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화 영어 수업 입문기

by 김현희

사방의 벽, 탈전문화 그리고 단절


영어 교과를 맡은 처음 몇 해동안 나는 내가 능력 있는 초등교사라고 자신했었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을 즐거워했다. 교과서대로만 수업을 해도 충분했지만 이에 더해 새롭고 다양한 수업 자료는 인디스쿨(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와르르 웃고, 영어 시간이 재밌다고 말해도 언젠가부터 나는 점점 수업 시간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나는 교육자가 아니라 쇼호스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티브이에 나와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소개하고 직접 시연해 보이는 쇼호스트 말이다. 주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 전국의 부지런한 교사들이 미리 만들어놓는 각종 화려한 활동들을 단순히 실행하는 일을 교육 전문성이라고 볼 수 있을지 회의가 밀려왔다. 매 차시 수업마다 영상을 통해 원어민들의 짧은 대화를 듣고, 원어민의 말과 글을 따라 말하거나 읽고, 재미있는 활동이나 경쟁적 게임으로 수업을 마무리하는 건 표준적인 수업 패턴이다. 아이들은 자주 언어 학습이 아니라 경쟁 그 자체에 몰입했고, 겉으로는 즐겁고 활기찬 수업이었지만 적어도 내 영혼만큼은 메말라 갔다.

학생들과 나 사이에 거대한 벽이 느껴지기도 했다. 학생들은 국어 시간에 각종 비유적 표현을 쓰고, 사회 시간에 정치와 경제 발전에 대해 공부하고, 과학 시간에 식물의 구조와 기능을 말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이 영어 시간에는 "What's your favorite season?" - "My favorite season is summer"처럼 극도로 단순한 표현들을 반복하는 상황도 나로선 고역이었다. 13살의 인지능력을 5살 수준으로 강등하는 과정에서 생긴 갭을 흥미 위주의 게임과 활동으로 채우며 어르고, 달래는 건 기만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실제 대다수 초등학생들은 영어 시간을 '게임'을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언어 학습과정이 마냥 즐겁고, 가벼워야 한다는 그릇되고 경박한 사고를 주입하는 격이다.

결국 미리 만들어진 교재와 교육과정, 교육 자료들은 나를 요란한 빈수레 같은 쇼호스트의 길로, 탈전문화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쇼호스트라는 직업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전문성의 척도인 자율과 책임의 궤도에서 내가 점점 이탈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아이들의 인지 수준과 괴리된 언어 교육, 상황과 맥락이 부재한 채 반복 학습과 흥미 위주로만 끌어가는 수업 속에서 나와 학생들 사이에 좁힐 수 없는 거리가 형성됐다. 올바르고 깨끗하지만 누구의 것도 아닌 죽은 언어들은 나와 학생들 사이의 대화를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벽을 세우고 있었다. 탈전문화라는 첫 번째 벽은 수직적으로, 학생들과의 단절은 횡적으로 나를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수업의 시작, 의미 있는 지점들


고민 끝에 치밀한 현장조사, 수많은 학술논문 검토, 전문가 인터뷰 등을 통해 영화 수업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나는 그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 아니다). 일단 학교를 옮긴 첫 해 담임을 맡으려다 우연찮게 다시 영어 교과전담이 되었고,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났지만 영어 수업 도중 사방의 벽이 압박하는 듯한 호흡곤란 증상이 찾아왔으며, 마침 우리 지역도 교육청이 제출하던 학기말 시험을 폐지했다. 그때 문득 '영화로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의욕만 앞섰을 뿐 철학과 수업 기술이랄 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지금도 영화를 통한 영어수업을 코로나 상황을 경유하며 겨우 2-3년째 시행하는 중이라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럼에도 내 실제 경험에 기반해 영화 영어 수업의 의미 있는 지점들을 짚어가고 있다.

일단 영화 영어 수업의 가장 큰 장점은 진공, 멸균 상태의 언어가 아닌 실제의 언어를 활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실제의 언어란, 영어권 국가에서 원어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라는 사대주의적이고 단편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황과 맥락, 인물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언어라는 뜻이다. 독일의 교육학자 루돌프 슈타이너는 '아이는 성인의 실제 언어를 만나야 하며, 언어 교육의 원리는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에 크게 동의하는데, 흔히 아이들에게 제시하는 외국어는 짧고, 단순하고, 분절된 형태여야 한다고 보기 쉽지만 사실 인간은 그런 방식으로 언어를 익히지 않는다. 모국어를 익힐 때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주변 어른들의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언어 노출이 필수적이다. 영어를 외국어로서 배우는 EFL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실제적인 언어에의 노출은 분명 중요한 과제이다. 교과서 집필진들도 주어진 조건 아래에서 최선을 다했겠지만 교과서 표현들은 맥락이나 상황이 부자연스럽고, 음성은 로봇처럼 딱딱하고 인위적이며, 지나칠 정도로 분절되어 있다.

아이들이 영화에 느끼는 흥미에 대해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말이면 자체적으로 수업 리뷰를 받는데 거의 모든 학생이 영화 영어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남긴다. 영어 학습 능력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의견이 대다수이지만 사실 교사로서 검증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이들이 영화에 완전히 몰입해 빠져들 때 보이는 얼굴과 표정, 숨결, 열정적으로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에 대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교사로서의 내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인간을 향한 애정이 깊어진다. 인간이 무언가에 몰입할 때의 모습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

문학 작품이 지닌 교육적 가치는 영화를 통해서도 구현할 수 있다. 학생들은 영화에 몰입하면서 영화 속 인물과 자신을 연결 짓는다. 영화 속 대사들은 도식적이고 환원적이라기보다, 소설처럼 맥락 의존적이고 질적인 특징이 있다. 그래서 영화 속의 언어는 학생들의 감정과 상상력을 왕성하게 자극한다. 영화가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방식은 문학작품의 그것과 유사해서 학생들이 영화를 함께 보고, 대사를 공부하고, 영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문학작품을 통해 얻는 효과를 누린다. 즉 마사 누스바움이 '서사적 상상력'이라고 칭한 역량을 영화를 통해서도 기를 수 있다.

영화 속에는 외국어 수업 시간에 활용 가능한 각종 학습자료가 무궁무진하다. 대사, 플롯, 캐릭터, 사회 문화적 환경, 그리고 음악 등이다. 예를 들어 영화 'Coco'를 통해 우리는 멕시코의 문화, 프리다 칼로와 같은 걸출한 예술인에 대한 공부를 했다. 영화 'Sing'을 텍스트로 다룰 때는 인간의 다양한 성격, 직업 등에 관한 표현을 익히고 다양한 노래들을 감상하며 특정 곡을 완전히 익혔다. 특히 영화 음악은 훌륭한 교육자료인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지난 글에서 다루었다. https://brunch.co.kr/@sickalien/354



교사로서 스스로 텍스트를 선정하고,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과정은 포기할 수 없는 즐거움이자 교육 전문성의 중요한 척도다. 하지만 영화 수업을 단지 좋아 보여서, 새로워 보여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무작정 시작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외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나의 지향점, 혹은 내가 절대 피하고 싶은 길, 나와 학생들의 성향과 선호도에 대해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영화 수업을 시작한 후 내 수업의 동기나 저변 철학, 구체적인 방법은 건너뛰고 일단 먼저 학습지나 자료부터 공유해주길 원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종종 난감했다. 섣불리 시도하면 학생 주도적인 활동이 전혀 없는 일방적 강의식 수업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영화 수업의 함정이고 실제 내가 처음에 그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기준과 바람이지만, 영화로 수업을 하고 싶은 교사는 무엇보다 영화를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볼 때 영화에 대한 사랑이 깊은 사람들은 같은 영화를 수십 번 보아도 매번 새로운 발견과 경험을 한다. 그리고 늘 영화 그리고 영화가 묘사하는 인간의 깊이에 대한 '대화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내가 어떻게 영화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적었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건 단 하나다. 깊은 소통에 대한 갈망과 의지.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어쩌면 이것뿐이고 소통에 대한 갈망과 의지가 있다면 영화이든 음악이든, 소설이든 무엇을 통해 교육을 하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참고도서

발도르프 학교 외국어 교육, 에르하르트 달, 푸른나무

시적 정의, 마사 누스바움, 궁리


<교과서와 교육과정에 대한 의견>

교육 비평가들이 동네북처럼 두드리는 획일적인 교과서, 교육과정, 학교 수업환경은 물론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사실 내가 볼 때 그 결과물들 자체가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사람들은 교과서란 일단 지루하고, 뻔하고, 시시할 거라고 본다. 아직도 학생들이 교실에서 'I'm a boy', 'You are a girl'과 같은, 마치 지구에 갓 불시착한 외계인들이나 나눌 법한 괴기스러운 문장들을 외우고 있을 거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내가 볼 때 교과서의 내용량은 적당하고, 디자인은 깔끔하고 컬러풀하며, 제시되는 활동들은 활용도가 높아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한다. 또 적어도 초등학교 교육과정은 철저하게 실생활 영어, 활동 중심 수업에 방점을 찍도록 구성되어 있다. 국가 교육과정의 존폐 논란은 늘 있어왔지만, 사실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살펴보면 현장 교사들에게 굉장히 많은 자유를 준다(오히려 이 자유를 대다수가 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일 정도다). 나는 영어를 처음 가르치거나 기존 교육과정에 반감이 있지 않은 이상, 교과서와 교육과정의 구성과 흐름에 맞추는 수업도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의사소통 중심 접근법에 대한 의견>

제7차 교육과정 이후 2015 개정 교육과정에 이르기까지 영어과 교육과정은 의사소통 중심 접근법(CLT=communicative language teaching)을 근간으로 한다. CLT의 목표는 의사소통능력 신장이며 정확성보다는 유창성을 강조하는 교수법이다. 문법보다는 영어회화 중심 교육이라 생각하면 쉽다. 과거 한국의 영어 교육은 문법 번역 교수법(GTM=grammar translation method) 위주였고, '학교에서 6년 이상 영어를 배웠지만 원어민을 만나면 한 마디도 못하는' 웃지 못할 현실이 사회적으로 큰 비판과 조롱의 대상이 되며 대두된 교수법이라는 맥락도 존재한다.

실생활 회화 중심의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을 신장시키겠다는 목표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는 학습자로서 영어에 익숙해질수록, 또 교육자로서 경험이 쌓일수록 언어를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기능 위주로 분절하는 언어관 및 도구적 언어관에 심각한 회의를 느낀다. 언어는 분절된 상징의 체계적 합, 혹은 소유하고 정복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또 흔히 도구 교과라는 말을 쓰지만, 인간은 언어를 '도구'로서 자유자재로 부린다기보다는 오히려 언어가 인간을 조종하는 것에 가깝다.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가 말했든 '인간이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을 창조'한다고 보는 것이 현실에 가깝다.

왜곡된 언어관의 전파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언어를 인위적이고 의도적으로 목록화해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실제적인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모두가 부르짖는 의사소통 능력 신장을 위해서는 살아있는 언어의 맥락, 영어를 사용한 현실의 의사소통 경험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교육과정과 교실 상황이 내포한 한계는 뚜렷하다. 이는 학교나 교사, 심지어 교육당국만의 문제도 아닌 한국이란 국가의 언어 환경에 관한 근본적 고찰로부터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교육 철학, 바람직한 언어관, 냉철한 현실 인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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