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Day 4-5
몸도 마음도 비우고 싶어 물 생각이 간절했다. 비엔나의 수영장을 검색해봤더니 저렴한 가격으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공수영장이 많았다. 일단 토요일에는 호텔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Donaustädter Bad를 찾았다. 외관은 한국의 대형 워터파크를 마을형으로 축소해 놓은 듯했다. 물에 젖은 아이들이 신난 표정으로 워터슬라이드 앞에 줄을 선 모습이 보였다. 실내 수영장으로 향했지만 공놀이를 하는 가족들, 꺅꺅대는 아이들의 소리가 울려왔다. 본격 수영만 할 수 있는 레인은 두 개밖에 없었고, 토요일이라 그런지 그나마도 사람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어느 때보다 마음 편히 수영을 했다.
한국 수영장은 자유 수영을 하러 가도 레인마다 초급용, 중급용, 마스터용 등의 팻말이 붙어 있다. 즉 나의 수영 실력을 외부 기준에 맞게 상대적으로,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평가해야 한다. 나는 자유 수영을 할 때도 내가 너무 느리거나 혹은 새로운 영법을 연습하느라 뒷사람들의 흐름이 끊길까 봐 앞뒤 눈치를 보는 습관이 있다. 여기에선 내 몸에 달라붙은 습관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실내 공간인데도 레인 구분이 불분명했지만 다들 전혀 서로 눈치를 주지 않으면서도, 기가 막히게 눈치껏 피하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 타듯 앉아 천천히 떠다니는 할머니, 정신없이 첨벙거리는 아이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히잡을 둘러쓰고 수영하는 사람, 수영이 서툴지만 평영에 진심인 아저씨 등이 제멋대로 뒤섞여 있었다. 한국 수영장에서처럼 서로의 수영 자세를 관찰하며 코치를 하거나 훈수를 두는 건 적어도 이 공간, 이 시간에는 불가능한 일 같았다.
내가 그토록 편안함을 느낀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서로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혹은 신경을 쓰는 태도와 문화가 완전히 체화된 바람에 눈에 보이지 않아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물속에서 1m의 시야도 확보되지 않을 만큼 물이 탁했다. 수모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어서인지 부유물이 많아 나는 10분에 한 번씩 손가락에 낀 머리카락을 떼냈다. 한국 수영장에 비교하면 샤워장이 변변치 않고, 머리를 말릴 수 있는 공간이나 기구도 없어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건물을 나섰다. 그럼에도 물에서 보낸 토요일 오후는 완벽했고 덕분에 드디어, 숙면을 했다.
일요일에는 우반을 타고 15분쯤 달려 Amelienbad에 갔다. 1920년대에 지어진 아르데코 양식의 장대한 실내 수영장이다. 사진을 미리 봤었는데도 입이 떡 벌어졌다.
알프스에서 약수를 받아다 쓰나 싶을 만큼 물은 차갑고 파랬다. 들어가기 전 깊이를 확인해보니 4.9m라고 쓰여있었다. 리뷰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학교 수영 수업을 받는다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혹시 'm'이 한국과 달리 미터가 아닌 다른 단위를 의미하나 싶었다.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수영을 시작했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는데 갑자기 깎아지른 깊은 절벽이 보였다. 당황해서 일어서려 했지만 이미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끝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m'은 미터가 맞았다. 4.9m 깊이의 풀장이었던 것. 5m 깊이 풀장에서 초등학생들이 수영을 배운다니, 한국 초등학생들이 생존 수영 수업을 받는 환경과 달리 처음부터 매우 빡세게 수영을 배우는구나 싶었다.
물에 떠있는 플라스틱 레인은 아예 없었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혀있지만 어찌어찌 알아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분위기에 곧 적응이 되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수영을 좀 더 폼나게, 빠르게 잘하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인 것 같고, 물을 편하게 즐기는 건 이곳 사람들인 것 같다.
내려갈 수 있는 최대한 깊은 곳에 잠겨 위에서 떠다니는 사람들의 형체와, 흐물흐물 움직이는 다리들을 바라봤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헤엄을 치는 '물고기들' 같았다. 나는 물속에서 해초처럼 몸을 돌리고, 조개처럼 구르고, 해마처럼 점프를 했다. 3차원을 노니는 어류가 되고 싶었다. 숙소에 돌아와 누웠는데도 물속에서 바라본 파란 세계, 흐물흐물 헤엄치던 물고기들 아니 사람들 모습이 아른거렸다.
프리다이빙을 배워야겠다.
커버 사진 - 영화 '그랑블루'에서 자크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