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7.
평화롭고 심드렁한 나날들이다. 학교 생활은 순조롭다. 물론 1학기 출발은 쉽지 않았고 우리 교실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출발 시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우리 사이에 신뢰가 쌓였다. 개인적으로 운도 좋았고, 다른 건 몰라도 어린이들이 하나만큼은 확실히 느끼는 것 같다. “이 선생은 괴물처럼 바나나를 먹어댄다. 성격도 특이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우리를 좋아한다.” 물론 아이들이 직접 내뱉은 말은 아닌데, 느낄 수 있다. 마치 범준이 2살 때 갑자기 “고모, 나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와 같다. 주위에 있던 가족들은 ‘아니 아기가 뜬금없이 왜 이런 말을 하지?’라며 어이없어했다. 하지만 나는 범준이 그 말을 하기 2초쯤 전, 범준이 내 마음속의 경이와 사랑을 온몸으로 느꼈음을 알았다. 당사자끼리만 찌릿 통하는 에너지 같은 거다. 보이지 않고 설명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요즘 우리 교실에서도 느낀다.
다정한 일상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 구석은 심드렁하다. 나사 하나가 풀린 것 같기도 하다. 요 몇 달 도통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다. 나의 공적인 자아는 요즘 솔직해지는 게 힘들다. 가정과 교실을 제외한 모든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눈을 희번덕대며 고성을 질러대는 정치인들 뉴스에 혐오감이 밀려와 곧장 미드 채널로 돌려버리곤 한다. 수 백 명이 들어있는 교육 관련 단체 채팅방들에선 밤낮없이 교육개혁 구호들이 나부낀다. 내년에 있을 교육감 선거 덕에 홍보와 구호전은 더욱 느끼해질 예정이다. 너도나도 교육문제의 해결책을 말하는데 어째 믿음직스러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회적으로 각종 혐오 발언의 수위는 날로 높아져 간다. 포퓰리즘은 이제 시대정신이다. 교육운동판도 다르지 않다. 메시지의 내용, 구체성, 전략의 현실 가능성이나 장기적 안목 따위 보다 '누가 더 세게 말하는가!'의 경쟁이다. 교사의 권익을 찾기 위해 학부모는 더욱 쓰레기가 되어야 하고, 학생들은 더 병적인 존재들이 되어야 할 것 같은 모종의 기류를 느낀다. 물론 일부 악랄한 학부모나 심각한 상태의 학생들이 존재함을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학부모와의 연대는 중요한데 장기적으로 이게 좋은 운동 전략인가'라는 류의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운동과 사상의 순결성을 의심받는 풍토가 생기고 있다. 내가 속한 공론장은 민주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다. 나는 어쩌면 이미 교육운동은 끝난 것 같다는, 아무도 관심 없는 우울한 전망을 남몰래 품고 있다.
엊그제 한겨레 21 칼럼에 엄기호 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지금 이 시대에 구원의 가능성은 맹렬하게 반응하고 적극적으로 공감하며 활동적 삶을 살고 있는, 그러나 '의미의 소통'에 별문제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에 실망한 나머지 방에 틀어박혀 세계로부터 물러난 자들에게 있는지 모른다. 이 ‘수도자’들이 완전히 사회와 유리되고 고립돼 고사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엄기호 선생님처럼 멋지게 표현하지 못하지만, 사실 이게 내가 ‘교육하는 즐거움’을 만든 이유다. 혐오 감정이나 무기력감에 직면하느니 골방에 틀어박히는 게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털고 벗어나 일단 만나야 한다. 만나서 부어라 마셔라만 하는게 아니라, 한풀이만 할 게 아니라, '사회적인 만남과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나의 마음이 덜 암울했을 땐 무릎을 탁 치며 '맞습니다, 누가 해주길 기다리지 않고, 그걸 내가 할 거예요!'라고 외쳤을 테다. 지금은 그저 모든 게 쉽지 않단 생각이다. 심드렁도 병이다. 그럼에도 이제 정신을 차려보자, 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