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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Oct 22. 2022

콩벌레 구조활동

이세상 모든 작고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도

오늘로 이 곳 김녕에 머무른 지 삼일째다.

가을이 오려는지,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오늘은 마음껏 늦게 일어나 하루 외출에 필요한 짐만을 챙겨 숙소 밖을 나섰다. 어제처럼 맑은 날씨는 아니었지만, 소박하게 내려앉는 구름의 온도가 나름대로 매력 있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원래 목표했던 오름에 가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나는 빗속을 질주하는 버스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저만치서 무성한 풀과 돌밭 사이로 우뚝 자리잡은 카페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마치 당연히 그러려고 했다는 듯이―딩동, 하차벨을 눌렀다.


카페에서는 잔잔히 음악소리가 흘러나왔고,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으며, 푸근하고 차분하게 비이불을 덮은 김녕의 풍경이 펼쳐졌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지만 야외석에는 비를 막아주는 나지막한 처마가 있었다. 몇 번의 고민 끝에 난 처마 아래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왼편에서 어떠한 기척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땅바닥을 내려다보니, 콩벌레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생명체 하나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콩벌레와 나의 두시간 여의 끈질긴 사투가 시작되었다.


아마도 콩벌레로 추측되는 그 아이는 아주 까맣고 작고 둥그런 몸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주의 가을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뒤집어진 채 이리저리 허둥대고 있었다. 고군분투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었던 나는, 휴지를 가져와 조심스러운 해체작업을 시작했다. 콩벌레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가장 얇고 가벼운 종이 단면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해체된 휴지를 이용해 콩벌레가 일어나기 쉬운 방향으로 몸을 밀어주었다. 아주 조심스럽게, 슬쩍.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잔뜩 웅크리더니 작은 콩이 되어버렸다. 주의를 다해 길을 걷지 않으면 무심코 밟아버릴 것만 같은 그런 작은 콩, 작고 검은 돌멩이의 모습으로. 혹시나 내 도움의 손길이 아이에게 절망이나 위협으로 다가간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콩벌레는 다시 바등대기 시작했다, 나의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잔뜩 업고선.


몸에 위협이 가해진다 싶으면 아예 웅크려버리는 통에 나는 방법을 바꾸어 아이가 몸을 뒤집기 쉬운 방향으로 입김을 살살 불어보았는데, 여전히 쉽지 않았다. 방법을 바꾸어 부채질마저 해보았지만 통할 리 만무했다, 도와주려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는 너를 위협하려는 게 아니라고! 도와주고 싶은 거라고!'

콩벌레와 나의 언어가 다른 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 될대로 되어라, 하는 마음으로 눈 앞의 풍경과 시집에 눈길을 돌려보았지만, 나는 바등거리는 작은 몸뚱이를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아주 작은 생명체였지만, 어떤 아름다운 풍경과 숨이 멎는 문장도 그 순간 필사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녀석보다 중요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구조활동과 독서, 구조활동과 풍경감상을 반복하는, 정의하기 힘든 두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돌연 모든 움직임이 멎었다. 사람들에게 징그럽다는 오명을 쓰고 있는 자신의 온 다리로 아등바등 또 아등바등, 그리고 멈추기를 반복하던 녀석이 마침내 그 어떤 미동도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 30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쯤되니 정말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죄책감과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내가 도와줄 수 있었는데, 포기하지 않고 한 번만 더 도와주었더라면 한 생명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왜 나까지 포기했을까.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을 지나고 있을 무렵, 아이는 마지막 힘을 쥐어짠 듯 다시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얇은 휴지 한 조각을 꺼내어 다시 한 번 아이를 몸의 반대 방향으로 굴려주었다.

이제는 저항할 힘도 없어져버린 건지, 아니면 드디어 내 마음을 알아준 건지 아이는 방어 자세로 몸을 웅크리지 않았고, 내 도움을 온전히 받아 힘차게 몸을 뒤집었다.


세상에!

너무 기쁘고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헤엑, 하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축하한다, 장하다,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나의 진심을 표현하기에 적절한 의성어였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친구일테니 아무렴 상관은 없었을 테다. 나는 아주 조용하고 소심한 박수를 보냈다.


장시간의 사투 끝에 잠시 숨을 고른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시 돌아온, 그러니깐 다시 뒤집혀버린 세상에 기쁨보다는 놀람이 먼저였는지, 아이는 주춤하기를 두어번 반복하더니 이내 빗물이 닿지 않은 바닥을 향차게 힘껏 내달렸다.

두 시간 여의 구조활동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떠나간 자리를 바라보며 나는 오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일단 내가 한 생명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그리고 대견했다. 그 오랜 시간 멈추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살기 위해 노력한 작은 콩벌레가.

한낱 미물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 곳곳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우주를 꾸려가고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저마다의 이유로 다하고 있는 최선들에게도.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흘려보내고 있는 하루의 무게, 생명의 무게가 보다 손에 잡힐 듯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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