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다비 Aug 01. 2024

어머니 전 상서



엄마는 어릴 적 나의 히어로였습니다.


제가 아플 때면 밤새 간호를 해주셨고

물수건을 바꾸어 주시며

쉼 없이 배를 쓸어주셨습니다.


제가 직접 엄마가 되어보니

그 모든 것들이 결코 쉽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잠시간 아이들을 쓸어주면 손바닥에 정전기로 불이 날 것 같아서 빨리빨리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다리가 아프다면 성장통으로 그러는 거니 이건 그냥 답이 없다며 스트레칭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엄마거든요.

저는 아이들이 토를 하면 구역질이 납니다.

아이들에게 밤을 까주지 않아요. 손이 너무 아프거든요.

아마 저는 평생 엄마가 저에게 해주셨던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지 못하는 부족한 엄마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한계가 없다는 걸 제게 직접 보여주신 분이셨습니다.

저희 엄마를 기억하시는 많은 분들 중에,

엄마에게 장애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네, 저희 엄마는 오른손에 장애가 있습니다.

어릴 때 큰 사고를 입어 생긴 장애입니다.


아기이던 손이 성장해 감에 따라

점점 자라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화상을 입어 오그라붙은 엄마의 손은 커지지 않았어요.

그러나 엄마의 마음과 꿈만은 그 무엇보다 컸습니다.


저는 엄마를 기억할 때에

그런 장애가 있었음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던 엄마

글씨를 참 잘 썼던 엄마

손이 유연하지 못해 계속 닿는 곳만 닳아져서 새끼손가락 끝에 피가 묻어 나와도 글씨연습을 멈추지 않았던 엄마

그리고 그 작은 손으로 크고 무거운 재단가위를 가볍게 다루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엄마의 삶을 보며 저는 도전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그 모든 것들을 참으로 가뿐하게 해내셨기에,

제가 어른이 되기 전에는 그저 당연한 줄만 알았습니다.


결혼을 해보니 단추를 하나 다는 것도,

수건을 새하얗고 뽀송하게 빠는 것도,

계절마다 커튼을 바꾸어 다는 것도

쉬운 게 하나 없었습니다.


저는 양손이 다 정상인데도 엄마만큼 야무지게

살림을 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때로 삶이 고단하여 적당히 타협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면 엄마를 생각합니다.

우리 엄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엄마의 올곧은 모습

사랑스러운 모습

열심 있는 모습

우리는 이점숙 이라는 한 사람을 추억할 때에

그런 모습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는 계절마다 엄마가 해주시던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슬픕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에 엄마의 손맛을 추억하게 될까요.


비록 엄마의 육신은 여기에 잠들었지만

우리가 기억해 드리는 한 엄마는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추억 속에 언제나 함께 계신 거예요.


마지막 섬망증상까지 주님 만나는 환상을 본 엄마

그리고 주일날 아침에 홀연히 떠난 엄마

이제는 그토록 평생 그리던 예수님 품에서 행복하시길 바라요.



지금은 인간적인 그리움에 한동안 울겠지만

우리의 헤어짐은 잠시이고

우리는 영원이라는 시간 속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이제 사랑하는 고 이점숙 권사님을 하나님 아버지 품에 올려드립니다.

생전 엄마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얽매이지 않고 속박하는 곳 없는

넓은 바다에서 편히 쉬세요.



2024년 7월 30일

언제나 엄마의 하나뿐인 딸, 은혜






며칠 전에 저희 모친 상이 있었습니다.
이번 연재분은 어머님을 해양장으로 모셔드리며 마지막으로 어머님께 낭독해 드린 제 편지글로 대신합니다.
위로해 주시고 함께 울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https://brunch.co.kr/@sidebyddun/118


이전 05화 예비신부는 심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