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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희 Jun 11. 2024

이상한 밤이었다

2024. 06. 11.

"나는 네가 주관이 뚜렷해서 참 좋다." 내 어린 시절 핵심 기억 중 하나다. 8-9세 정도 나이 때 아빠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어서 당시 나는 인간의 최고 미덕이 '자기 생각 갖기'인 줄 알았다. 내 생각을 가지며 산다는 게 인생을 매사 평탄하게 만들진 않는다. 나름의 고충과 충돌도 있었다. 하지만 좌충우돌 중에도 나는 '내 인생'을 살고 있다는 실감만은 언제나 느끼고 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솔직하고 당당한 면모가 내게 존재한다면 그건 많은 부분 아빠의 영향이다. 이건 아빠와 나만 아는, 어쩌면 나만 아는 진실인지도 모르겠다.  


아빠는 암투병 와중에도 마음 약한 엄마 걱정을 많이 하셨다. 어제 의식 없이 누워계신 아빠에게 '고맙고, 사랑하고, 우리가 곁에 있으니 엄마 걱정하지 말고 편안하게 가시라'라고 몇 번이고 약속했는데, 숨소리로... 숨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하신 것 같았다. 증명할 수 없는 이상한 확신. 이것이 아빠와 나만 아는 마지막 비밀이면 좋겠다.  


이 와중에도 일 생각이 자꾸 나서 정신은 어수선하고, 실감은 나지 않는데 눈물은 나오고, 잠이 안 와 사진첩 뒤적이다 보니 겨우 겨우 찾아온 오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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