 때문인지 성취도는 매우 높았다. 멕시코 문화 조사 학습은 과제를 내기 전 영어 검색어를 이용해 자료를 조사하는 법을 안내했다. 많은 학생들이 예상보다 알차게 조사를 수행했지만 몇 몇 학생들은 어려웠는지 한글로 조사 해오기도 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에는 각자 좋아하는 그림을 골라서 색을 칠해 표지로 하고 그동안 공부한 학습지를 모아 정리해 묶었다.



3. 문학적 상상력



학생들은 주인공 미겔(Miguel)의 성품과 그가 처한 상황에 깊게 몰입했다. 미겔이 위험에 처할 때 응원하며 발을 동동 굴렀고, 미겔의 개 ‘단테’를 매우 사랑했으며, 미겔과 함께 웃고, 몇 몇 장면에서는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울기도 했다. 학생들은 여러 번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선생님, 멕시코에 정말 미겔이 살아요? 실존 인물이에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왜인지 뜨거워졌고 학생들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나도 어릴 때 내가 좋아하는 소설과 영화 속 인물들이 어딘가에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과 공상에 자주 사로 잡혔기 때문이다.



인간은 평등하며 국적, 인종, 성적 지향 등에 관계없이 존중받아야 하지만 보이거나 혹은 보이지 않는 차별과 배제의 벽에 둘러싸인 현실은 녹록치 않다. 구조와 인식의 즉각적인 개선을 요구하는 구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누스바움이 강조했듯) 인간이 세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타인의 삶에 대한 상상력을 풍부히 발휘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으로서만 실현할 수 있다. 교사와 교육은 이 과정에서 지대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어떤 당위적 구호의 주입보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나와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나와 다른 언어를 쓰는 미겔에게 몰입해 그의 삶을 경험한 과정이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무조건 선하기만 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앞에 있는 천사처럼 빛나는 얼굴을 한 학생들도 언젠가는 삶의 국면에서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고, 이질적인 문화를 폄하 배척하고, 타인을 짓밟고 지배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일 때가 올 수 있다. 그 때 학생들이 안간힘을 쓰며 균형을 잡는 과정에서 우리가 영화를 주제로 나눴던 정신적 교감과 대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4. 수업 전문성: 기술과 이해



최근 한 선생님께서 내게 유한구 교수의 논문을 보내주셨다. 제목은 ‘수업 전문성의 두 측면: 기술과 이해’이다. 현재의 내 상황 내지 고민들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아 재미있게 읽었다.


“암기가 언설의 수준이 아닌 이해의 수준을 겨냥하는 한, 암기위주 교육은 그다지 그릇된 교육의 실제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13쪽)


사실 나는 학생들이 영어 단어와 문장을 익히고, 철자를 연습해 쓰기 시험을 보는 등의 과정에서 매 순간 조금은 망설였고 늘 내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능 위주의 언어 교육을 탈피하고자 계획한 내 수업은 과연 종래의, 내가 비판하는 기능 위주 언어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는가? 타인의 생각과 경험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외국어 교육의 틀을 공교육 현장에서 깨는 일이 얼마만큼 가능한가? 누구나 암기식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암기활동이 없는 외국어 공교육이 가능한가? 외국 문화 수업이 오히려 학생들이 특정 문화를 해석하는 한계와 틀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13쪽)“이해로서의 수업 전문성은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하여 교과를 가르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수업이 학생들의 심성함양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책감을 가지도록 하는 방식으로-다시 말하여, 자신의 수업이 암기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하는 방식으로-수업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수업이 교과교육의 가능성과 위험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임을, 그리고 수업 전문성은 이 균형을 유지하는 교사의 능력으로 정의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유한구 교수의 글은 내게 묘한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 너무나 엄중한 무게로 다가왔다. 그의 글은 “교과 교육의 가능성과 위험” 사이의 끝없는 긴장과 균형을 이루려는 자세, 그 자체를 촉구하고 있으며 이는 마치 나를 포함한 수많은 교사들의 지난한 앞날을 향한 예언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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