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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Dec 18. 2023

관계의 비결

2019. 12. 18.

나와 내 배우자에 대한 주위 사람들의 묘사를 보면 재밌는 구석들이 있다. 일단 사람들은 관계를 이해할 때 ‘누가 누구에게 꽉 잡혀 산다’ 는 도식을 즐겨 이용하는 것 같다. 나는 누군가를 잡고 살고 싶지도, 잡혀 살고 싶지도 않은데 말이다. 또 사람들은 ‘집안 일을 누가 더 많이 하느냐’를 중요하게 보고, 집안 일을 덜 하는 사람을 ‘승자’ 취급한다(특히 승자가 여자이면 미담으로 승격된다). 집안일 분배가 중요한 문제인 건 맞는데, 관계를 '이기고 지는 게임'처럼 말하는 건 불편하고 어색하다.


우리 관계가 몹시 말랑하고, 가까워 보인다며 결혼 생활의 비결을 묻는 분이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철없고 당돌해 보이는 내게 한없이 자상하고 헌신적인 남편을 높이 산다.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우리는 결심이 서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날 사람들이다. 특히 남들 눈에 '한없이 다정해 보이는' 내 배우자는 관습이나 세상의 눈이 무서워 이미 끝난 관계를 질질 끌어갈 성격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가까운 이유는, 우리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를 당연한 존재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선택'에 의해 함께 있기 때문이다. 물어본 분이 식겁할까봐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관계의 비결은, 떠날 수 있는 자율 의지다.


201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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