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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Jul 25. 2024

예비신부는 심란하다

좋은 오빠로 호감 가는 동생으로

서로를 알아온 세월 6년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8개월


우린 서로에게 열렬한 감정을 고백하기 전에

각자 마음속에 '이 사람인 것 같다.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다'하는 이끌림이 있었다.

다만, 섣불리 사귀었다가 헤어지기라도 하면 오빠 동생으로 만나기도 곤란 해질 테니 조심스러웠을 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우리는 걱정 없이 사랑에 빠졌다. 언제나 남자친구보다 더 앞 순위에 세아릴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었던 나는 '내가 정녕 미친 건가. 이렇게 매일 만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뒤돌아서면 또 보고 싶었다. 송파어머님을 만나러 가지 않겠냐는 제안에도 길게 생각할 것 없이 "응 좋아"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남자친구의 어머님은 되도록 늦게 만나고 시댁 쪽으로는 되도록 발걸음을 향하지 말라는 언니들의 가르침은 잊힌 지 오래였다.


순풍에 돛을 단 듯 연애는 순조로웠고 상견례도 조속히 이뤄졌다. 상견례 때 우리들의 어머님들은 첫 만남이란 걸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서로에게 아유 형님, 그래 아우, 하며 요즘 부쩍 늘어진 눈꺼풀을 걷어붙이러 가자고 자기들끼리 회동을 하시고 난리였다.


결혼 결정과 준비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졌고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그럴 리가 없지.

본격 혼수를 준비하면서 속이 슬슬 터질락 말락 할 일들이 속속 생겨났다.


오련이는 정장을 많이 입으니 한복 대신 정장으로 해달라. 다비 한복은 내 친구네 가서 맞추면 된다.

그럴 수가 있냐며 엄마는 사위에게 정장도 여러 벌 타이도 여러 개를 갖추어주셨다. 물론 신랑 한복도 맞췄다. 어머님 친구 한복집에 가서 신부옷만 맞출게요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색동저고리가 싫었는데 새신부는 이거라고 어머님과 한복사장님께서 강권하셔서 그걸로 했다.


우리는 침대 생활을 하니 요 대신 매트리스 커버로 바꿔달라.

그건 실용적이고 맞는 말인데, 요청대로 맞추고 나서 생각해 보니 우리 부부가 가면 깔고 잘 요가 필요해서 결국 모두 장만했다.


예물도 아는 집이 있으시다고 했다. 그래서 방문을 했는데.... 물건이 다 너무 후진 디자인뿐이었음은 차치하고 금은방사장님 태도가 정말 기분이 상했다. 내가 뭘 물어보면 아 뭐 고르냐 거 대충 있는 중에 고르지 하는 식이셨다. 열이 잔뜩 받은 난 남편을 한쪽으로 끌고 가서 커플링을 맞춰도 이보다 대접받으면서 산다, 나 오늘 이 집에서 반지 한 조각도 사고 싶지 않다, 아이템도 저렴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푸대접을 받으면서 돈을 써야 하냐고 골을 냈다.

그런데 우리가 가게를 나서려고 하니 사장님이 보인 반응이 더 기가 막혔다. 잠깐만 기다려보라더니 어디론가 들어가셔서 이런저런 디자인의 물건들을 부랴부랴 가지고 나오셨다. 처음에 매장에 있던 것들보다 디자인이 훨씬 좋았지만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내 당신에게선 청동 반지 쪼가리도 사지 않으리 결심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큰길 건너에 이태리에서 보석세공을 유학 다녀온 내 사촌동생이 근무하는 샵이 있었다. 남편은 사실 처음부터 그 집으로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자라면서 명절에 외가에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 아이는 수년간 유학을 다녀오고 하면서 우리 사이엔 교류가 너무 적지 않느냐, 언니랍시고 나타나서 금값 싸게 매겨달라는 것 같아 보여서 싫다고 내가 한사코 말렸던 것이었다.


설상가상 우리 커플은 다음에 다시 같은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6주 만에 결혼준비를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가구 혼수 패브릭 가전 웨딩촬영 드레스피팅 등 아이템별로 한 주에 한 개씩 해치워도 결혼 날짜까지 준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비부부가 직접 골라야만 하는 아이템들 (예를 들면 사이즈를 재서 맞춰야 하는 웨딩드레스 피팅이라든지 예물 예복 맞춤) 위주로 다니고 나머지 적당히 얼렁뚱땅 준비해도 되는 것 (접시 소형가전 이불 예단)들은 엄마들이 알아서 준비하는 분업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동생네 샵에 들어갔고 유학생활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성장한 동생은 어릴 적 기억하던 그 코흘리개가 아니었다. 내 맘에 드는 디자인들을 센스 있게 제안했고 냉랭해진 우리 둘 사이를 부드럽게 풀어주었으며 언니가 자기 매장에 잘 다녀갔노라고 최선을 다해 세공에 신경 쓰겠노라고 우리 집에 전화까지 넣어주는 자상함을 보여줬다.



그날 많이 속상했던 터라, 신부 예복을 보는 날은 우리 둘만 우리가 가고 싶은 곳에서 사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가져온 카드의 한도가 또 나를 화나게 했다.

여성복이 얼마 정도 하는지,
오빠가 여기 한 바퀴 돌면서 가격표를 좀 봐.
그리고 어머님께 통화하고 와.


지금 생각하면 아들만 키우신 어머님이 여성복 가격을 잘 모르셨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남편한테 혼자 한 바퀴 돌면서 가격표 보고 집에 다시 전화하라니. 그것도 정말 못됐다.

너무 매몰찼던 나, 회개하는 맘으로 첫째 낳고 둘째 낳고 나서 까지 해마다 왠지 자꾸 작아지는 듯한(?) 예복에 몸을 욱여넣어가며 마르고 닳도록 열심히 입었다.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요청들이다.

그런데 그때 내 속을 진짜 시끄럽게 했던 것은

남자 부모는 이렇게 저렇게 요구를 하시고 당당하게 받는 것도 있는데 딸 부모는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 왠지 서글퍼지고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정신 나가가지고 뭐 이렇게 결혼은 또 일찍 한다고 했는지. 선교단체 가서 돈 쓰고 대학 가서 학비 쓰고 이제 취업하나 싶었는데 직장 다닌 지 2년 만에 시집간다고 한 나 자신에 대한 아쉬움과 원망. 그런데 이미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되돌이킬 수 없다는 기분. 끊어진 다리 위에 선 기분이었다.


오빠가 미웠다. 정말 몰라서 그러고 있는 거야? 싶었다.

내가 싫었다. 남녀관계란 헤어지면 그만인 것을 어쩌자고 이렇게 서로 구속하는 관계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느냐.


내가 속상한 만큼 오빠를 괴롭혀주고 싶기도 했다. 근데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헤헤거리고 있는 게 정말 짜증 났다.



예비신부는 복잡 다양한 감정들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상한 감정은 관계를 좀먹는다.

이는 방사능보다 유해하다.





#왜 하필 잠실롯데백화점에서 옷을 산다고 한 건지

#데이트할 땐 머리띠만 해도 행복한데

#결혼할 땐 다이아반지를 사도 울적해


#지나가는 고딩커플과 비교되는 우리

#분수대 시러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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