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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Sep 26. 2023

나는 시동을 걸 때마다 죽은 노루를 만나

[충청도] 시골 국도는 밤에 아무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나는 서울 태생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나, 차츰차츰 서쪽으로 이동하여

구로구, 강서구를 거쳐 인천으로 이사를 해서 결혼할 때까지 내 삶의 반경은 오직 서울 경기권 안에 있었다.

친가는 경기도고, 외가는 전라도였지만

우리 엄마는 내가 자라는 동안 다섯 번도 친정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현재까지 나는, 강원도 빼고 전국에서 다 살아본 여자가 되었다. 오늘은 그 적응기를 이야기하려 한다.


둘째를 임신하고 산달이 다 되어가던 무렵,

남편의 직장 문제로 우리는 충청권의 작은 소도시로 이사를 가게 된다. 행정구역상 무려 군 이었고 우리 집 주소는 읍과 리로 마무리되었다.

첫 아이는 도대체가 미열 한 번 난 적이 없었는데,

둘째는 왜 이렇게 자꾸 아픈지

그것도 꼭 금요일 밤만 되면 열이 나는 것이었다.

남편이 집에 없을 때에만!


우리가 거주하던 읍 안에는 소아청소년과가 딱 한 곳이었고,

그렇기에 밤에 아이가 아프면

100킬로로 무려 40분을 달려야 소아청소년전문의를 겨우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마저도 9시까지 현장접수를 하지 못하면 끝이었다.

그렇게 되면 1시간 거리의 광역시에 있는 응급실로 가야 했다.


불시에 그것도 꼭 남편이 집에 없을 때만 갑자기 컹컹 소리를 내며 운다던가, 열이 많이 난다던가 분수토를 하는 등으로 아픈 둘째 때문에 나는 혼비백산이 되었다.

일단 집을 떠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당시의 나는 항상 긴장한 고라니처럼 촉을 세우고 살았다.

밤에 옆도시까지 총알처럼 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기내용 캐리어에 기저귀 물티슈 아기여벌옷 등 며칠 버틸 필수품들을 착착 챙겨서 집을 나섰다.


눈길 운전을 3년은 겪어봐야 초보를 벗는 거라던데, 그때 내 운전경력이 이미 최소 초보는 벗어났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해가 떨어진 뒤의 국도는 상상초월의 깜깜함이었다.

주변은 온통 논밭이고, 산인 데다, 가로등은 한 개도 없었다. 단 한 개도.

세금 걷어서 다 어디에 쓰는 거지 싶을 정도였다.

설상가상 나는 난시가 심하다.

가로등이 많이 있었어도 아주 로맨틱한? 밤중 드라이브가 되었을 텐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천천히 가면 접수가 마감되고 그럼 옆도시까지 가야 되고 카시트에 태워놓은 아이들의 상태를 컨트롤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번 그렇게 나갔다 올 때마다 길바닥에 노루를 봐도 기함할 노릇인데, 내가 어린아이들을 키울 때는 유난히도 노루가 제철이었던 건지 나갔다 올 때 마다는 무슨, 시동을 걸 때마다! 최소 한 마리 이상! 죽은 짐승의 사체를 보았다.

정말로 충격의 도가니였다.


게다가 밤의 충청도는 금강 줄기에서 피어나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뒤에 아이들이 타고 있지 않았다면

나는 너무 무서워서 귀신같은 헛것을 보았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절을 빡세게 겪어낸 후에

나는 안전하면서도 빠르 안정감 있게 고속주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No pain, no 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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