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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Nov 03. 2023

결혼을 전제로 사귀려면 필요한 실력

젓가락질 잘해야만 사귈 수 있습니다


남편과 세 번째쯤 데이트를 하던 날로 기억한다.


원래도 오랜 기간 알고 지내던 사이였고, 같이 팀으로 짜여 극한의 환경에도 놓여보고 했었기 때문에 본격 사귐을 갖기 전에도 이 사람의 성품적인 측면은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 밝고 명랑하지만 가볍지 않은,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그 기운을 주변에 비춰주는 따스한 사람이었다.


여러 상황에서 보여주는 말과 행동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사람이 가진 배려심에 관해 단면적으로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는 건 밥을 먹을 때라고 생각한다.

음식 투정 부리는 사람은 또 이게 몸이 힘들고 지칠수록 그 까탈이 가히 살벌해지는 경향들이 많이 있더라고. 그런데 이 오빠는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다만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의 젓가락질 실력이었다.


젓가락을 마치 연탄집게 잡듯이 한 손에 주먹으로 쥐고 식사를 했던가?

X자로 배배 꼬이면서 반찬을 집었던가?



마음이 그에게로 많이 기울어가려는 걸 느낀 순간, 갑자기 오빠가 젓가락질을 어떻게 했었지 하는 문제가 내게 너무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데 옛날부터 그토록 숱하게 많은 끼니를 함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체 내 눈은 여태 뭘 보고 다녔던 건지, 그의 젓가락질 실력에 관해서는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이번 일로 정식 데이트를 하기 전부터도, 항상 이 오빠랑 있으면 그룹 안에서의 만남이든 개인적인 자리든 즐거웠다.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말이 잘 통했다. 가끔은 다소 뻔한 수작을 부려도 유쾌하고 재미가 있었다.

되도 않는 헛소리 같은 말을 해도 자꾸만 홀리는 매력이 있었다.


데이트신청을 받고 남녀로 만나봐도

만날 때마다 너무 좋고, 시간이 다 어디로 날아가버린 것 같고, 다 좋은데.

이 오빠랑 더 관계를 발전해 나가려면 아무래도 오빠의 밥 먹는 모습을 꼭 각 잡고 살펴봐야 했다.




그날은 오빠가 헤이리에 무슨 멋진 음악카페가 있다며 드라이브 겸 거기서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오케이. 그럼 내가 식사메뉴를 정하겠숴!

오빠, 혹시 곤드레나물밥 좋아하세요?
제가 알아보니까 헤이리에 밥집이 있던데 우리 내일 그거 먹으러 가요."


무조건 한식을 먹어야 해.

(물론 나는 원래 진짜로 한식을 좋아한다)

한식을 먹고 나면 이에 뭐가 끼기도 하고, 데이트 때 먹는 메뉴로는 그리 적합하진 않지만_ 우린 오늘 뽀뽀를 안 할 거니까 괜찮아.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한식을 먹으며 데이트를 하기 가장 좋은 날이야!

하는 각오로 그날의 데이트에 나갔다.


첫날 둘째 날은 기분 좋은 스릴과 긴장감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미처 몰랐는데,

아 이 오빠 운전도 엄청 부드럽게 잘하네?

요리보고 조리 봐도 마음에 들었는데,

오늘의 미션을 해내려면 정신 단디 차려야 했다.


드디어 밥집에 도착했다.

밥집인데 흡사 책 읽기 좋은 카페 같은 분위기여서 공간이 주는 차분함에 주책없이 설레는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노란 빛을 한 따뜻한 차가 나오고, 죽이 나왔다.

연이어 간단한 샐러드가 나왔다. 그래 시작이야!


젓가락 양쪽 길이도 들쑥날쑥 잡지 않고, 다소곳하게 모아지는 가지런한 품위 하며, 숟가락으로 밥그릇을 챙챙 부딪히고 긁어대지 않으나 밥알을 남기지 않고 야무지게 마무리하는 저 복스러움까지!

(술 점수, 예술 점수, 모두 만점이네요~!!)


아아, 합격!

이 정도면 합격이지

좋아. 앞으로 저랑 합시다, 러브.


남편은 본인이 흡사 양갓집 규수 면접을 통과한 거 아시려나. ㅎㅎ



결혼을 하면 평생 같이 밥 먹을 텐데 

그러니 배우자가 되려면 젓가락질을 잘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음식을 먹을 때 입안의 음식이 보여서도 안 되었다.

그날의 식사는 맛도 훌륭했지만 내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래서 결혼한 이래 맛있고 복스럽게

같이 맛있는 거 많이 먹어서 우리 부부는 십몇년째 포동해지는 중이다.


#눈맞으면 러브

가 아니고

#배달의민족 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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