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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Jun 27. 2024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종갓집 맏딸이었다. a.k.a. 살림 밑천. 아주 어린 소녀적부터 주방에서 소같이 일을 했다고 한다. 둘째 딸(나에겐 이모 되시는 분)은 밭에서 소같이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소띠다.

인내력이 강하고 우직하며 일복을 타고났다는 소띠.







팔자소관이라는 말이 있다.

'산천 도망은 해도 팔자 도망은 못한다'고 했던가.

그러나 엄마는 삶을 개척하고 싶었다고 했다.

끝없는 제사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고개를 두 개를 넘고 댐을 한 개 건너야 시내로 나갈 수 있는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동네를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열아홉에 집을 떠났다.


항상 사랑이 문제다.

"저기요.. 혹시 시간 되시면 저랑 차 한잔 마실 수 있으세요?"

라며 자길 따라왔던 남자. 대림역에 날마다 마중 나오던 그 남자 때문에 자기 인생에 발목이 잡혔다고_ 나를 키우던 세월 동안 엄만 늘 얘길 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주저앉지 않을 거야.

나는 엄마가 못 이뤘던 꿈 - 사회적 커리어를 가진 진취적인 여성이 될 거야.


너무 확고한 자기 확신은 그걸 너무 많이 묵상한 탓에 오히려 자기 암시가 되어버리나 보다.

나도 덜컥, 사랑이란 늪에 퐁당 빠져버리고 말았다.

엄마가 시집을 갔던 꼭 그 나이에 나도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나도 멀쩡한 전문직 직장을 관두고 집에 들어앉았다.

묘하게 엄마의 인생과 내 인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존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결혼 생활은 고달팠다. 종갓집 맏딸 노릇이 나았구나 회한이 들 정도로 시댁살이는 힘에 부쳤다.



엄마가 인생을 되돌아보니
집에서 귀한 대접을 못 받으면
밖에 나가서도 대접을 못 받아.
그러니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마, 내 딸.
일을 알면 일거리가 눈에 보이고
그럼 일복만 터지는 거야.


엄마의 신조 아래 나는 정말 스타킹 하나 스스로 빨아 신지 않고 곱게 곱게 자랐다. 소녀적부터 물일을 많이 한 엄마는 손가락이 엄청 굵다. 내 몸 씻을 때 외엔 손에 물 대지 않고 자란 나는 마흔이 된 지금도 손가락이 낭창낭창하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엄마를 꼭 닮아버린 점도 있지만

나는 엄마처럼 시집살이하고 고생하며 살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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