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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an 02. 2022

떠오르는 생각들

담담히 새해를 맞으며, 

1. A Good Song Never Dies


2021년 2학기부터 우리 학교는 전면 등교를 시작했고, 그날부로 나는 확진자 수를 비롯한 전반적인 코로나 상황에 관심을 껐다. 작년과 달리 학생들과 많이 가까워질 수 있었다는 점이 2021년 학교 생활에서 가장 뿌듯한 지점이다. 수업을 하면서 웬일인지 노래 부르기에 열중했었다. 계획했던 건 아닌데 어느샌가 나나 학생들이나 노래에 진심이 되었다. 며칠 전 수업 시간에 교실에 비치된 아이패드로 개별 설문을 진행했는데, 우리 학교 6학년들에게 가장 사랑받은 곡은 영화 'Sing'에서 테런 에저턴이 부른 'I'm Still Standing'과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이다. 첫 번째 곡은 내가 수업시간에 텍스트로 삼은 영화의 주제곡이었고, 'Don't Look Back in Anger'는 다른 이유 없이 '내가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곡이라 아이들과 같이 부르고 싶어서' 선정했었다. 지난여름에 썼던 '형형한 똘끼와 선한 영향력'이라는 글이 시발점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https://brunch.co.kr/@sickalien/296

지난 금요일 마지막 수업 시간에 'Don't Look Back in Anger'를 부르며 작별을 고할 때, 아이들의 우렁찬 목소리, 오아시스의 빵빵한 기타 사운드와 함께 내 마음도 부풀어 오르며 형언하기 힘든 위안이 찾아왔다. 불확실한 전염병 사태 속에서, 나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 달라지고,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든, 변하지 않고 우리를 묶어줄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9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내가 2021년의 10대들과 음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건 정말로 근사한 마법같은 일이다. 역시, A Good Song Never Dies.


2. 소셜미디어와 거리두기


2021년 초여름에 페이스북 분회장 임기가 끝났고 그와 동시에 페이스북 계정을 휴면으로 돌린 후 온라인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다시 활성화한 상태이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잠깐 켜는 정도다. 


페이스북을 유용한 소셜미디어로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인 것 같다. 일단 나만 해도 페북에 들어오는 순간 정보의 과부하가 걸린다. 세상사 척척박사, 이슈 파이터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가볍고, 박력있게, 그러면서도 깊이있게 살기 위한 인생에는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페북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 환멸이 동시에 찾아오고 물론 환멸 부분은 감당하기 힘들다. 나와 상관도 없는 자들이 끈질기게 달라붙어 나를 규정하고 가두는 것도 지겨웠다. 물론 활자를 남기면 찾아오는 숙명일 수도 있지만, 글에 대한 비평이 아니라 '저 자는 처음부터 교사라는 직업을 까는 글로 이름을 알렸으니 어쩔 수 없는 자'라느니, (내가 페북을 자주 비활성화하는 것에 대해) '서태지가 은퇴와 복귀를 반복할 때와 같은 수작'을 부리는 자라느니 같은 말을 듣는 건 유익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시시한 자들의 알량한 온라인 권력놀이에 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느니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내 힘을 집중하자, 그리고 '나는 절대로 저렇게 나이 들지 말자'라는 다짐을 했었다. 올해도 브런치에 글을 저장하는 것 외에 소셜미디어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가족과 일, 글쓰기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3.  ....지회장 


22년에는 전교조 지부에서 지회장직을 맡게 될 것 같다. 아직 선거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보궐이고 다른 후보자가 없으니 아마도 될 거다. 그렇게까지 큰 직함도 아니고, 아직 일은 시작도 안했지만 가뿐한 기분은 아니다. 사실 나는 현재 전교조의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코어세력이나 전통적 활동 패턴에 신뢰가 없다. 죄송하지만 솔직히 그렇다. 물론 활동가들이 부패했거나,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나는 그런 부분을 판단할 정도의 정보력도 없다). 다만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말과 글에서 자유롭고 주체적인 개인의 영혼이란 게 느껴지질 않고, 거창한 수식과 구호 뒤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교육 현장과의 거리도 갤럭시파어웨이 수준으로 벌어져있다. 물론 내 시야와 경험의 한계일 가능성은 열어둬야 하고, 어쨌든 덥석 수락은 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참으로, 에라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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