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2022년 첫 번째 여행도 역시,
2020년 크리스마스부터 제주도를 다섯 번쯤 여행했다. 코로나 덕에 제주도에 정이 들어 버렸다. 처음에는 갈 곳이 없으니 제주도에 가고, 얼떨결에 올레길을 걸었는데 걷다 보니 다른 코스도 걷고 싶고, 바다는 늘 열려 있고, 미술관도 훑고 싶고, 모두 훑고 난 후에도 매번 다시 들르는 작은 미술관이나 초밥집 같은 것들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돈가스+우동집을 찾았는데 소문난 맛집이 아니라 붐비지 않고 음식은 소담하고 담백해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제주도가 아닌 곳으로도 두어 번 여행을 떠났었지만 내게는 국내에 제주도만 한 휴가지가 없는 것 같다.
이번 여행은 평소보다 기간이 짧고, 내 컨디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올레길 8 코스만 이틀에 걸쳐 나눠 걸었다. 3일째 되는 날 느지막이 일어나 맥도널드로 직행해 맥모닝을 먹고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을 가로지르는데 사람이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어서 마스크를 벗고 노래 비슷한 것을 부르며 신나게 걸었다. 밤에는 호텔에서 물놀이를 하고, 군고구마를 먹고, 영화를 보고 푹 잤다.
여행길에는 차 안에서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로 매번 배우자와 투덕거리게 된다. 나는 락, 사이키델릭, 모타운, 재즈, 남성 보컬 위주 음악을 좋아한다. 배우자는 운전할 때 시티팝(요즘 쓰는 말인가?)이나 R&B를 듣고 싶어 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운전할 때 들으면 너무 어둡거나 심란, 스산해진다고 했다. 우리는 브루노마스와 실크소닉 정도에서 가까스로 접점을 찾았기 때문에 여행 내내 들었다. 마음에 꼭 들었던 작은 돈가스집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게 될 음식'에 대해 대화를 하다가 나는 조금 감성적이 되어버렸는데 어쩐지 쑥쓰러워 이유는 배우자에게 말하지 않았고 여기에도 쓰지 않겠다.
기당미술관은 당연히 들렀다. (2021년 2월에 첫 방문)
https://brunch.co.kr/@sickalien/208
마침 변시지 유럽기행 기획전이 마감되기 하루 전이었다. 변시지 선생이 몇 주간 유럽여행을 하며 그린 그림들인데, 보면 알겠지만 전혀 파리나 로마, 런던처럼 보이지 않는다. 빠지지 않고 새겨져 있는 어둡고 구부정한 그의 분신을 보고 나는 조금 웃고 말았다.
어쩌다 보니 뒷모습 사진이 잔뜩 생겼는데 제주도에 새긴 내 분신처럼 재미 삼아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