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y Story' 영화 수업 후기

수업은 공동의 텍스트를 만드는 과정

by 김현희

픽사 Pixar 애니메이션의 흔한 별명은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확실히 토이스토리 Toy Story, 업 Up, 코코 Coco,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 소울 Soul 등과 같은 영화가 선사하는 세계관은 깊이 있고, 어른과 아이가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매력도 있다. Toy Story를 텍스트로 선정해 수업을 할 때 물론 학생들은 즐겁게 영화를 감상했지만 영화 'Sing'만큼 열광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재즈풍의 주제곡 ‘You’ve got a friend in me’ 도 작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결과 상대적으로 낮은 선호도를 나타냈다. 내 경우는 다시 봐도 촌스럽게 느껴지는 부분이 거의 없었지만, 일단 영화 자체가 오래된 작품이기 때문에(1편이 1995년도 작이고 학생들은 2009년생임) 학생들 입장에서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한계와 정서적인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이라는 영화 역사상의 가치와 애니메이션이 어린이들의 오락물이라는 편견을 깬 점 등을 제외하고 보면, 나로서도 토이스토리 1편보다는 2,3편이 더 재미있고 2019년작인 4편 역시 기대 이상이었지만, 토이스토리를 전혀 보지 않은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일단 1편을 선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간의 평가대로 토이스토리는 단순한 어린이용 오락 영화가 아니며, 캐릭터를 구성하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도 탁월하다. 언젠가는 버려지게 될 장난감들의 운명과 정체성, 우정, 관계, 성장에 관한 주제들이 무겁지 않지만 세련되게, 후속작으로 갈수록 더욱 넓고 깊게 펼쳐진다. 1편에서 버즈가 자신이 유일한 우주전사 버즈 라이트이어가 아닌 수많은 기성품 장난감의 하나라는 걸 알고 절망하는 장면, 2편에서 우디가 박물관에 '전시되는 삶'과 의미 있는 소수와의 '깊은 관계'라는 선택지에서 고민하는 장면, 3편에서 우디와 앤디의 성장과 이별을 다루는 방식, 아름답고 벅찬 엔딩 장면 등에 대해 나는 대화하고 싶었다. 한편 학생들의 경우 '왜 우디는 저렇게 비열한가', '시드를 소시오패스라고 볼 수 있는가'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는데 나로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지만, 나의 주관적인 해석과 감상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행위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특히 내가 우디와 앤디가 인사하는 3편의 엔딩 장면에서 느낀 감정을 전했을 때 아이들은 '왜 그 장면이 감동적이란 거지?'라고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보였고, 나는 우리 사이의 경험의 낙차와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렸다.

2012년, 휴 잭맨 Hugh Jackman이 장발장을 연기한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 이 개봉했을 때, 내가 그 영화를 꼭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극장에 갔다. 어릴 때 읽었던 소설 레미제라블의 기억을 훼손하지 않고 나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5분가량이 지난 후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해 158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나는 끝없이 울었고, 티슈가 부족해 코가 막혀 컥컥 대는 바람에 함께 온 사람이 (안 보고 싶다고 할 때는 언제고? 라며)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사실 나는 그 뮤지컬 영화 자체는 굉장한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2번째 봤을 때 내린 결론이다). 당시 극장에서 나를 압도했던 건 2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였다. 어린 시절 내가 처음 레미제라블을 읽었던 후로 흐른 시간 말이다. 내가 그날 극장에서 만난 건 휴 잭맨이나 앤 해서웨이와 같은 배우들이 아니라, 두근대는 마음으로 장발장을 응원하던 10살 무렵의 나였고, 레미제라블이라는 작품이 나의 내면에서 함께 자랐다는 절절한 체감이었다.

물론 어린 나도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옥살이를 한 장발장을 깊이 동정하며 연민을 느꼈고 불평등한 사회를 향해 분노했다. 하지만 물건을 훔친 장발장을 벌하기는커녕 은촛대까지 쥐어주며 보낸 신부에 대한 나의 이해는 피상적이었다. 또 한없이 비열하고 악랄하게만 보였던 자베르가 결국은 원칙과 공리에 충실한 평범한 인간이자, 어떻게 보면 한없이 가엾고 앙상한 인물로 보이게 될 날이 올 거라는 걸 어린 시절에는 예측할 수 없었다.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나의 성장 과정이 응집된 형태로 내 몸을 통과하는 느낌이었는데 그 실감은 말로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 자란 성인, 걸핏하면 학교 교실에서 농담을 던지는 선생님이 왜 그저 해피엔딩으로만 보이는 토이스토리 3편을 보고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도 아이들은 아직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토이스토리가 풀어내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일장연설로 풀어 버리는 건 자신도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교실에서 본능적으로 그게 최선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좋은 텍스트는 정답이 아니라 질문과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그리고 내게 수업은 공동의 텍스트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토이스토리'를 소재로 만들어가는 텍스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또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 양생의 과정, 각자의 경험과 세계관, 길을 걷다 만난 우디의 캐리커쳐, 어떤 학생이 20년 뒤에 우연히 'You've got a friend in me'를 듣고 흥얼거리게 될 순간 등을 포함하게 될 것이다.

나는 토이스토리 수업을 통해 감사와 안도를 선물로 받았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품위를 지키고 있는 이 영화가 고맙고, 내가 시간의 흐름 속에 성장을 체감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단지 나이만 먹어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나를 찾아오는 건 안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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