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저번 때 어머님 생신 때 아주버님네까지 다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상 차려 드렸잖아."
?
B언니가 응수했다.
"나도, 어머님 칠순 때 우리 집에서 플래카드랑 풍선 데코도 다 하고 당일 새벽에 수산시장에서 장 봐다가 상 차렸잖아. 갈비 같은 건 전날 해두었다 바로 덥혀서 올리고."
??
C언니가 대박이다.
"나는 투석 갔다 온 날인데도 어머님 생신상차려드리고 싶어서 했어. 어머님이 좋아하셨어."
???!?
그러더니 빅마마 이혜정 선생님 같은 이 요리천재 언니들이, 각자 자기 휴대폰에서 시어머니 생신상에 올렸던 상차림 사진들을 찾아서 보여주는데, 키햐~ 이건 뭐 남도한정식집 저리 가라 할 만큼 기가 막힌 상차림들이다. 나도 초대받고 싶었다.
A, B, C 언니들이 한 마디씩 할 때마다 놀라 턱만 늘이던 내가 큰소리로 물었다.
"언니! 시어머니 생신에 맛있는 걸 대접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직접 차리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가장 맛있는 것으로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몇 해 전 남편 생일날 있었던 일이다.
남편 생일 나흘 전에 이사를 했는데, 무척 넓은 집에 살다 갑자기 좁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살림이 다 수납이 안되니 온 거실과 집 앞에까지 차곡차곡 살림을 쌓아놓고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자기들도 더 이상은 답이 없으니까 텨텨해버렸던 때였다.그런데 시부모님께서 아들 생일이고 새로 이사한 집도 궁금하시다며 굳이 발 디딜 틈도 없는 집에 오셨었다.
갑자기 이사가 결정된 터라 아쉬움에 눈물이 마를 새가 없이 이사를 알아봤고 근 한 달간을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었다.(그래서 성도들 앞에 사임인사하러 나간 내 모습이 갸름하고 청순해 보여서 고거 하나는 기뻤던) 이사 후로도 계속 식음을 전폐하며 짐 정리에만 몰입했음에도, 살림을 다 갈무리하지 못하고 어머님이 오신다는 그날이 밝았다.이제까지 어머님은 늘 남편생일에 우리 집에 오셨었는데, 그때마다 미역국은 끓여줬는지 주방에 나와 있는 냄비마다 다 열어보셨다. 그리고는 외식을 했다.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내가 뭐 생일음식을 열심히 준비해 봤자 당신은 바빠서 먹을 시간도 없고, 막상 식구들 당신 생일날 다 나가서 먹으니까 결국 버려지잖아!!"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또 어떤 해에는 어머님이 가락시장에서 직접 미역과 소고기를 사서손주생일날에 맞춰 우리 집에 택배로 보내주시기도 했었다.그리고 엄마가 오늘 미역국 끓여 주었느냐고 저녁에 아이에게 확인 전화를 하셨다.
(아, 저희 어머님은 아들이 생일날 잘 얻어먹었는지도 엄청 지켜보시지만 제 생일날에도 남편에게 다비 미역국은 끓여주었는지 꼭 확인하신답니다.)
그래서 생일날 미역국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아침 모닝콜 알람이 울리자마자남편에게 미역국 집이 여는 시간에 맞춰 어서 가서 미역국을 넉넉히 좀 포장해 오라고 피곤에 절어 다 잠겨버린 목소리로 부탁을 했다. 평소에 내 요리 간이 세지 않으니 식당 미역국에 물을 한 사발 더 넣어 삼삼하게 간을 낮췄다.그리고는 포장용 그릇과 식당 포장지를 재빨리 모두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리는 치밀함으로 준비를 했다. 그날은 우리 모두 새로 이사 온 동네라 어디가 분위기 좋고 맛있는 지도 잘 모르니, 드디어 시집온 지 십수 년 만에 내가 끓인 미역국(?)을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맛보게 되었다. 두근두근!
"어~ 우리 다비 미역국 진짜 잘 끓이네. 맛있다야~"
아버님이 제일 먼저 시식평을 하셨다.
요리사 어머님도, "그러게 제법 잘하네, 아유~" 하셨다.
문제는 이놈의 새깽이들 입방정이 문제.
얘들이 그런 말을 할 거라 예상조차 못 했기에, 미리 입단속을 못 시켰던 것이 완벽한 며느리의 딱 한 가지 실패였다.
"우와~ 엄마 어떻게 식당에서 파는 거랑 맛이 똑같애? 대박이다 엄마!!!"
제 딴에는 최고의 칭찬을 한 건데, 진짜로 식당에서 사 온 걸로 우리 집 냄비에 끓여서 상에 올린 걸 알고 있는 남편과 나는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천년 같은 3초가 흐르고, 내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