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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다비 Oct 19. 2023

노빠꾸 비잔 적응기 (부정출혈, 탈모)

순두부 짜듯이 피가 나오고 머리가 술술 빠져대

30일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으니 날아갈 것 같은 개운함이 들었다.


입원할 때는 머리가 어깨 아래 쇄골정도 길이였는데 퇴원했더니 가슴에 닿을랑 말랑해졌다. 머리 길이 때문에 무게감이 있다 보니까 자꾸 머리가 쳐지고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병원에 있을 때 조금만 반짝 컨디션이 올라오면 맨날 머리 감겨달라고 남편에게 징징댔었다.


워낙에 많은 수액이 들어가 방방하게 부기가 있었던 몸은 퇴원하자 이틀마다 1킬로씩 빠져서 3주 만에 10킬로가 내려갔다.

옷 핏이 달라지고 실루엣이 달라졌다.


너무 단기간에 체중이 내려가고, 그게 운동으로 내려간 게 아니다 보니 전신 근력이 다 빠져서 잠시만 싱크대 앞에 서도 몸이 후들후들 댔다.

이 후달림이 대략 어느 정도냐면 라면냄비 한 개를 설거지하면 방에 들어가 누워야 되는 정도였다. 설거지하려고 싱크대 앞에 서면 허리에 힘이 안 받아지고 엉덩이가 뒤로 쭈욱 빠졌다.

침상 생활을 넘 오래 해서 다리근육이 다 빠져버려, 달여 동안은 다리가 무지하게 호달달 거렸다. 친정엄마가 많이 도와주셨다.


지팡이가 필요해요


그래도, 앉아있는 거는 의자에 몸을 걸치고 있으면 되는 거니까, 하며 퇴원 후 일주일쯤 지나 머리를 자르러 갔다.

내가 별난 멋쟁이여서, 도 맞지만

씻을 때마다 머리가 너무 많이 빠졌기 때문이다.

아기 낳고 백일쯤 빠져대던 것보다 더 많이 빠졌다.

이러다 가발을 맞춰야 될 지경이 오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머리칼이 기니까 손에 걸려서 더 빠지나 싶기도 하고, 긴 머리를 말리려면 여간 많은 품이 드는 게 아니라서, 짧게 잘라버렸다.


짧은 헤어스타일로 바꾸고 나서도 한 두어달은 머리가 매일 한 움큼씩 빠졌다.

그러더니 그 다음은 부정출혈이 시작됐다.

부정출혈은 더러운 피가 아니라 '부 정기적 출혈'의 뜻으로, 생리(정기적 출혈) 주기와 상관없이 나오는 출혈을 의미한다.


생리양이 엄청 많았던 나도 여태 일생 한 번도 보지 못한 양의 출혈이, 말 그대로 쏟아졌다.

마트에서 파는 순두부를 포장을 자르고 팩에서 후루룩 짜낼 때, 딱 그 모양으로 하혈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순두부 하혈을 해서 으허어어억 하며 놀라기 일쑤였다. 이제는 입는 기저귀 아니면 감당이 되지 않았다.

나, 좋아지고 있는 거 맞겠지?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사진을 찍어 오라고 하셔서 살벌한 출혈사진을 몇 장 찍어서 교수님을 뵈러 갔다. 교수님은 자궁 선근증 병변을 다 오려내고 다시 꽉 묶어놨기 때문에 아무는 과정에서 그럴 수 있다고 쏘 쿨하게 반응하셨다.

순두부 하혈은 5주가량 매일 지속되었다.


얼굴이 하얘지고 갸름해져서 마음에 들었다, 하하


그 이후에 불시에 한 번씩 주먹만큼 확 쏟아지는 부정출혈 때문에 나는 수술 후도 여전히 만년 팬티라이너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부정출혈은 그 뒤로도 무거운 것을 들면 기다렸다는 듯 나왔고, 수술한 지 3년이 꼬박 찬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분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늘 대비하는 자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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