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녀'와 '김치녀'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총체적인 충격을 받았다. 다양하고 포괄적인 여성 비하의 의미와 맥락은 물론이고 한국인들이 거의 매일,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해 먹는 대표적인 전통 음식을 자국의 여성을 모욕하고 조롱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어느 문화권에나 특정 성별과 인종 등을 비하하는 표현이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전통 음식에 빗대 구성원을 모욕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영어에 'cheesy', 'corny'라는 단어가 있는데 진부하고, 구리고, 촌스럽다 등의 뜻이다. 얼핏 보면 치즈나 옥수수와 관련되었을 것 같지만 어원을 살펴보면 음식과 상관이 없고, 실제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이 이 단어에서 치즈나 옥수수를 떠올리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된장녀, 김치녀 외에도 특정 지역인을 비하하기 위해 홍어와 같은 음식명을 사용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음식으로 대표되는 한국 전통문화의 고유한 우수성을 강박에 가까울 만큼 외국에 알리고 싶어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자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과 감정은 꽤 복잡하다. 얼핏 보면 한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것 같다. 많은 한국인들이 ‘전통’이란 단어에서 한복, 불국사, 기와집, 온돌, 명절과 차례 등을 자동적으로 연결해 읊을 수 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전통'이란 언어에 막연한 자부심을 가질 수는 있을지언정 개인적인 애착과 애정을 갖기는 어려운 문화다. 한국에서 '전통'은 스스로 생성하고 창조하는 활동이라기보다, 주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요되고 주어진 무더기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새롭게 형성된 문화에 전통으로서의 서사와 권위를 부여하기보다, 더 새로운 것을 찾아 끝없이 질주하는 경향이 있다. 혹은 위 사례와 같이 '된장'과 '김치'처럼 흔하지만 중요한 전통을 폭력적이고, 하찮고, 한심한 맥락의 서사로 엮어 내기도 한다.
한국어 ‘전통’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는 ‘tradition’이다. 같은 의미로 번역하지만 나는 맥락이 다르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물론 영어에서도 ‘전통’은 세대를 통해 전해온 문화유산과 의례, 관습, 행동양식 등을 말하지만 좀 더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 두 십 대 소녀가 일요일 아침마다 오드리 헵번 영화를 보며 크루아상을 먹는 걸 ‘전통’이라 표현하기도 하고(미드 ‘가십걸’), 결혼기념일마다 하는 보물 찾기를 ‘전통’이라 말하기도 한다(영화 ‘나를 찾아줘’). 일 년에 한 번씩 할아버지 집에 모여 햄버거를 먹으며 서부영화를 보는 소소한 일상도 ‘전통’이다(미드 ‘모던 패밀리’).
이러한 차이의 기원을 거칠게 추측하자면, 미국이 짧은 역사와 느슨한 전통을 가진 나라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인에게 미국의 전통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망설이며 대답하지 못하거나, 농담하듯 햄버거와 콜라라고 답하거나, '우리는 너희들과 같은 전통 음식이 없다!'라고 말한다. 미국은 자국의 문화적 다양성, 개척과 모험 정신, 유럽식 왕정 정치에서 벗어난 역사적 진보성을 자랑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문화적 콤플렉스도 존재한다. 어쨌든 중요한 사실은 (적어도 미국 영어에서) 전통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유동적이고 느슨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좀 더 개인적이고, 일상적이고, 생성적인 맥락에서 '전통'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지 않나 추측해 본다.
나는 전통을 반드시 엄청난 문화유산이나 고결한 행동 양식 등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문화유산이나, (선진국 시민들은 정작 신경도 쓰지 않는) OECD 가입국이라는 사실 따위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스스로 주체가 되려는 의지, 작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습관 속에서 자신의 서사를 만드는 능력이다. 나는 그러한 자기서사에 기반해 '그래, 이것이 나의 전통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러한 사람을 기르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의지와 노력 속에서만 우리의 전통은 풍성하고 굳건하게 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커버 이미지:
Frida Kahlo, 'Self-Portrait-on-the-Border-Line-Between-Mexico-and-the-United-States'(1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