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알이 튀어나갈 것 같은 두통에 차마 눈도 뜰 수 없어 한 손으로 눈을 꼬옥 누르고 겨드랑이엔 늘 아이스팩을 끼고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던 날들이 지나
어느 정도 회복세에 접어들자, 궁금해졌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고생 생고생을 했어야만 했던 건지..
담당 주치의 J선생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J선생님을 통해 들은 내 뱃속상태 이야기는 이랬다.
배 속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방광이 있고, 그 뒤에 자궁, 그 뒤에 직장 및 대장이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고 한다.
방광 자궁 난소 장 나팔관 할 거 없이 모두 다 한데 뒤엉켜 유착되어 달라붙어있었다고..
다비씨 수술은 암 수술보다 더 복잡하고 어려웠어요.
"그런데 패혈증은 왜 온건가요?"
"다비씨 체력이 약해서 수술 부위가 염증으로 덧났을 수도 있고, 수술 현장에서 어떤 경로로 감염이 되었을 수도 있고, 그 원인을 특정 짓기는 어려워요."
말씀하시기 매우 조심스러워하시는 게 느껴졌다.
상담 중에 하신 어떤 단어 하나를 꼬투리 삼아 돌연 물고 늘어져서 'J선생이 그러더라'며 교수님께 들이받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그러신 거겠지 생각했다.
첫 번째 수술은 다른 선생님이 함께 들어갔었는데, 수술 후에 나한테 와서 어떻게 했고 앞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갈 건지 설명 한 번 하러 온 적이 없었다. 내 침대에 그 담당선생님 이름이 기재되어 있기는 했는데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패혈증이 오고, 정신없는 시간들이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J샘으로 담당이 바뀌어 있었던 것만 기억난다.
수술 후 첫 번째 교수님 회진 때 "저 자궁 남겼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대답을 못 하시고 흔들리던 교수님 눈빛과, 뒤에 따라온 무리 중에서 누군가가 "보존했습니다, 교수님." 대신 대답했던. 석연치 않은 기억의 조각들이 있었지만, 내 선에서 그것들을 이어 붙인다고 해도 뭐가 달라질까.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 내가 두려워하자, J선생님이 자기가 책임지고 함께 들어갈 테니용기 내라고 하셨다. 수술방 앞 대기실에 정말 J선생님이 나보다 먼저 와 계셨고, 병동의 수쌤도 따라오셔서 수술 때 쓸 혈관라인을 직접 잡아주고 가셨다. 원래도 내 팔에 혈관이 잘 안 보이는데 그때쯤에는 자꾸 찔리니까 더 숨어버려서 발목에다 꽂았는데 무척 아팠다.
두 번째 수술 때 들어가 보니, 선근증 절제 후 봉합해 둔 자궁이 다시 벌어져서 염증이 배 안으로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고 장이 일부 녹아? 있어서 외과 교수님이 같이 수술해 주셨다고.
관성의 법칙 같은 거라도 있었던 걸까_
얼마나 어그러진 상태가 익숙하면, 유착된 것들을 다 끊어 풀어놓아줘도 이렇게 난리를 칠까.
서로 달라붙어 굳어버린 병변들을 없애 주면 금방 자유함을 느낄 줄 알았더니 오히려 죽는다고 아우성을 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