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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홀로움 Nov 10. 2024

꽃기린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신을 향하게 우리의 시선을 붙들어 놓는 것, 시선이 멀어지면 다시 붙잡아 데려다 놓는 것,

매순간 모든 힘을 다해 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이 매우 힘든 이유는 우리 자신의 거의 전부인, 우리 자신인, 우리가 우리의 자아라고 명령하는 것인, 우리 자신의 가장 보잘것없는 부분의 시선을 신에게 고정시킬 때 죽음에 처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그 부분은 죽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항합니다. 시선을 돌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거짓말을 지어내면서.”

 -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 시몬 베유-



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들어 있던 꽃기린을 드디어 집에 들였다.

 

귀염뽀짝한 아기 기린 피규어도 함께 살 수 있어 온라인으로 구매해야 하나

곧 겨울인데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한참 망설이는 나를 보던 남편이 2주전

가까운 농장에서 다른 다육이들과 데려왔다.

 

아침 저녁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조량에 따라 꽃의 색이 변하는 것이 신비롭다.

 

꽃말은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여름의 고온과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일년내내 꽃을 피워내는

꽃기린에게 가시는 생명이다.

 

또 다른 꽃대가 속에서 뚫고 나오니 먼저 나온 꽃대는 옆으로 누워서 길을 내주며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게 된 꽃기린은

자신이 가시나무가 아니라

작지만 붉고 둥근 꽃을 피울 수 있는

꽃나무임을 아는 듯하다.

 

바라보는 이의 고운 시선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냘픈 몸에 어려움까지 모두 품어

생명을 짓는 꽃기린에게

삶을 배운다.


꽃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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