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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문

함정

2020. 01.05. 페북에 쓴 글

by 김현희

한국의 문화 요소 중 가장 이상한 것들이 집적된 형태 중 하나가 결혼식인 것 같다. 30분 단위 복사기로 찍듯 치르는 한바탕 쇼, 축의금, 폐백, 요즘은 사라지는 추세지만 예단비를 주고받는 괴상한 문화도 그렇다.


남동생이 결혼할 때 언니랑 한판 했다. 내가 한복을 입지 않겠다고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수십만 원을 들여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화장을 떡칠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이해가 안 가는 이유를 읊으며 언니는 길길이 날뛰었다. 나는 왜 옷을 입는 당사자인 내 의사를 존중하지 않냐며 길길이 날뛰었다. 나의 배우자는 몽땅 서구식으로 치르는 결혼식에서 왜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 형제만 한복을 입도록 강제하냐며, 이것은 여자들만큼은 마지막까지 유교적 질서에 남겨두려는 보이지 않는 음모라고 길길이 날뛰었다. 다들 그렇게 길길이 날뛰다 보니, 결혼 당사자도 아닌 사람들이 날뛰고 있는 이 모습 자체도 코미디의 한 축이었다.


결국 내가 타협안을 제시했다. 머리를 틀어 올리거나 화장 떡칠은 하지 않고 20분만 한복을 입었다. 평생 언니에게 이것저것 챙김 받으며 살아와 늘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식장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한복을 입고 우두커니 서서 가족에게 받는 사랑은 둘도 없는 양분이자, 함정이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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