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잡문

어리광

by 김현희

세상에는 맛탱이 간 여성보다 맛탱이 간 남성이 더 많다. 객관적인 데이터는 물론 없다. 일단 '맛탱이 갔다'는 말의 기준과 정의부터 모호한데 어차피 전제부터 결론까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내 소설이니 막무가내로 계속 쓴다.


세상에 맛탱이 간 남성들의 숫자가 더 많은 이유는, 남성들이 여성들에 비해 어리광을 충분히 부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면 큰일 날 소리다. 동서양을 막론해 여성을 미성숙한 아이 취급하는 오랜 풍토는 여성과 아이 모두에게 모욕, 억압, 차별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 문제와 별개로, 남성들은 그러한 사회 문화적 압력 속에서 여성들에 비해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책임감과 결단력 있는 자세로 '더 빨리' 어른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의 내면에는 기대고 싶고, 나만 봐주길 바라는 아이, 상처 받기 쉬운 소녀와 소년이 존재한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일수록 그런 아이가 내면에 살아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필요할 때마다 돌봐준다. 성숙한 어른의 조건 중 하나는 내면의 어린이를 때와 장소와 상대를 가려 달래고 풀어놓는 능력이다. 내면의 아이를 무작정 억압하다 보면 충족되지 않은 애정과 인정 욕구를 이상한 방식으로 분출하고 그렇게 맛탱이가 간다. 가부장적 사회가 모두를 골로 보내는 건 사실이나, (적어도 이런 문화적 맥락에서는) 남성들이 더 맛탱이가 가기 쉬운 환경이란 게 근거 없는 내 추측이다.


인생 최대의 행운아는 내면의 아이를 스스럼없이 꺼내 보일 수 있는 이가 곁에 있는 사람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곁에 없는데도 맛탱이가 가지 않으려면 다른 방식으로 '승화'하는 수 밖에 없다. 이는 엄청난 노력과 능력이 필요한 일이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인생의 방점을 사랑과 관계에 찍게 된다. 입으로는 뭐라고 떠들든,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내 안에 아직 살아있는 20대 현희의 예측과는 영 다른 방향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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