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담아, 이번 주 우리 어딘가로 떠나볼까?”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가을이 찾아온 듯 청량한 바람이 코 끝을 간질이는 9월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남은 고속버스 표 두 장을 손에 쥐고 강릉으로 떠났다.
좋은 여행이 될 것이 분명했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은 여행지에 대한 환상 덕분도, 그날 아침 확인한 일기예보가 완벽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내게 여행을 제안해준 살가운 살가운 친구 원 덕분이었다. 버스는 세 시간 여를 달려 강릉터미널에 도착했고, 우린 좋아하는 디저트와 와인을 잔뜩 챙겨 어느 이름 모를 해변가를 찾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와 시원하게 늘어선 해송(海松)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깔았다. 보슬보슬한 모래알의 촉감이 느껴졌다.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와아’ 소리를 내지르며 바다를 향해 달리는 원이가 보였다. 행복의 순간을 사로잡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는 그 모습에, 눈 앞의 행복을 온전히 들이마신 그녀의 표정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충만해졌다. 내 안으로 행복이 한 웅큼 걸어들어오는 것 같았다.
고속버스가 출발하기 전 내게 ‘어젯밤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며 멋쩍게 웃어보이던 원이 얼굴이 떠올라, 나 또한 싱긋 미소를 지었다. 문득 이 순간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다 ‘혼자 있는 것보다도 더 편하고 평화로운 순간’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이 비슷했고,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은 온도로 마음을 달굴 수 있었다. 그녀는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사랑했기에, 동시에 같은 글을 읽고 그 온도가 채 가시지 않은 감상을 나누는 짜릿함과 평화를 만끽할 수 있었다.
취향이 같다는 것의 편안함은 그런 것이었다. ‘취향’이라는 것에 있어서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꽤나 보는 사람인지라, 다르게 말하자면 타인의 취향을 극도로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탓에, 취향을 타는 글과 음악, 미술에 대해 논하는 것을 늘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원이와는, 누군가에게는 유별나 보일 수 있는 나의 취미와 관심사를 나누는 대화에서도 편안함을 느꼈다. 서로의 취향을 마음껏 꺼내보일 수 있었고, 마음 깊숙한 곳까지 평온이 드리웠다.
사실 꼭 취향에 관한 것이 아니어도, 우리의 대화는 늘 편안했다. 누구 한 쪽이 애쓰지 않아도 삐걱거리지 않았고, 대화 사이의 여백이 어색하지 않았으며, 오고가는 문장 속에서 서로를 향한 따뜻한 애정이 새어 나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혼자 있을 때보다도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간을 구축할 수 있었다.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던 우리는 챙겨간 디저트들에 붙여진 레몬 마들렌, 옥수수 휘낭시에 따위의 이름이 지루하다는 생각을 했고, 마침내 모든 디저트들에 직접 이름을 붙이는 놀이를 생각해냈다. 일명 ‘디저트 개명 프로젝트’였다. 디저트를 하나 먹을 때마다 ‘우리의 조각’, ‘제목 없음1’, ‘마지막 잎새’와 같은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실로 촌스러운 이름들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깔깔대며 디저트마다 새로운 이름을 붙였고, 사진을 찍었고, 촌스러운 이름들을 잊을세라 기록하기를 반복했다. 이 또한 좋은 추억이 될 것이 분명했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우리는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가수의 노래를 선곡했다. 낮게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 위에 쌓이는 파도소리가 황홀했다.
그 노래가 처음 발매되었던 3년 전 가을 무렵, 가수의 소중한 친구의 죽음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렸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곡이었지만 동시에 사무치게 슬픈 곡이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랜 침묵 끝에 입을 떼었을 때, 손에 쥔 작고 달콤한 마들렌 앞으로 ‘우리 꼭 같은 나이에 죽자’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 다시 붙이라고 하면 ‘우리 꼭 함께 오래 살자’라는 이름을 붙였을 텐데 그 때는 그랬다.
사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었다.
아니, 조금 솔직해 보자면,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모두 나를 떠나고 혼자 남는 일의 끔찍함에 대해 떠올린 적이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생각이 이토록 완벽한 순간에 떠오른 것은 아마도 이 순간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만큼 완벽했기 때문이리라. 또, 원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원이가 내 마음 속 공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게 대체 무슨 제목이냐”며 웃는 원이였지만, 문득 난 5년 전 어느 겨울날을 떠올려야 했다.
그 날은 원이와 나의 키가 소숫점 빼고 똑같아져 버린 날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춤을 추며 텅 빈 광화문 지하도를 함께 내달렸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 날 원이는 종로서적의 세계문학 서가 앞에서 내게 말했다.
“시담아, 가끔 난 서른 살까지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
거울을 보지 못했지만 아마 내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아니, 그냥 그 때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를 좀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 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한 마디를 덧붙였지만, 나는 순간의 충격에 잠시간 헤어나오지 못했다.
나는 그 때 깨달았다. 원이가 없는 삶을 난 상상도 할 수 없겠구나.
우리는 이미 서른이 되었고, 건강하고 행복하며 부지런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해가 바뀔 때마다 난 습관처럼 서른 살에 가까워져 가는 원이를 떠올려야 했다. 그 때마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안도감이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여전히, 난 원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그녀가 없다면 아마도 이 세상의 몇몇 색깔들은 영영 잿빛으로 변해버리고 말 것이다. 마음 한 켠에 남아버린 구멍은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을 것이다. 디저트 위에 이상한 이름을 붙이는 친구도, 함께 먹은 디저트의 순위를 매기는 친구도, 참 흔치 않은 나의 키와 같은 키를 가진 친구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테니깐. 아니 그냥 원이라는 친구 자체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한 하나뿐인 사람이니까.
아직은 ‘삶’만을 이야기해도 바쁜 우리가, 어느덧 ‘죽음’을 논하는 것이 너무나도 생경한 것이 아닐 때가 올 그런 나이까지. 나는 여전히, 오래도록 너의 손을 잡고 싶다.
그러니 우리, 꼭 함께 오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