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행

캄보디아

2024년 크리스마스

by 김현희


12월 29일 아침 9시, 나는 인천공항에 착륙했고 같은 시간 무안에선 항공기가 활주로를 이탈해 철근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사고 소식을 일찍 접한 바람에 편집되기 전 폭발 장면 영상까지 보고 말았다. '저 비행기 안의 탑승객이 나일 수도 있었다'라는 감각이 너무 생생해 몸이 떨렸다. 애도의 마음을 표하는 것조차 죄스러웠다. 며칠 후 탑승자 명단에 '김현희'란 이름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확인해 보니 희생된 김현희님은 나와 태어난 해까지 같았다.


애초에 심란한 상태로 떠난 성탄절 휴가였다. 11월부터 내내 바빴던 일정 때문에 배우자에게 시간을 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아니었다면 굳이 가지 않았을 여행이다. 여름인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뜬금없이 감기 몸살에 걸렸고 간호하던 배우자까지 감염되고 말았다. 낮에는 진통제 기운으로 헤롱대며 고대 유적지를 헤매고, 저녁에는 매일 피자만 먹고 (다른 음식은 보기만 해도 메슥거렸다) 끙끙 앓아대며 밤을 보냈다. 비몽사몽 중 자꾸 아빠가 보이는 듯했다. 지금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인지 후인지 헷갈렸고 꿈속에서마저 방향키를 찾지 못해 헤매기만 했다. 캄보디아는 무척...'아름답지만 묘하게 음산했어'.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르며 내뱉었던 말이다.


한 달 후 또 비행기를 탔다. 왠지 무섭다고 말하자 그는 평소처럼 또각또각 말했다. "항공기 사고 확률은 도로나 철도 사고에 비해 훨씬 낮아. 심지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그날 부산에서 보조배터리로 인한 여객기 화재 사고가 터졌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내가 비행기를 타는 날마다 사고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혹시 어떤 해석이 필요한게 아닌가? 나는 진지하게 물었고 곧 반성했다. 사람이 이렇게 터무니없이 자기중심적이다.


이후로도 각종 참사와 끔찍한 사고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어선 침몰 사고가 잇따르고 공사장 화재 사고로 인부들이 사망했으며 교사가 아이를…이 사회는 마침내 혼이 나가 버린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12월 31일 밤에 내가 대전지부 조합원들에게 보냈던 마지막 메시지를 떠올렸다. '고난과 고통이 휩쓸고 간 폐허 위에 연민과 연대의 의지를 심자'라고 썼었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바라는 수밖에 없다.


올해 나는 계획했던 대학원 진학을 미루고 오로지 학교 생활에만 매진해 보기로 결심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먼 행성들을 돌고 돌아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 기분이다. 여행을 시작했던 시기의 나보다 돌아온 지금의 내가 훨씬 더 강건한 모습으로 아이들 곁에 있어줄 수 있고, 지금은 그런 때여야 할 것 같다. 그러니,


고난과 슬픔과 혼돈에도 불구하고, 모두 해피뉴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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