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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Jul 18. 2024

시어머니 친정에서 설거지하는 날 보면 엄마가 슬퍼할거야

결혼 후 초반에는 큰집(아버님의 형님댁)에 모였었다. 그런데 형제들의 자녀들이 또 자라 장성하여 가정을 일군 시점에 3,4대째 되는 손주들까지 식구들이 모두 모인다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일단 1세대 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이제는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아버님(2세대)의 형제들 그리고 내 남편(3세대) 그리고 우리가 낳은 아이들(4세대) 이렇게 세대가 내려갈수록 가족들은 많아졌다. 많아진 사람 수만큼 사는 모습도 다양하여, 시간을 맞추기도 어려워졌다.


시자 들어가는 멤바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만나고 싶지 않으실 만도 하지. 큰어머님께서 이제는 각자 지내자고 하셨다.

아휴 나도 잘됐다 싶었다. 거기 내려가면 어머님만 대체 몇이고 형님만 또 몇이야. 난 분명 무녀독남 외아들과 결혼을 했는데.


그렇게 우리끼리 단출하게 명절을 두어 해쯤 지냈을까.

8월의 마지막 무렵 어머님이 슬슬 요상한 밑밥을 깔기 시작하셨다.

이번 추석은 날이 일러서 추석 때 아직 여름 기운이 많을 거래. 그래서 다 같이 부산 여행을 간다는데 느이도 올래? 해운대가 보이는 데에 숙소를 잡는다던데. 다비 부산 여행 한 번도 안 가봤다며. 이번에 아기 데리고 콧바람 쐬어줄 겸 부산으로 와. 어때?


충청도에서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또 우리 집(친정은 인천)까지 언제 갔다 다시 충청도로 복귀하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남편은 속 터지게도 간다 안 간다 아무 입장도 표명하질 않고 그저 어머님 말씀에 응응 하며 듣고만 있는 것이다.


그렇게 다비가 부산 한 번도 안 가봤다니까 초대를 받아 가게 된 시외가 방문이 그다음 명절에도 이어졌다.

야아 이번엔 제천에 작은아버지네서 모인다는데? 거기 공기가 그렇게 좋대. 애기들 고구마 한 번도 안 캐봤지?

고구마 캐기 체험도 시켜주고 얼마나 좋아, 올 거지~?


물론 공기가 정말 좋았고 작은어머님이 쒀주신 잣죽이 정말 기가 막히게 고소하고 맛있었지만 왠지 자꾸 속이 발랑발랑, 터질 것만 같았다.


식당 다니고 편하게 즐겼던 부산 방문때와는 다르게 여기는 시골에서 작은아버님이 목회하시는 교회 건물이었고 그건 식사 때마다 쏟아지는 설거지를 직접 치워야 되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한 끼 두 끼 식사 횟수가 누적되자 마음에 부담이 일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한번 설거지하러 주방에 들어가야 되겠지?

설거지 그거 뭐 사실 어려운  아니다. 또, 내가 팔 걷고 들어가면 그래 어디 우리 새 며느리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며 일감을 쏟아주지도 않으실 것이다. 다들 참 좋은 분들이셨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설거지를 하면, 그 모습을 엄마가 본다면 슬퍼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너 엄마가 명절 때마다 할머니 친정 형제들 모두 다녀가시도록 시골에 남아서 수발드는 거 보고 자라서 너도 그러고 있니 하시며 가슴을 치실 것 같았다.


그래서, 꿋꿋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손님이니까.



시외가라니??? 어머니는 시어머니 일찍 돌아가셔서 (이런 상황을 두고 남자들은 '군번이 풀렸다'고 하던가요) 시댁 안 가신지 벌써 몇 년인지 모르는데ㅡ 나는 왜 시어머니 친정까지 가야 해? 하 나 참 어이없네? 싶었다가,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친가나 외가나 같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 친가만 가야 하는지? 상황에 따라 친가에 갈 수도 있고 외가에 갈 수도 있는 거다. 생각을 했다가도 한쪽 마음에서 천불이 올라오기를 반복했다.


이걸 터트려, 말아?


어머니! 이건 선 넘으신 거예요!라고 말씀드리려면 남편의 친가는 되고 외가는 안 되는 분명한 명분이 내 안에 정리가 필요했는데, 나는 여전히 그 문제를 놓고 고민 중이었다.

뭔가 아닌 것 같긴 한데_ 나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친정만 가시면 나도 친정만 가야 되는 거 아닌가_


몇 달을 고민고민하다가 순해터진 남편 대리 말고 그 윗 부장님께 상담을 신청했다.


아버님 저는요
저희 아이들이 나중에
아빠 엄마를 차별해서 대하면
서운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남편의 외가에 가자는 어머님의 요구가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나요.
머리로는
이 상황이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을 하면서도요,
자꾸 가슴이 터질 것 같고 그래요.


우리 아버님께서 첫 번에 하신 말씀이 사이다처럼 내 마음을 뻥 뚫어주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마음은 원래 머리랑 따로야.
네 마음이 그러면 그런 거지.
나는 명절 때 아무 데나 가도 괜찮아서,
내가 다비 네 입장에서 생각을 못했다.
먼저 헤아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한테는 아부지가 잘 얘기할게.
앞으로는 걱정하지 마러.
이런 거 말하기 힘들었을 텐데
아부지한테 얘기해 줘서 고맙다, 다비야.


마음과 머리가 다른 신호를 내서 몹시나 괴로웠던 내게, 아버님의 말씀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남편 대리가 아닌 부장님께 가서 상담한 것은 그땐 몰랐지만 어쩌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왠지 그냥 아버님이 남편보다 더 잘 들어줄 것 같아서 털어놓았던 것인데, 번짓수를 잘 찾아갔던 듯하다. 남편에게 별다른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잡음 없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어머님은 명절 한 달 전쯤 어머님 친정 식구들 모임에 함께 가자는 밑밥을 뿌리지 않으셨고, 그래서 두 번의 시외가 방문이 부산 여행 제천 여행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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